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전례 없는 무더위로 수영장보다 더 붐빈 곳이 박물관이다. 유물을 보관하는 박물관은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기 때문에 기온을 20℃에서 ±4℃를 유지해 어느 계절에 방문하더라도 쾌적한 공간이다. 여기에 시대 최고의 명품들로 가득하니 피서지로 이만한 곳도 없다. 특히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은 30만㎡(약 9만 평)의 방대한 공간에 40만여 점의 유물을 보관·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세계에서 여섯 번째 큰 규모로 관람객 수 또한 아시아 1위, 세계 10위를 자랑한다. 소장된 40만여 점의 유물 중에 국보급 유물만 33만여 점으로 전시 유물을 꼼꼼히 살펴보려면 일주일의 시간이 소요될 정도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유물만큼이나 빛나는 사람들이 있다. 박물관 살림을 관장하는 박물관 직원들이다. 저마다의 분야에서 소리 없이 움직이는 이들 덕분에 현재의 수준 높은 관람이 가능하다. 유물에 가려 있던 박물관 직원들에게 박물관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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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중앙박물관 로비의‘경천사지십층석탑’(국보86호)과 함께한 학예사들. (사진 왼쪽부터) 오세은, 김연신, 조혜진, 곽흥인, 김희정 ⓒC영상미디어
전시를 넘어 교육과 문화 교류의 장으로
“유물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함부로 행동할 수 없지요.”
전시과 오세은(48) 학예연구사는 유물을 대하는 박물관 직원의 태도를 한마디로 정리했다. 우리 유물을 지금까지 지켜올 수 있던 것도 이들 덕분이다. 2005년 10월 현재의 용산 박물관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 여러 사회적 격변기를 겪으면서 55년 동안 일곱 번의 이사를 거쳐야 했다. 역사의 혼란기에 유물을 일괄 관리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으면서 유물 안전 관리에 빨간불이 여러 차례 켜졌고, 권력의 압박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특히 1945년 해방 이후 조선총독부박물관에 있던 문화재들이 6·25전쟁 발발로 부산으로 이전되면서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당시 인민군의 문화재 수탈을 막은 것은 박물관 직원들이었다. 박물관 직원들은 문화재 포장에 시간을 끌면서 국군이 다시 서울에 입성하는 9·28 수복까지 문화재의 북한 수송을 막았다. 결국 포장된 문화재가 없어 인민군은 빈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박물관 직원들의 기지가 문화재를 보호한 것이다.
유물의 약탈과 분실은 어제 일만은 아니다. 우리 시대에도 동병상련을 느낄 수 있는 전시가 열리기도 했다. 오세은 학예연구사는 2016년 있었던 ‘아프가니스탄의 황금문화’를 인상 깊은 전시로 기억했다. 오랜 내전을 겪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유물은 10년 넘게 국외로 떠돌면서 전시를 이어오고 있는데, 약탈의 위험 때문에 본국으로 반입할 수 없도록 법으로 금지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련된 전시 대여료로 자국의 박물관 운영 경비를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리적인 이유로 그리스, 로마, 지중해, 인도, 중국 등의 영향을 받은 아프가니스탄의 문화재는 세계적인 보물로도 큰 가치가 있다.
“유물 보호를 위해 고의로 박물관 수장고의 문을 폐쇄하고, 문을 열 수 있는 세 개의 열쇠를 나눠 가진 아프가니스탄 박물관 직원들의 정신을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내일을 기약하며 결단을 내렸을 이들의 심정이 느껴져 진심으로 가슴이 아팠던 전시였습니다.”
문화재는 한 민족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상징하는 문화유산이다. 그렇기에 시대와 지역을 넘어 소중하게 보존·관리해야 한다. 아프가니스탄의 현재 상황에서 우리는 과거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박물관을 생각하면 유물 전시를 먼저 떠올리지만 교육과 문화 교류의 장으로 박물관만 한 곳도 없다.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의 ‘여름밤, 박물관에서’는 한밤중에 손전등을 들고 탐험하듯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어 인기다. 처음 프로그램을 기획한 어린이박물관 조혜진(41) 학예연구사는 영화 ‘박물관이 살아 있다’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워싱턴 자연사박물관에서 ‘슬리핑 인 더 뮤지엄(sleeping in the museum)’ 프로그램이 시작된 후로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는데 우리 박물관에서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관리의 어려움 때문에 텐트를 치고 숙박하는 초기와 달리 취침이 빠지게 되었지만 야밤의 박물관 탐험은 여전히 매력적인 프로그램이다. 조혜진 씨는 기획자로서 유물에 빠져서 집중하는 아이들을 보는 것이 커다란 기쁨이라고 말한다.
박물관 전시는 문화 교류의 정점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은 지역의 격차를 줄이고, 국가 간에 문화를 교류하는 외교의 장이 되기도 한다. 도예를 전공한 뒤 한국도자사를 연구하는 고객지원팀의 김희정(44) 학예연구사는 지방 소속 박물관에서 지역 문화를 소재로 한 전시들을 기억한다.
“다완(茶碗)의 본향으로 유명한 경상남도 지역의 사금파리를 전시했었데, 준비 과정에서 도자기편을 만지면서 깨진 자기편의 매력에 흠뻑 빠졌죠. 그리고 ‘조선, 지방 사기의 흔적’을 전시하며 지방 자기의 아름다움을 알린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김희정 학예연구사는 광양이나 완도 등의 지역전을 준비하면 해당 지역에 직접 가서 일일이 조사해야 하는 힘든 단계가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남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에 담고, 독특한 지역 문화도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일련의 과정은 전시에 고스란히 담겨 지역의 문화를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전시는 지역을 넘어 국제 교류의 가교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문화교류홍보과 김연신(42) 전문경력관은 한·중·일 국립박물관장회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기념하며 열린 ‘동아시아의 호랑이 미술-한국·일본·중국’ 특별전을 대표적인 문화 교류로 꼽았다.
