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핫한 화가는 단연 김환기다. 얼마 전 그랜드 하얏트 홍콩에서 열린 서울옥션 홍콩 ‘제25회 세일’에서 김환기 작가의 붉은색 전면점화 ‘3-Ⅱ-72 #220’이 85억 3000만 원에 낙찰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3-Ⅱ-72 #220’이 우리나라 미술품 경매가 최고 기록을 갱신한 것이다. 한국 미술품 경매가 1위부터 6위를 모두 김환기 작품이 차지하고 있다. 10위 안에는 8개 작품이 올랐다. 김환기 작품이 유독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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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환기 전이 열리는 대구미술관 2, 3 전시관. ‘환기블루’로 대표되는 선명한 파란색이 눈에 띈다. ⓒC영상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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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김환기 전을 찾은 관람객들
(우)김환기의 생애와 예술 세계를 공부할 수 있는 아카이브 전시관 ⓒC영상미디어
김환기는 우리나라 추상미술의 선구자이며 한국 미술의 국제화를 이끌어낸 장본인이다. 우리나라 서양화가 1세대 중 한 명인 김환기는 추상화에 항아리, 달 등 동양적 요소를 결합시켜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냈다. ‘환기블루’도 빼놓을 수 없다. 환기블루는 그가 그린 작품 대부분이 푸른색 색조를 띠고 있어 생긴 말이다. 김환기만이 갖고 있는 작품세계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김환기가 우리에게 가치 있는 작가로 기억되는 이유는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했던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작품 활동을 시작한 1930년대부터 세상을 떠난 1970년대까지 평생 예술의 본질을 탐구하고 자신의 철학과 정체성을 확고히 다지기 위해 노력했다.
작품을 통해 그의 철학과 노력을 엿볼 수 있는 ‘김환기 대규모 기획전’이 대구 수성구 대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제껏 진행된 김환기 전시 중 최대 규모다. 전시는 작가의 예술 세계에 영향을 준 도쿄, 파리, 뉴욕 시대로 구분해 작가의 작품 세계 전반을 순서대로 살펴볼 수 있게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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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집’_1936_Oil on Canvas_22x27cm
2 1971년 미국 뉴욕 맨해튼 스튜디오에서 작업 중인 김환기
3 ‘매화와 항아리’_1957_Oil on Canvas_55x37cm
4 ‘산월’_1959_Oil on Canvas_100x80cm
5 ‘무제’_1966_Oil on Canvas_177x126cm ⓒ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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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무제’_1969_Oil on Canvas_206x157cm
7 ‘10-VIII-70 #185’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연작_1970_Oil on Cotton_292x216cm ⓒ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볼 작품은 일반에 최초로 공개되는 붉은색 점화 ‘1-Ⅶ-71 #207’이다. 홍콩 경매에 낙찰된 ‘3-Ⅱ-72 #220’처럼 환기블루가 아닌 붉은 점면이 캔버스를 가득 채웠다. 작가의 구상 작품 중 최고가로 낙찰된 ‘항아리와 시’도 만날 수 있다. 김광섭 시인의 시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연작 중 가장 크기가 큰 ‘10-Ⅷ-70 #185’도 공개된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1970년 한국일보에서 주최한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전면점화를 선보이면서 김환기라는 이름이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입지를 굳히는데 바탕이 된 작품이다.
추상화에 한국적 서정성을 녹여낸 독창적 작품 세계
전시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파트가 ‘일본 동경 시대와 서울 시대’다. 김환기는 1930년대 초 일본 도쿄로 건너가 니혼대학 예술학원 미술학부에 다녔다. 당시 우리나라 유학생이 사실 묘사 위주의 아카데미즘이나 주관적 색채와 표현에 치중한 후기 인상주의, 야수주의에 관심을 보인 것과 달리 김환기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추상회화였다. 1936년에 그린 ‘집’을 보면 원근법을 없애고 배경의 색채를 노란색으로 통일해 집을 평면적으로 그리면서 추상화 작업을 시도했다. 도쿄 시대와 서울 시대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은 작가가 끊임없이 시도한 구상화 속에서도 바다, 항아리, 여인 등 한국적인 정서를 녹여낸 추상화가 대부분이다. 빨강, 초록, 노랑, 파랑, 검정 등 우리 고유의 오방색을 사용해 화려한 색감을 기반으로 한국 고유의 정서를 밀도 있게 그려냈다.
‘파리 시대와 서울 시대’에서도 항아리, 십장생, 매화 등을 동양적인 곡선과 전통을 소재로 한 구상화가 이어진다. 다만 고국을 떠나 타지에서 작업하다 보니 작가가 본인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파리에서 피카소, 마티스, 루오 등 많은 거장의 작품을 만나면서 스스로 예술가로서 가야 할 길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파리에서 그는 부인 김향안 여사에게 항상 “내 위치가 세계의 어디에 있나”를 물으면서 파리에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파리에서 김환기는 풍경화를 많이 남겼다. ‘산월’, ‘달 두 개’, ‘여름 달밤’ 등 고국에서 봤던 자연을 푸른색으로 일관되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뉴욕 시대’는 우리가 잘 아는, 화면 가득 끝없이 펼쳐진 점화가 완성된 시기다. 신문지에 그린 작품인 ‘26-Ⅰ-68’을 보면 밤하늘에 떠 있는 달과 별을 그렸지만 같은 해 다른 작품에서는 형태가 사라지고 화면을 색면이나 점으로 덮기 시작한다. 1970년 이후부터 김환기가 세상을 떠나는 1974년까지 작품의 크기는 점점 더 커진다. 또한 선이나 점으로만 그린 점화도 절정을 이룬다. 서양미술 재료인 유화를 사용하면서 한국화의 특징인 먹의 번짐, 농담(濃淡)의 조절, 겹침 기법을 써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뉴욕 시대 끄트머리에는 농담이 다른 파란색 화면이 차례대로 걸려 있는 일명 ‘파란 방’이 있다. ‘환기블루’로 불리는 푸른 색채의 전면점화로 구성된 공간에는 작가가 평생에 걸쳐 탐구했던 신비롭고 초자연적인 세계관을 가늠할 수 있다.
전시장에는 김환기의 작품뿐 아니라 그의 생애와 철학을 알 수 있는 아카이브 파트도 따로 마련됐다. 작가의 연보와 사진, 표지화, 판화, 팸플릿, 도록, 서적뿐 아니라 그가 직접 썼던 안료와 공구 등 유품들도 자리하고 있다.
전시장 한쪽에 김환기의 일기 중 한 부분을 발췌한 구절이 적혀 있다. “내가 그리는 선,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 생을 다하는 순간까지 고국의 자연과 교감하고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한 김환기. 그의 철학과 예술 여정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8월 19일까지 열린다.
전시 정보
기간 8월 19일까지
장소 대구 수성구 대구미술관
요금 성인 1000원, 청소년(14~25세)·대학생·군인(하사 이하)·예술인(패스카드 소지자) 700원, 초등학생(8~13세) 700원
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입장 마감 오후 6시)
휴관 매주 월요일
문의 053-803-7900
장가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