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인류 보편의 가치이며, 샤갈의 그림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다. 그런 의미에서 ‘샤갈, 러브 앤 라이프’ 전은 특별하다. 샤갈이 “우리 인생에서 삶과 예술에 의미를 주는 단 한 가지 색은 바로 사랑의 색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그는 사랑을 통해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고, 작품을 통해 삶의 기쁨과 사랑을 노래했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열렸던 기존의 전시와 달리 샤갈 개인, 가족, 그의 친구들의 일상을 담아내며 인생에 대한 생각, 세상에 대한 관점을 집중 조명한다. 샤갈 특유의 화사한 유화보다 자서전 <나의 인생(My Life)>, 고골의 <죽은 영혼들>, 프랑스 시인 장 드 라 퐁텐의 <라퐁텐 우화> 등 샤갈이 작업한 북 일러스트레이션에 초점을 맞춰 그의 미술과 문학, 언어, 콘텐츠 간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색채 마술사로 불리는 샤갈의 이면을 볼 수 있는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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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탈출’ 1964. 4.8mx9.5m. 이스라엘 국회의사당 크네셋 중앙에 전시된 대형 태피스트리 작품. 율법
이 적힌 경석을 받는 모세와 유대 민족들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탈출하는 모습을 통해 유대인들의 역사를 드러낸다. 우측에는 홀로코스트의 비극이 묘사되어 있다, 샤갈의 말년 모습 ⓒC영상미디어
지난 6월 5일부터 시작된 전시는 개막 한 달 만에 6만 3000여 명이 찾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이스라엘 미술관이 아시아 최초로 기획한 컬렉션 전으로 샤갈과 그의 딸 이다(Ida), 세계 각국의 후원자들로부터 기증받은 샤갈의 작품으로 엄선되었다. 전시는 초상화/나의 인생/연인들/성서/죽은 혼/라퐁텐의 우화/벨라의 책 등 총 7개 섹션으로 구성되어 회화, 판화, 삽화, 태피스트리, 스테인드글라스 등 150여 점의 작품을 통해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종합예술가로서 활약한 샤갈의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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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과 함께 제공되는 멀티미디어 영상. 화면은 샤갈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에펠탑의 신랑 신부’로 전시회에 빠진 샤갈의 걸작들도 감상할 수 있다. ⓒC영상미디어
스테인드글라스로 구현한 색의 향연
전시장에서 사람들의 발길이 오래 머무는 곳은 예루살렘 하다사 병원의 유대교 회당을 위해 샤갈이 작업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성서’다. 전시장을 채운 2.5m 높이의 스테인드글라스 열두 개로 구성된 이 창문은 세 개씩 짝을 지어 네 개의 벽면을 구성하고 있다. 열두 개의 창문은 각각 야곱의 축복을 받으며 태어난 아들 열두 명과 그의 후손들로 구성된 열두 지파(支派)를 상징한다. 지파를 묘사하기 위해 샤갈은 수많은 동물과 다양한 이미지를 배열했다. 회당의 구조는 정육면의 공간 위에 또 다른 정육면체의 스테인드글라스 구조물이 올라가 있는 형태로 내부에 들어가면 마치 거대한 랜턴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빛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색이 변해 몽환 그 자체를 경험할 수 있다. 샤갈이 전하는 색의 향연이다.
‘성서’는 이스라엘에 남아 있는 샤갈의 작품 중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손꼽힐 정도다. 국내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은 유명하다. 샤갈은 자신의 작품 스타일, 주제 등과 잘 어울린다고 여겨 1950년대부터 스테인드글라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흙이 열에 의해 하늘로 변신한다’며 변화의 예술로 여겼고, 기술 연구에도 빠져들었다. 그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나의 심장과 세상의 심장 사이에 놓은 투명한 칸막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수작업으로 완성한 채색 에칭 기법의 라퐁텐 우화 시리즈도 눈길을 끈다. ‘라퐁텐 우화’는 <이솝우화>를 재구성해 삽화로 그린 작품이다. 당시 삽화를 그리는 작가는 많았지만 샤갈처럼 주관적인 견해를 곁들어 작가가 가진 예술성을 돋보이게 한 작품은 없었다. 샤갈은 유명한 화상이었던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요청으로 라퐁텐의 삽화를 그리게 되었는데, 러시아 출신의 샤갈을 프랑스 전통 문학의 삽화가로 택한 것은 대담하고 혁신적인 결정이었다.
