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작전에서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 예술 영역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 6월 15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정동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열리는 ‘소년 김부연, 그가 바라본 아이’展은 여러모로 신기한 전시회다. 앞서 홍선생미술의 여미옥 대표는 고 김부연 작가의 그림에 이야기를 붙여 완성한 동화책을 출간했다. <누구 머리가 제일 예쁠까?>, <알록달록 마을 달리기 경주> 두 권이다. 베스트셀러에도 오른 화제의 신간이다. 출간을 기념해 동화쓰기대회도 열렸는데, 전시 기간 동안 대회에서 입상한 아이들에 대한 수상도 진행된다. 이토록 활발한 콜라보가 이뤄지는 유작전은 처음이다. 모두 김부연 작가의 그림을 모티브로 벌어지는 일들이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을 곱씹어볼 수밖에 없다. 김부연 작가의 아내 문영화 씨와 홍선생미술의 여미옥 대표 역시 작품이 이어준 소중한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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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베네치아 풍경’,121x73cm, oil on canvas, 2010
2 ‘소녀’, 162x130cm, oil on canvas, 2010
3 ‘사자’, 117x91cm, 2009
4 ‘집들’, 91x73cm, oil on canvas, 2009 ⓒ조선일보미술관
여미옥 대표는 지인의 초대로 방문한 전시장에서 김부연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했다. “2015년 12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정헌메세나 후원 작가-아름다운 다리展 2’ 전시회에 갔는데 이끌린 듯이 김부연 작가의 그림 앞에 서게 됐어요. 작가 이름 앞에 ‘故’라고 붙은 게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전시회 이후에도 작품이 계속 맴돌아서 유족에게 연락을 드리게 됐죠.”
문영화 씨도 처음 연락받은 그때를 기억한다. “다른 그림도 보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도록을 보내드렸죠. 그 사람을 기억하고 작품을 좋아해주시는 분이 계신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고 기쁜 일이었어요.”
여 대표는 그 뒤로 그림들을 인쇄해 네 살 된 손녀에게 보여줬다. 여러 장의 그림을 연결한 뒤 ‘할머니표 이야기’를 지어내 들려줬다. 어린 손녀도 할머니를 따라 제법 비슷하게 이야기를 꾸며낼 때쯤 그림책에 대한 발상이 떠올랐다.
“이야기를 먼저 만들고 거기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잖아요. 저는 반대로 했기 때문에 조금 힘들긴 했지만, 그림에 대한 매력이 너무 커서 수십 번 지우고 쓴 끝에 겨우 완성할 수 있었어요.” (여미옥)
단순 감정에 의한 충동적인 창작과는 거리가 멀다. 동화 작법에 관한 책을 열 권 넘게 독파한 후에 완성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동화를 읽고 배우 김혜자는 “세월의 때가 쌓이지 않은 작가의 상상력 덕분에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붓 끝에 작가의 사심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작가였어요. 특히 아들이 그림 그리는 것을 보면서 작품의 전환점을 맞은 것 같아요. 아이들은 ‘내가 너보다 낫지’ 하는 우월감이나 평가 없이 자기 느낌대로 스스럼없이 그림을 그리잖아요. 그런 아이를 보면서 작가라면 저래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깨달은 것 같아요.” (문영화)
유작전은 생전의 전시보다 유치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팔리는 작품을 걸려고 하는 화랑의 입장과 스타작가를 육성하려는 미술시장의 속성이 더해진 현실이다.
“그림도 창고에 있으면 짐짝에 지나지 않잖아요. 앞으로도 전시를 통해서 세상 밖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문영화)
일상에서도 그림 즐길 수 있는 문화 만들어지길
문영화 씨와 여미옥 대표는 우리나라에서도 일상에서 그림을 즐기는 문화가 형성돼야 미술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림을 소유하고 즐기는 문화가 없어서 가끔은 ‘이 정도 규모와 수입에서 그림 한 점 없다니’ 싶을 정도로 의아할 때가 있어요.” (여미옥)
“프랑스에서도 파리에서 좋은 전시가 열리면 할머니들이 시골에서 버스를 대절해서 그림을 보러 와요. 우리나라에서 꽃놀이 가듯이 하는 거죠.” (문영화)
좋아하는 그림을 일상 소품인 휴대폰케이스와 에코백 등으로 2차 생산하기만 해도 된다. 이것은 작품을 쉽게 즐기고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일석이조의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새로운 작품이 생산되지 않는 유작전의 경우에도 2차 상품 생산은 작가의 작품을 더 쉽게, 더 많이 알릴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김부연 작가의 전시회에서는 대표적인 그림을 판화로 생산해 판매할 계획이다. 기술이 발달해 원작의 질감까지도 그대로 재현했다는 게 여미옥 대표의 설명이다. 12만~15만 원의 가격으로 책정되어 가정에서 즐기기에도 적정한 금액이다.
“한번은 러시아 트레치야코프 미술관을 방문했는데 오픈 두 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사람들 중에는 행색이 남루한 시골 할머니도 있었죠. 사람들이 어디에 몰리고, 줄을 서는지 살펴보면 그 나라의 문화적 관심도를 알 수 있거든요.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 분양사무실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리니 확연히 비교되죠.” (여미옥)
조선일보미술관 기획초대전으로 진행되는 ‘소년 김부연, 그가 바라본 아이’展에서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약식 회고전을 취하면서도 유년기 행복했던 시선 속 김부연의 이야기가 작품에 투영돼 따뜻했던 그의 삶을 만나볼 수 있다. ‘아이(I, 兒, eye)’라는 단어의 전혀 다른 세 가지 의미를 의도적으로 사용해 초기작부터 생애 마지막 작품까지 총망라해 구성했다. 쉽지 않았던 유학 생활을 비롯해 국내 작품활동, 투병생활까지 작가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바라본 세상은 따뜻하고 포근하고 화사하다. 밝고 순수한 소녀, 웃음을 자아내는 사자, 알록달록한 집 등 작품 속 세상은 한 편의 동화와 같이 느껴진다. 아팠던 해에는 큰 기운을 얻고 싶어 호랑이를 그리고, 기쁜 소식을 가져다준다는 까치를 그린 작가 김부연. 그가 바라본 세상이 얼마나 따뜻하고 포근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다양한 소재와 밝은 색감이 어우러진 그림에서 김부연이 살아온 희로애락을 함께 느껴볼 수 있다.
각주
1968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부연 작가는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 중 박사학위 취득 후, 2007년 귀국했다. 작품활동에 전념하던 중 2011년 혈액암 판정을 받고 투병에 들어가 병세의 호전과 악화를 거듭하다가 2013년 영면했다.
‘소년 김부연, 그가 바라본 아이’展
전시기간 6월 15일~6월 24일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
장소 조선일보미술관
문의 02-724-7816
강보라│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