“평창동계올림픽의 마스코트 ‘수호랑’이 백호(白虎)의 상징이라는 점에 착안해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 일본의 도쿄국립박물관, 중국의 국가박물관이 동아시아 호랑이 미술을 주제로 공동 주최한 전시였습니다. 이것은 평창동계올림픽을 기념하는 의미도 가지지만 문화올림픽을 실현하는 데 대외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로 밝히는 우리 역사
국립중앙박물관의 ‘보존과학부’는 병들고 아픈 문화재를 치료하는 병원이자 의사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의학이 인류의 생명 연장을 목적으로 한다면 보존과학은 인류 문화유산에 생명을 불어넣어 미래로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현재는 유물의 재질에 따라 보존과학부 전문 분야가 세분화되어 있지만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한 사람이 두세 종류 이상의 재질을 담당해야 했다. 현재는 과학기술 발전과 함께 유물 보존과 복원력으로 세계적인 기술을 자랑한다. 보존과학부에는 ‘6인치(약 15cm) 6피트(약 180cm)’라는 법칙이 있는데, 15cm 정도의 거리에서 보면 손을 댄 부분을 확인할 수 있도록 보존 처리를 하고 180cm 이상의 거리로 떨어지면 분간을 못한다는 뜻이다. 복구의 흔적을 남기는 것은 문화재 관리자가 더욱 신경 쓸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다. 물론 자기와 같이 감상의 성격이 강한 문화재는 육안으로 식별이 안 될 정도로 말끔하게 작업해야 한다. 보존과학부의 곽홍인(44) 학예연구사는 “파편과 파편을 맞춰가면서 어떤 모양일까를 예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복원한다”고 말했다. 한지의 경우 외국에서 보존 의뢰가 들어오기도 한다.
“한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우리나라뿐이고, 외국에서는 배접(表具)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독보적인 보존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곽홍인 학예연구사는 유물의 기술력이나 숨겨진 사실을 밝혀낼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조선시대 ‘비격진천뢰’가 대표적이다. 도화선의 길이에 따라 폭발 시간이 결정되는 것이 특징으로 조선의 시한폭탄으로도 불렸는데, 폭발과 함께 내부 철편이 쏟아져 나와 적을 해치도록 설계됐다. 축구공 크기의 비격진천뢰는 단면 두께가 5cm 정도로 당시의 화약 기술로 폭파할 수 없는 두께라 짐작됐다. 하지만 철판 내부의 수많은 기공을 CT 촬영으로 밝혀내면서 폭발을 용이하게 만든 선조들의 과학기술에 모두 감탄할 정도였다. 신라시대 학자 최치원의 초상화인 ‘운암 영당 고운 선생 영정’에서도 X선 투과 촬영 조사로 화면 뒤에 숨겨진 ‘동자승’의 그림을 밝혀내기도 했다. 이로써 단순한 문인의 초상화로 알려졌던 그림이 산신도로 정정되기도 했다. 현재의 기술과 장비로도 손댈 수 없어 보관만 하고 있는 문화재도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된 ‘비단벌레 장식 금동 말안장 뒷가리개’는 1975년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이후 수장고에서 빛과 차단된 채 글리세린 용액 속에 보관돼 있다. 빛에 장시간 노출되거나 건조해지면 색깔이 변하기 때문이다. 이 문화재는 나무, 비단벌레 날개, 금동의 복합재질로 되어 있는데, 세 가지 재질 모두에 적합한 약품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각 재질을 분리하면 가능하겠지만 150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서 재질이 워낙 견고하게 붙어 미래를 기약하는 상황이다.
박물관에 있으면 ‘관리하고 지키는 건 직원들 몫이고, 관람객은 편하게 누려야 한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고객지원팀의 김희정 학예연구사는 “직원들이 과거와 현재를 지키는 사람이라면 관람객은 미래까지 내다보고 지켜야 하는 사람이죠. 박물관은 결국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소중히 지켜야 하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어린이박물관의 조혜진 학예연구사도 “공공재를 소중히 여기는 인식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공공 기물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는 정신 역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소중한 유산”이라고 말했다. 박물관에 필요한 것은 ‘민원인’이 아닌 ‘협의자’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참여할 때 ‘협의자’가 될 수 있다. 그렇게 여러 사람들과 정신적·물질적으로 함께할 때 박물관의 사회적 의미는 더욱 커지고 공공의 의미가 진정으로 빛을 발한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황금문명 엘도라도-신비의 보물을 찾아서
2009년 특별전 ‘태양의 아들, 잉카’, 2012년 특별전 ‘마야 2012’에 이어 6년 만에 개최하는 중남미 문명 특별전으로 콜롬비아 황금박물관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황금유물 등 322점을 국내 처음으로 소개한다. 영국박물관,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등 49개국에서 200회 이상 순회전시를 통해 흥행이 입증된 대표유물들로 구성됐다.
기간 8월 4일~10월 28일
요금 성인 9000원/ 중,고,대학생 8000원/ 초등생 7000원
지도예찬-조선지도 500년, 공간·시간·인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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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지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대규모 전시로 조선 지도를 새롭게 조명해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삶의 흔적을 살핀다. ‘대동여지도’ 원본을 포함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부터 대중에게 공개된 적 없는 중요 지도와 지리지까지 총 260여 점을 선보인다.
기간 8월 4일~10월 28일
요금 성인 6000원/ 중·고·대학생 5500원/ 초등생 5000원
강보라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