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일상이 우리 곁에 한 걸음 더 다가왔다. 보지 못했던 또는 볼 수 없었던 그곳 사람들의 모습이 전시회, 도서에 가득하다. 사진으로 보는 그곳은 이곳과 결코 다르지 않음이 새삼 반갑다.
전시
손을 잡고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아빠와 아이,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 특별할 것 없는 사진 속 일상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사진을 보며 서 있는 이곳은 남한, 사진 속 저곳은 북한. 공간의 ‘다름’에서 비롯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다. 공간이 주는 이질감은 오랜 시간 우리 마음속에서 커왔다. 그것이 외부 요인에 의해서든, 저마다 스스로 판단에 따른 결과이든 ‘북한’ 하면 우리와 상반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게 지배적이었다. 임종진 사진전 ‘평양의 일상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의 출발점은 여기에 있다. ‘북한의 이미지를 바꾸는 북한 이미지.’ 임종진 작가는 그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북한의 모습을 전한다.

▶ 임종진 작가의 기억 속북한 사람은 늘 웃는 얼굴이었다. ⓒ임종진

▶ 2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짓는 학생들
3 아이들이 길에서 고무줄놀이에 한창이다.
4 한 소녀가 인민군복을 입은 아빠의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5 막 신혼부부가 된 두 사람이 대동강 강변공원에 나와 기념촬영 중이다.
6 김일성종합대학생 장류진 씨가 수줍게 미소 짓고 있다. ⓒ임종진
임 작가는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사진기자로 여섯 차례 북한 땅을 밟았다. 당시 촬영한 2만여 점 중 50여 점이 이번 사진전의 주인공이다. 50여 점의 공통점은 지극히 평범하다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의 평범한 모습을 그대로 비춘다. ‘얼마나 다른지’가 아닌 ‘얼마나 같은지’ 보자는 것이 임 작가의 의도다.
그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북한 모습에 취해 카메라가 춤을 추었다고 회고한다. 장을 보는 엄마, 자전거에 자녀를 태우고 가는 아빠, 이제 막 결혼식을 올려 상기된 신혼부부 등 임 작가의 시선을 좇아 마주한 그곳엔 밝음이 가득하다. 과거 국내외 매체가 공개한 북한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것이 북한이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에요. 대단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사진인데 북한이라는 이유로 달라 보일 뿐이에요. 그동안 북한이 가지고 있던 모습임에도 우리가 보지 못한, 볼 수 없었던 부분을 보고 느낄 수 있었으면 합니다.”

▶ 1 휴대폰을 사용하는 모습은 북한에서도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다. ⓒ진천규, 타커스

