박근혜 대통령은 11월 24일 국무회의에서 같은 달 14일 열린 서울 광화문 집회에 대해 “불법 폭력 행위는 대한민국의 법치를 부정하고 정부를 무력화하려는 의도라고 생각한다”며 “복면 시위는 못 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27일 담화문을 통해 “더 늦기 전에 우리의 잘못된 집회·시위 문화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복면 시위를 금지하는 법안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위클리 공감>은 일명 ‘복면 시위 금지법안’의 의미를 짚어보기 위해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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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4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시위대가 청와대 쪽으로 행진하면서 경찰과 충돌했다. 일부 시위대는 경찰 진압봉을 빼앗아 휘두르거나 차벽 위에 올라가 있는 경찰을 끌어내리려고 사다리를 사용하며 폭력을 휘둘렀다. 경찰 차벽에 막혀 행진이 저지되자 일부 시위대는 횃불을 들기도 했다.
1971년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건물 지하에서 대학생들이 죄수와 교도관으로 나뉘어 역할극을 시작했다. 예상과 달리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의 잔혹함이 나타나자 14일로 예정된 실험은 6일 만에 종료됐다. ‘스탠퍼드 감옥실험’이라 이름 붙인 이 실험은 영화 <엑스페리먼트(The Experiment)>의 소재로 사용됐고, 실험을 기획한 사회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인간의 본성을 파헤치는 다양한 심리 실험을 시도했다. 그의 저서인 <루시퍼 이펙트>에는 익명의 그늘에서 인간의 잔혹성이 드러나는 다음과 같은 실험도 등장한다.
‘평범한 여성 8명을 두 집단으로 나눠 한 집단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른 집단은 맨얼굴에 이름표까지 달게 했다. 이후 두 집단은 또 다른 피실험자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도록 했다. 그 결과 복면 집단이 신원 노출 집단보다 두 배 이상 강한 전기 충격을 피실험자에게 가했다.’
익명성이 보장되면 인간은 더 폭력적으로 바뀔까. 비단 심리학이나 과학적 실험의 결과에 기대지 않더라도, 상식에 따라 우리는 쉽게 이 의문에 동의할 수 있다. ‘익명의 그늘에서도 나는 결코 부정의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러나 개인의 양심을 사회 전체로 확대하면 분명 다른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우리나라 복면금지법 발의
2006년부터 시작
최근 집회나 시위 과정에서 복면 시위자들의 폭력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복면 시위 금지법’에 대한 논쟁이 격렬하게 달아오르고 있다. 복면 시위 금지에 관한 논란은 2006년 17대 국회 때 시작됐다. 당시 복면 시위를 금지하는 법안이 수차례 발의되었으나 여론의 거센 반발과 항의로 제대로 된 공청회 한번 해보지 못한 채 국회 임기가 마무리되어 입법안이 자동 폐기됐다.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도 법질서를 강조하며 복면 착용 금지를 추진했으나 좌절됐다. 보아하니 최근 발의된 복면 금지 관련 법안의 국회 표결 통과도 녹록할 것 같지는 않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를 어느 정도까지 제한할 수 있나’의 문제는 공동체의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리 나타나게 마련이다. 나치의 철십자 문장(紋章)을 부착하고 군복을 입은 채 도심을 활개치던 시위대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독일인들은 지금도 집회, 시위를 할 때 제복 착용을 금지한다. 심지어 독일 베를린 도심의 홀로코스트 희생자 이름이 각기 새겨진 2700여 개 기념비 부근에서는 집회를 전면 금지한다. 미국은 흰 복면을 뒤집어쓰고 흑인들을 탄압하던 KKK 집단의 만행 이후 공공장소에서 복면을 착용하는 것을 제한한다.
복면 시위를 금지하는 제도는 우리나라와 가장 유사한 법제도를 운영하는 독일어권에서 시작됐다. 1980년대 독일에서 과격 시위가 증가하자 독일 의회는 집회법을 개정해 복면을 착용하고 집회에 참석하는 행위를 규제할 수 있도록 했다. 이웃 국가인 오스트리아에서는 2002년 법 개정을 통해 복면 시위를 금지했고, 스위스 주요 지역
도 주법에서 복면 시위를 금지했다. 더 나아가 복면 시위 금지의 위헌 논란은 스위스에서 제기된 바 있지만 1992년 스위스 연방대법원은 복면 착용을 금지하는 법률이 합헌이라며 정부 측의 손을 들어줬다.
‘복면 시위를 금지한다’는 표현은 시민들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추운 날씨에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머플러를 감싸는 행동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저항의 아이콘인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평화롭게 행진하는 시위대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갑질’의 피해자들이 해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얼굴을 내보일 이유도 없고, 성매매 여성들이 의사 표시를 하기 위해 마스크를 벗어야 할 이유도 없다. 또 누군가는 복면 시위가 얼마나 평화롭게 진행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복면을 쓰고 평화 시위를 할는지 모른다. 시민의 자유를 마음껏 향유하는 이들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정당한 이유 없는
복면 시위는 금지해야
다만 제한적인 범위에서 복면 착용을 금지해야 한다. 복면을 착용한 집회나 시위의 규제가 필요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독일이나 기타 국가의 복면 금지 입법 과정에서도 복면 시위의 가벌성에 관해 격렬한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논의의 주요 골자는 ‘복면 착용 행위가 폭력 행위를 뜻하며 공공의 안녕과 질서에 대한 위험을 의미하는
가’였다. 논의에서는 복면 착용을 통한 다중의 익명성 때문에 폭력의 억지력이 약화되고, 쉽게 개인의 책임과 도덕적 의식의 제어장치가 풀려 과격한 행동을 한다는 수많은 심리학적, 인류학적 연구가 강조됐다.
제한적인 범위에서 복면 착용을 규제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독일도, 오스트리아도, 스위스도 헌법에 합치되는 정교한 법률을 통해 이를 가능케 했다. 집회, 시위에서의 복면 금지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은 복면 착용을 절대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의사 표현과 집회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면서 정당한 이유 없는 복면 시위만을 금지’하고 있다. 불법 폭력 시위로 야기되는 공공의 안녕과 질서 파괴는 결국 집회나 시위
로 발생하는 국가적 비용 증가와 교통 혼잡, 영업 방해 등으로 타인의 자유권과 재산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집회 현장에서의 폭력 책임을 일방에게만 전가할 수는 없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 최대한의 자유를 보
장해주면서 시민들의 자율과 책임을 존중하는 상호 간의 신뢰가 선행돼야 한다. 복면 시위 금지가 결코 시위 문화 개선의 만능키가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집단적 복면 시위는 영혼을 잠식하는 집회로 변질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글 · 이성용(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2015.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