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한민족이 염원했던 해방을 맞았다. 한반도 각지에서는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민족이 염원하던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를 세울 희망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광복 이후 정부가 세워진 1948년까지, 나라가 나아갈 길을 의논하는 각기 다른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면서 어수선한 상황이 이어졌다.
나라가 나아갈 방향에 의견을 표출한 것은 비단 정치지도자나 지식인만이 아니었다. 노동자, 농민, 문화예술가 등 일반 대중도 나라의 기틀을 세우는 데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일반 대중부터 사회 지도층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되찾은 나라의 주체가 돼 일제강점기 동안 만들어졌던 체제를 없애고 우리 민족에게 부합하는 사회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은 나라가 나아갈 방향뿐 아니라 빼앗겼던 권리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정부가 수립되기까지 혼란스러웠던 그 3년의 삶 속에서 갑남을녀가 꿈꾼 나라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사회 지도층이 아닌 민초들의 시선에 주목

▶ ‘그들이 꿈꾸었던 나라’ 전이 열리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3층에 있는 특별전시관 ⓒC영상미디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대한민국 정부수립 70년을 기념해 기획한 특별전 ‘그들이 꿈꾸었던 나라’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회 지도층이 아닌 민초들의 시선으로 당대를 살펴본다. 대중은 저마다의 영역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데 능동적이었다. 전시는 시대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 200여 점과 사진, 영상을 바탕으로 1940년대 후반을 살았던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꿈을 펼쳐놓았다. 서로 다른 이념과 주장 때문에 빚어진 갈등과 경쟁도 있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 사회의 틀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 2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대중음악과 유행어가 전시돼 있다.
3 일제강점기부터 1950년대까지 사용한 인쇄기
4 해방 당시 인기를 끌었던 책 <소련기행>
5 미군정 당시 발간된 책과 문서
6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는 관람객들 ⓒC영상미디어
전시는 크게 5부로 구성됐다. 박물관 3층에 있는 특별전시관에는 시대순으로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가 자리하고 있다. 제일 먼저 관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해방 직후인 1945년의 한반도 모습을 담은 ‘격동의 공간 한반도’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헌법 전문이 눈에 띈다. 해방을 맞은 한반도에는 희망이 넘실댄다. 해방을 맞은 한반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쓴 기사, 만평, 전단뿐 아니라 한반도에 어떤 이념을 가진 정부가 들어서면 좋을지를 조사한 여론조사 자료가 자리하고 있다. 1945년 12월 열린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38선을 기점으로 남쪽에는 미군 사령부가, 북쪽에는 소련군 사령부를 세우기로 했다는 신문 자료, 일기, 소설 자료로 당시의 여론을 알 수 있다.
2부로 이어지는 ‘해방 이후’에는 교통, 통신, 의료 등 기간산업부터 박물관, 도서관 등 문화 기반시설을 구축하기까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움직임과 민족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일본에 협력했던 부역자를 보는 비판적인 시선과 적산(敵産)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열띤 논의를 보여준 자료도 있다.
반민족행위조사위원회에서 일제강점기 시절 중추원 참의를 지낸 김영진에게 위원회에 출석하라는 내용을 담은 ‘소청 안내서’, 194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초반까지 서울에서 부산까지 운행한 특급열차 ‘해방자호’ 운행 기념 봉투, 조선어학회에서 1945년 발간한 <한글의 바른 길> 등의 자료가 전시돼 있다.

▶ 1 인쇄기와 함께 썼던 활자판
2 해방 기념 포스터와 1945년 8월 15일자 매일신보 기사
3 해방 이후 서점의 모습 ⓒC영상미디어
해방 이후 사회에 대한 자료를 보고 난 다음에는 ‘고단한 삶과 희망’이 이어진다. 일제강점기 때 세계 각지로 흩어졌던 동포들이 다시 희망을 품고 한반도로 돌아온다. 해방 이후 남한의 인구는 1611만 6785명에서 1949년 2052만 6570명으로 크게 불어났다. 일제강점기 때 2등 시민으로 차별대우를 받았던 노동자, 여성, 농민이 사회적 지위를 새롭게 자각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만든 책과 전단도 볼 수 있다. 하지만 혼란기 속에 민생은 피폐해졌다. 남한에 들어선 미군정은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정책을 펴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늘었고 이 때문에 사회 혼란이 가중됐다. 미군정의 식량정책에 반발해 1946년 대구에서 발생한 ‘대구 10월 사건’을 다룬 당시 신문 자료와 미곡출하명령서, 미곡 수집 할당량 통고서 등을 보면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그다음 ‘민의의 발산’에서는 신문, 영화, 방송 등 다양한 매체에 기록된 시대적 고민과 상황을 볼 수 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백범일지>, <내가 넘은 삼팔선> 등 당대의 베스트셀러와 ‘울고 넘는 박달재’, ‘해방의 노래’, ‘우리의 소원’ 등 당시 유행했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코너가 마련돼 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남북의 변화를 보여주는 ‘정부 수립, 그 후’가 전시의 대미를 장식한다. 유진오 헌법 초안 원본을 비롯한 제헌국회 활동을 기록한 자료와 제헌국회에서 활동한 의원의 사진첩, 1948년 총선거 참여를 독려하는 전단 등의 자료를 볼 수 있다. 해방부터 정부 수립까지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 꿈꾼 나라의 모습과 시대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12월 2일까지 이어진다.
전시 정보
기간 12월 2일까지
장소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198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요금 무료
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수·토요일 오후 9시까지 야간 개관)
문의 02-3703-9200
장가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