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보다 무섭고, 좀비보다 살벌한… 졸업, 취준생이라는 암흑의 터널로 들어가는 길이다.”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화산섬, 그 섬의 이름은 별리섬이다. 스펙을 쌓기 위해서 배에 오른 두 청년은 각각 수학과 영어를 담당했다. ‘오지랖 떨지 말자, 조용히 스펙이나 쌓자’고 다짐했던 청년의 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허물어진다. 영화 ‘별리섬’은 34분짜리 단편영화다. ‘웰컴 투 동막골’, ‘조작된 도시’ 등을 만든 박광현 감독이 배종이라는 이름으로 연출했다. 그는 “나 역시 새로 데뷔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처음에 ‘별리섬’을 제안 받았을 때는 장편영화 준비 중이라 거절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실제로 섬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이 바뀌었어요. 이들에게서 뿜어지는 밝은 기운과 에너지가 제 가슴까지 뜨겁게 만들었습니다.”
영화 말미에는 실제로 일주일에 한 번씩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가 강의를 진행하는 ‘마이 드림 클래스’에 참여하는 강사들의 조각 인터뷰가 나온다. 이들은 “아이들이 처음으로 마음을 열 때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고 했다. 처음엔 긴장돼서 분필을 쥔 손이 바들바들 떨리던 이들이 어엿한 선생님이 된다.
쏟아지는 별이 반짝이는 섬에서 일어난 일
섬에서 만나는 이들은 중학생이다. ‘중2’답게, 저마다 통제되지 않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미래의 첩보원을 꿈꾸는 나라, 뷰티 유튜버를 꿈꾸는 봉선, 중2병이 말기에 다다른 중희, 같은 습관을 똑같이 반복하는 쌍둥이, 수업에 아예 나타나지 않는 상구 등이 그렇다. 영화의 첫 시작은 작은 배에 오른 영어 교사 한기탁(변요한)과 수학 교사 정석(공승연)의 얼굴을 비춘다. 뱃멀미와 두려움으로 흔들리는 기탁의 얼굴은 섬에 닿기 전부터 수심이 가득하다. 반면 이미 섬의 ‘스타 강사’가 된 정석은 여유롭다. ‘수학의 정석’이라는 소개부터가 믿음직스럽다. 변요한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마치고 차기작으로 ‘별리섬’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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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별리섬’ 출연진, 왼쪽부터 배우 변요한, 공승연, 정윤석 그리고 배종감독 ⓒC영상미디어
“드라마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단편영화를 다시 찍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던 중이라 반가웠습니다.”
그의 첫 데뷔도 단편영화였다. 2011년 ‘토요근무’라는 짧은 영화를 시작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독립영화에만 30편 이상 출연해 기본기와 연기력이 탄탄하다는 평을 받는다. 정작 그는 “연기가 나를 구했다”고 말한다.
“어릴 때 수줍음이 많았어요. 사람들 앞에 서면 늘 말을 더듬었죠. 긴장돼서 전화도 받지 못할 정도였어요.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성극에 참여하게 된 것도 부모님의 권유였고요.”
이상한 일은, 무대에 오르면 그가 말을 더듬지 않았다는 거다. 이후로 그는 연기가 점점 좋아졌지만, 그에 반해 부모님의 근심은 커졌다. 그의 학창시절 역시, 뜻밖의 곳에서 에너지가 분출하곤 했다.
“연기를 하겠다는 제 결심에 부모님의 반대가 컸어요. 차라리 유학을 가라면서 중국으로 보내셨죠. 군대에 가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때도 제 결심이 그대로라고 말씀드리자 부모님도 수긍하셨어요.”
제대 후 늦깎이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간 변요한은 한을 풀듯 작품을 찍는다. ‘미스터 선샤인’이라는 대작을 마치고 5일 만에 ‘별리섬’ 촬영에 들어간 것도 그 ‘초심’을 되찾고 싶어서였다.
“실험적인 작품을 해보고 싶었어요. 예산도, 시간도 빡빡할 때 느껴지는 공기가 있거든요. ‘제발 잘 완성되기만을 바라는’ 한결같은 마음이요.”