▶ 2 옥류관 고기쟁반국수를 먹는 사람들
3 평양 봉수교회 신도들이 피아노 반주에 맞춰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4 포켓볼을 즐기며 주말 오후를 보내고 있는 젊은이들
5 지하철 부흥역의 플랫폼 모습
6 대동강 둔치에서 운동을 즐기는 평양 시민들 ⓒ진천규, 타커스
사진마다 붙은 글귀는 촬영 당시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를테면 “걸음이 불편한 할머니는 가족들의 손을 꼭 붙잡고 천천히 발을 내딛었다. 그 맞잡은 양손이 쑤욱 눈에 밟혔다. 다를 것 없이 같거나 비슷한 형상들 속에는 가슴 뭉클한 것에서 느끼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게 민족의 동질성에서 오는 일체감의 기운인 것임을 곧 알 수 있었다”고 임 작가가 직접 쓴 이야기를 덧붙여 전시 관람객으로 하여금 저마다 해석하길 바랐다. 이러한 사진을 마음껏 꺼내 보일 수 없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고 판단해서다. 실제로 두 달 전 그가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게재한 사진 몇 장이 화제가 되자, 미술관 측에서 먼저 사진전 개최를 제안해 성사된 것이다.
‘일상의 같음’이 주는 반가움
이데올로기적 요소가 배제된 것도 이번 전시의 특징이다. 북한을 대표하는 동상 대신 배지 정도가 담겼다. 임 작가는 처음 평양을 찾았을 때 자신이 느꼈던 그대로를 전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낯설어야 할 그곳이 마치 잘 아는 동네인 듯한 기시감이 반가웠다. 무엇을 보게 될지, 어느 순간에 셔터를 누르게 될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지만 직감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것을 볼 것이라고.
“거리 곳곳에서 재잘거리는 소년소녀들의 음성이 들렸어요. 아이스크림을 물고 웃는 어린아이들도 길거리에 넘쳤고요. 젊고 밝은 대학생 무리를 만났을 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막힘없이 수다를 떨기도 했죠. 그렇게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걸고 눈빛을 나누다 저도 모르게 솟구치는 흥에 어깨가 들썩거렸어요. 다른 줄로만 알았는데 같은 것이 있음에 심장이 뜨거워졌어요. 무엇이든 다를 것이라 믿었던 묵은 관념들이 해체되는 특별한 만남이었죠.”
비록 20년 전이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북한은 우리와 그리고 지금과 다르지 않다. 전시 사진 모두 ‘어제의 사진’이 아니라 ‘이제야 만나는 오늘의 사진’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흔하디흔함’을 연신 기록하던 작가에게 북한 안내원이 농 섞인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림 선생, 사는 거이 뭐 다 똑같디요. 무엇이 좋아서 그리 찍습네까? 하하하.”
“그러게요. 우리 사는 게 똑같았네요. 그래서 정말 좋네요.”
그의 사진이 하고픈 이야기다.
평양의 일상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 전
전시기간 2018년 8월 26일까지(오전 11시~오후 6시, 월요일 휴무)
장 소 서울 종로구 청운동 113-3 류가헌갤러리
문 의 02-720-2010
책
진천규 평양 순회 특파원의 저서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도 마찬가지다. 그는 취재 기간 동안 보고 느끼고 경험한 평양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담아냈다. 작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들을 만나 대화하고 그들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싶었을 뿐, 구경꾼이 되고 싶진 않았다. 외국 기자라면 소통의 어려움 탓에 관찰자 입장에만 머물 수밖에 없지만 그는 그 한계를 깰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92년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 2000년 평양 6·15 정상회담 취재 이후 17년 만에 다시 밟은 평양은 그에게도 놀라움이었다. 가장 최근이라 할 2017년 10월부터 2018년 7월까지 북한 사람의 생활방식은 상상 이상의 속도로 변화하고 있었다. 어디서든 휴대폰을 당연하게 사용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대기행렬을 마다하지 않으며, 퇴근길 가볍게 술잔을 기울이는 그곳 일상은 우리네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닫혀 있던 북녘에 대한 내 인식이 평양에 발을 디딘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완전히 깨지고 말았다. (중략) 그동안 우리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남쪽 사람들이 알건 모르건 그들은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진 작가는 저서에서 북한의 일상에 대한 놀라움을 연거푸 드러낸다. 원산농업종합대학교 강의 현장을 예로 든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교수는 강의 중 파워포인트로 자료를 설명했고 노트북엔 윈도우와 MS익스플로러가 설치돼 있었다. 또 평양 시내 고려항공 대리점에서는 항공권 예약 업무에 여러 대의 HP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도 흔히 상상할 수 없는 북한의 요즘 일상이다. 진 작가는 그래서 북한에 대해 더 많이,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번에 내가 직접 확인한 평양의 변화상, 그중에서도 휴대폰의 일상화는 우리의 상식을 무너뜨리는 놀라운 변화이며 북녘이 세계 경제 흐름과 동떨어져 있지만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가 몰랐던 요즘의 북한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먹거리 문화의 변화도 인상적이다. 4·27 남북정상회담 당시 주요 관심 대상 중 하나였던 옥류관 평양냉면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평양냉면의 맛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동시에 옥류관 고기쟁반국수를 먹는 사람들, 옥류관에 입장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의 사진을 덧붙였다. 소위 맛집을 찾아다니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평양 시민들의 꾸밈새도 지난 시간의 변화와 속도를 가늠하게 한다. 짧은 스커트와 하이힐, 화려한 무늬의 양산, 각양각색의 헤어스타일. 작가는 미용실과 이발관에서 만난 시민의 모습을 고스란히 전했다.
“미용실에서는 머리 손질을 받는 손님이 휴대폰으로 계속 통화하면서 거울을 보며 자신의 머리를 맡기고 있었다. 이발하는 남자도 벽에 붙어 있는 헤어스타일을 가리키며 자기가 원하는 스타일을 분명하게 요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의식주와 관련된 이런 작고 사소한 변화들이 쌓이고 쌓여 큰 흐름이 바뀌는 것이 아닐까.”
작가는 수많은 사진을 통해 끊임없이 말한다. 그곳과 이곳이 닮아가고 있다고. 도서 제목도 그렇듯 북한과 서울의 시간은 함께 흐르고 있다고. 이건 사실이기도 하다. 북한은 2018년 5월 5일을 기점으로 표준시를 변경했다. 30분 앞당겨 써왔던 표준시를 30분 늦춰 서울 시간과 맞췄다. 그렇게 평양의 시간과 서울의 시간은 동시에 흐르고 있다.
이근하│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