<라퐁텐의 우화>는 240여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는데, 러시아의 전원생활과 사람과 동물에 애정을 가진 샤갈의 그림과 라퐁텐 우화의 기발한 상상력이 만나 꽃을 피웠다. 샤갈은 고양이가 여자로 변하거나 딱정벌레가 독수리에게 복수하는 것을 그럴 듯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사걀의 위트와 색채 덕에 양, 사자, 수탉, 염소, 공작새 등 상상 가능한 모든 야수와 날짐승, 때로는 벌레와 물고기까지도 사랑스럽게 표현되었다. 동물세계에 애정을 갖고 있던 샤갈의 특징이 라퐁텐 시리즈를 통해 분명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샤갈의 색감은 판화에서도 드러나는데, 당시 인쇄술로는 샤갈의 색채를 표현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때문에 샤갈은 과슈(수채물감의 일종) 작품을 원본으로 한 흑백동판화를 제작하고, 후반작업에 수채화 채색 작업을 추가했다. 이 과정에서 원본 그림과 흡사한 질감을 만들어내기 위해 샤갈은 가능한 모든 에칭 기법을 사용했다. 샤갈은 과슈 원작의 섬세한 부분까지 모두 표현해내기 위해 붓과 바늘을 함께 사용해 동판을 제작했고, 이 두 가지 기술조합 덕분에 극도로 복잡한 명함 구조까지 표현할 수 있었다. 덕분에 200점 세트 에디션 중 85점에 직접 수채화를 더해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에디션이 됐다. 손으로 채색한 에칭은 유일무이하기 때문이다.
샤갈의 그림은 상상과 현실 사이 어디쯤에 있다. 샤갈은 ‘흐르다’, ‘스며들다’, ‘날아다니다’와 같은 낱말을 써서 아내 벨라에게서 느낀 유쾌한 기분과 행복을 시적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샤갈의 그림 속 연인들은 중력에서부터 자유롭다. 언어 개념을 회화 이미지로 충실히 표현한 것이다. 시적 은유를 시각적으로 옮긴 것이 샤갈 그림의 특징이다. 실제로 샤갈은 자신의 작품이 ‘시적’이라고 표현되는 것을 좋아했다. 샤갈에게 시란 관능적이고 미학적인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샤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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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인들│Marc Chagall The Lovers, 1937, Oil on canvas, The Israel Museum, Jerusalem by Avshalom Avital©ADAGP, Paris – SACK, Seoul, 2018, Chagall?
2 연인들 2│Marc Chagall The lovers, 1954-55, Gouache, India ink, wash and watercoloronpaper, The Israel Museum Jerusalem by Avshalom Avital© ADAGP, Paris –SACK, Seoul, 2018, Chagall?
3 비테프스크 위에서│Marc Chagall Above Vitebsk, Undated, Gouache, watercolor, graphite and crayon on cardboard, The Israel Museum Jerusalem by Avshalom Avital©ADAGP, Paris – SACK, Seoul, 2018, Chagall
4 사랑하는 연인들과 꽃│Marc Chagall Pair of Lovers and Flowers, 1949, Color lithograph, The Israel Museum, Jerusalem by Elie Posner©ADAGP, Paris –SACK, Seoul, 2018, Chagall
5 다윗│Marc Chagall David, 1956, India ink, gouache, watercolor and graphite on paper, Israel Museum Jerusalem by Avshalom Avital© ADAGP, Paris – SACK, Seoul, 2018, Chagall
사람들이 샤갈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예술이 특수성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넘어 정서적인 공감을 자아내는 보편·타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어느 시대 예술에서도 보기 어려운 삶의 환희와 쾌활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내면의 시적 호소력과 색채의 화려한 대비가 사람의 마음을 이끈다.
샤갈은 ‘색채의 마술사’로 불릴 정도로 화사한 색채와 아름다운 화풍이 특징이다. 하지만 그의 삶이 그림처럼 밝고 행복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러시아 변방의 유대인 거주지인 비테프스크에서 태어난 샤갈은 베를린을 거쳐 파리에 정착하지만, 조국의 혁명에 휩쓸려 다시 이방인으로 떠돌아야 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유대인 학살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기도 했다. 이처럼 암울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그림에는 초현실적인 환상과 몽환이 배어들어 있다. 샤갈은 고흐나 고갱, 잭슨 폴록과 같이 ‘예술가’ 하면 떠오르는 비운의 천재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전쟁과 유대인 박해 그리고 영원한 뮤즈인 부인 벨라의 죽음 등 인생의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삶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가난하고 굴곡진 삶을 살았지만 인생의 한편에서 희망과 사랑을 놓지 않았다. 샤갈의 인기는 작품 안에 담긴 낙천주의와 천진함이 빚어낸 것이다. 샤갈이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는 저마다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아름다운 위로로 느껴진다. 20세기 거장이 건네는 위로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샤갈, 러브 앤 라이프 展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
기간 6월 5일~9월 26일까지
시간 오전 11시~오후 8시
요금 성인 1만 5000원/ 중·고교생 1만 1000원/ 어린이 9000원
문의 (02)332-8011/ www.chagall.co.kr
강보라│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