공승연에게도 이번 작품은 뜻깊다. 그 역시 연기자가 되고 싶어 애썼지만, 숱한 고배를 마셔야 했던 시간이 있었다. 오디션에 하도 많이 떨어져 오디션에서 주눅 들지 말자며, 스스로에게 편지를 쓰는 게 습관이 될 정도였다. 처음 ‘별리섬’의 제의가 들어왔을 때도 안 할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모험이었지만, 좋은 감독님과 함께하는 작품이니 해보자는 마음이었어요. 감독님이 만든 전작을 다 찾아보며 공부했어요. 감독님의 스타일과 연출 방식을 알고 싶었거든요.”
배우들의 이런 마음이 통했는지 결과적으로 ‘별리섬’은 무사히 완성되어 관객의 곁에 안착했다. ‘무사히 마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비슷한 마음을 배종 감독도 느꼈다고 했다.
“‘별리섬’을 촬영한 제주도의 기후가 좋지 않습니다. 언제 비가 올지, 언제 바람이 불지 아무도 몰라요. 제작진의 반대가 많았죠. 하지만 영화의 느낌과 제주도의 분위기가 무척 잘 어울렸어요. 제가 고집을 부려서 제주도에서 촬영했는데, 다행히 무사히 마치게 됐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베테랑’ 강사로 나오지만, 정작 영화 촬영이 처음인 배우 공승연은 “첫 영화를 ‘별리섬’으로 시작하게 되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영화 속에선 섬을 처음 찾은 한기탁(변요한)이 긴장으로 불면증과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를 덤덤하게 위로해주는 게 정석(공승연)의 역할이다. 실제로는 첫 촬영을 앞둔 공승연이 긴장으로 불면증과 악몽에 시달렸다. 그때마다 그에게 힘을 준 건 ‘육룡이 나르샤’에서 함께했던 변요한이었다.
“저는 어려서부터 데뷔해서 연기를 하는 게 꿈이었어요. 지금도 계속 연기하는 게 꿈이고요. 그런데 이번 영화를 하면서 꿈이 하나 더 생겼어요. 앞으로도 영화를 계속 해보고 싶고, 영화제에도 나가고 싶어요.”
누구나 별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별리섬’은 서먹서먹한 만남으로 시작해 앞으로의 만남을 기약하며 끝난다. 실제로 촬영도 그랬다. 변요한은 “아이들에게 더 다가가고 싶었고, 말을 걸고 싶었지만 첫날 촬영이 교실 안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이라 참았다”고 했다. 섬에 처음 도착한 외지의 ‘쌤’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데면데면한 모습은 연출이 아닌 실제였다. ‘별리섬’의 마지막 장면은 아이들과 쌤이 함께 바닷가를 뛰어노는 모습이다.

▶ 영화 ‘별리섬’ 스틸컷
“하루하루 촬영이 쌓이면서 아이들과도 호흡이 쌓이는 게 느껴졌어요. 친구들이 먼저 장난을 걸기도 하고요. 어린 친구들이지만 저보다 정신 연령이 높더라고요. 제가 많이 배웠고 보람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공승연은 이 작품을 통해 ‘한 뼘 성장한 느낌’이라고 했다. 전에는 일을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한 느낌이라 ‘소처럼’ 일해야 했지만, 이제는 여유를 갖고 작품에 임할 수 있게 됐다.
“극 중에 정석과 기탁이 별을 보면서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와요. ‘와, 별이 참 많다’라는 느낌으로요. 그게 우리 영화의 정서를 잘 설명해주는 거 같아요. 각박한 세상이지만, 좋은 영향을 주는 별 같은 존재가 되고 싶은 거죠. 그렇게 영감을 주고 교류하고 싶어요.”
변요한은 이번 작품을 통해 자신의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다. 실제 교사인 어머니가 ‘교단에 설 때 이런 마음이겠구나’ 싶었다. 때문에 ‘어떻게 연기할까’보다 ‘어떻게 메시지를 전해야 하나’를 고민했다.
“‘별리섬’을 찍기 전까지는 어떤 게 ‘참교육’인가에 대한 의문이 많았어요. 제가 맡은 한기탁이라는 인물이, 아마 누군가는 기다리고 있었던 선생님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한기탁은 서툴다. 아이들의 마음에 다가가는 것도 서툴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서툴다. 하지만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기다린다. 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를 기다리고, 아이들이 자기의 꿈을 이야기하기를 기다린다. 현기증 나는 속도전을 벌이는 도시를 떠나 드넓은 바다를 건너면 거기 ‘별리섬’이 있다. 무농약, 무공해 영화 ‘별리섬’은 유튜브와 네이버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