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어느 날 인천에서 경상도까지 200km 넘는 거리를 자전거로 내달렸다. 차로 움직여도 먼 그 길을 자전거와 두 다리만으로 움직인 스스로가 대견했다. 그리고 2년 뒤 랜도너스(비경쟁 장거리 레이스)를 완주했다. 문득 자전거 달리기가 살아가는 과정과 다르지 않구나 싶었다. 오히려 자전거를 타면서 ‘살아내는 힘’을 배웠다. 이 힘을 더 많은 사람이 기를 수 있다면 어떨까. 오영열 대표의 작은 바람은 ‘약속의 자전거’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책을 읽거나 강연을 들으면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잖아요. 그런데 그 싸움을 해본 적은 없더라고요. 자전거 종주를 하면서 처음 경험했고 깨달았죠. ‘아, 이게 진짜 나와의 경쟁을 증명하는 레이스구나’. 다른 청년들과 이 과정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목적으로 회사를 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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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영열 대표가 서울 은평구에 있는 자전거 수리 공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C영상미디어
오 대표는 랜도너스에서 영감을 얻어 ‘100km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최대 20명이 100km를 자전거로 쉼 없이 이동하는 프로젝트로, 참가자들이 여정에서 한계를 맞고 포기하려는 순간을 넘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취지다. 오 대표는 벅찬 감정이 서린 완주자의 얼굴을 볼 때마다 회사를 꾸린 이유를 다시 떠올린다고 했다. 자전거를 통해 누군가와 가치를 나누고 더 나아가 유익한 자전거 문화를 조성하는 것.
프로젝트를 보다 널리 알리기 위해 포스터 홍보를 하던 중 생각하지 못했던 문의가 들어왔다. ‘자전거가 없는데 참여할 수 있나요?’ 새 사업 모델이자 프로그램을 구상하는 계기가 됐다.
“자전거를 사줄 수도 대여하라고 할 수도 없었어요. 마땅한 대안을 못 찾고 있는데 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어요. 서울시에서 한 해에 버려지는 자전거만 몇 만 대라고 하더라고요. 이걸 고쳐 쓰면 되겠다는 생각에 자전거 리사이클링을 고안해냈지요.”
자전거 리사이클링은 폐자전거를 분해하고 녹슨 부분을 제거한 뒤 재결합하고 도색을 거친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재활용이다. ‘약속의 자전거’는 서울 은평구 자전거 수거 용역업체에 선정돼 해당 지역 자전거를 수거할 수 있다. 100대 중 20~30% 정도만 복구 가능하다. 안전성 측면에서 새 부품으로 교체하는 경우도 있지만, 재활용 의의를 살리고자 가급적이면 기존 부품을 활용한다는 게 오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자전거 리사이클링을 교육 콘텐츠로 만들어 가르치기도 한다.
사회문제 알리는 자전거 캠페인도
“창업하고 얼마 안 돼서 노신사 한 분이 찾아오셨어요. 저소득층 아이 한 명을 데려올 테니 자전거를 만들어줄 수 있겠냐고 물으셨어요. 저희가 만들어주는 것보다 그 아이가 직접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더 의미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리사이클 커리큘럼을 구체화했고 그게 알려지면서 학교 측에서 교육을 요청해왔어요. 학생 개인에게 교육비를 받지 않고 학교나 교육청과 계약해 교육을 나누고 있어요.”
오 대표가 약속의 자전거를 자전거 문화공간이자 자전거 문화교육회사라고 하는 건 이 때문이다. 리사이클링 교육뿐 아니라 자전거 타는 방법, 자전거 안전 교육, 자전거를 타면서 부딪치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 등 자전거에서 비롯된 모든 것을 알려준다.
자전거와 사회문제를 결합해 문제의 위험성을 알리고 해결하려는 목적의 ‘소셜 라이딩’ 프로그램도 있다. 일종의 나눔 활동으로 수익 모델이 아닌 캠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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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문제의 위험성을 알리고 해결하려는 목적의 ‘소셜 라이딩’ 캠페인 현장 ⓒ약속의 자전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기부 라이딩을 한 적 있어요. 봉사활동으로 방문한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피해자 할머니들을 통해 들은 과거가 제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참담했어요. 그곳에 사람들이 많이 올수록 그 이야기를 널리 알릴 수 있다고 생각했죠. 서울에서 경기 광주까지 자전거 라이딩을 할 사람들을 모았어요. 참가비 최소 1만 원을 받았고 모든 금액은 피해자 할머니들께 기부했어요. 자전거나 헬멧에 노란 리본을 매고 팽목항까지 함께 달린 적도 있고요.”
약속의 자전거의 ‘약속’은 여기 구성원의 의지를 상징한다. 오 대표를 포함한 네 명은 저마다 맡은 역할을 바탕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나가고자 한다. 자전거 타기, 정비하기, 제작 및 디자인하기, 연구하기가 그 역할이다. 이들의 활동을 두고 일각에서는 기업으로서 해야 할 이윤 추구가 가능한지 우려하지만 오 대표는 확고하게 답한다.
“기업이기 때문에 1순위로 추구하는 건 수익이에요. 하지만 0순위는 의미 있는 문화 만들기예요. 회사가 3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지금 보면 ‘우리 돈 벌자, 돈부터 벌어야 한다’고 강조하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좋은 가치를 나눠주자’고 하니 수익이 계속 늘더라고요. 창업 이후 한 달간은 2만 원 벌었는데 말이죠.”
오 대표는 요즘 약속의 자전거가 만든 재활용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청년들을 이전보다 많이 본다고 했다. 그가 약속하는 그리고 꿈꾸는 ‘자전거로 만드는 세상’은 이미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