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은 개인적 역사를 구성한 것”이라고 말했을 만큼 니키 드 생팔(1930~2002)의 작품은 곧 자신의 인생을 의미했다. 니키 드 생팔은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한 누보 레알리즘의 대표 작가다. 어둡고 절망적인 오브제에서 화려하고 생명력 넘치는 작품으로 탄생하기까지, 누군가의 아픔에 예술의 위로를 건넬 수 있기까지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의 인생을 알 필요가 있다.
화려한 색채, 도발적 표현, 생동감 넘치는 형상을 먼저 마주한다면 니키의 유년 시절은 상상할 수 없다. 그는 보수적인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순종적이고 전통적인 여성성을 강요받으며 자랐다. 니키의 분노가 증폭된 것은 열한 살,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받으면서였는지도 모른다. 수도원 학교에 입학했지만 규범과 굴레를 거부하며 전학과 자퇴를 반복했다. 불우한 성장기는 그의 반항 기질을 일깨웠다.
열여덟, 결혼을 했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아내, 엄마로서 역할에 적응하지 못했다. 가부장적 여성성은 그를 좌절케 했다. 결국 니키는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 건 미술이었다. 예술로 승화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예술은 고통스러운 현실과 단절할 수 있는 도피처였다.
‘사격회화’ 세상 굴레를 향한 정조준
여기까지가 예술가 이전의 니키 드 생팔의 삶이다. 예술가로서의 니키 드 생팔은 당연히 작품과 함께 살펴봐야 한다. 앞서 그의 작품이 곧 인생이라 언급했듯이 말이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니키 드 생팔展-마즈다 컬렉션’은 그 연표다. 전시는 개인적 상처와 치유, 만남과 예술, 대중을 위로하는 상징 등 세 주제로 분류해 조각·회화 작품 127점을 다루고 있다.
니키가 예술계의 주목을 받게 된 건 1961년 ‘사격회화’를 통해서다. 작품은 물감이 담긴 깡통이나 봉지를 부착한 석고 아상블라주 표면에 총을 쏘는 방법으로 제작됐다. 니키는 자신을 옭아매는 굴레를 정조준했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총을 쏘며 분노를 표출하고 고통에 적극 대항하는 모습은 스스로를 의미했다. 피처럼 흘러내리는 물감은 아픔을 환기하는 요소였다. 작품에는 분노와 위안, 고통과 안식, 아픔과 치유가 동시에 담겼다. ‘사격회화’는 당시 고정관념을 타파하며 회화, 조각, 퍼포먼스를 포괄하는 선구적 작품으로 평가됐다. ‘사격회화’는 2년간 12편의 시리즈로 이어졌다. 니키의 공격 대상은 아버지, 남편 등 남성에서 차차 가부장적 관습, 권력, 정치가 등으로 확대됐다. 관람객도 참여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사격회화’를 시작으로 전시관에 들어서면 ‘괴물의 마음’, ‘붉은 마녀’ 등을 함께 만날 수 있다. 작품은 해골, 뱀, 마녀와 같은 부정적 요소로 이뤄져 지극히 어둡다. 작가는 갈기갈기 찢긴 내면을 그대로 표출했다. 세상을 향한 증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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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9월 25일까지 ‘니키 드 생팔展’이 열린다. (왼쪽부터) ‘샘의 나나(백색의 춤추는 나나)’, ‘거꾸로 서 있는 나나’, ‘그웬돌린’의 전시 모습 ⓒC영상미디어
예술계에 니키 드 생팔을 알린 것은 ‘사격회화’지만 그를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나나’다. 작가는 ‘여성이기에 겪었던 억압’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나나’ 시리즈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작품에는 얼굴이 없다. 자유분방하게 뛰어다닌다. 육중하고 다채롭다. 대담하고 당당하다. 그 시대 여성을 바라보던 통념에 거세게 저항한다. ‘나나’는 이 세상의 평범한 여성으로 니키가 말하고자 하는 ‘여성’의 모습이었다. 아내, 어머니로서의 여성상에서 탈피해 여성 그 자체로 건강한 생명력을 분출한다. ‘나나’는 치유를 목적으로 한 ‘사격회화’와는 대조적이다. 유쾌함이 넘치는 자유로움. 당시 니키의 심리 상태를 짐작케 한다. ‘나나’는 곳곳에 설치되며 모성과 여성성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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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연인 장 팅겔리를 만나고 사랑을 주제로 그린 ‘애정만세’ ⓒC영상미디어
예술로 상처를 치유해갔지만 본연의 불안함은 쉽게 극복이 되지 않았다. 가족·연인에게 외면받은 니키였지만 누구보다 사랑을 갈구했다. 심연을 어루만져준 것은 새로운 연인과 친구였다. 이 시기 작품은 ‘만남과 예술’에 전시됐다. 기계로 작품 활동을 하는 장 팅겔리는 니키의 예술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줬다. 둘은 연인이자 서로의 뮤즈였다. 니키의 작품은 3차원 구조, 조형적 요소로 외연이 넓어졌고 사랑이 주제로 등장했다. 여전히 여성의 모습을 대담하게 묘사했지만 ‘yes’, ‘love’, ‘kiss’, ‘joy’ 등의 표현이 나타났다. 전에 없던 ‘눈’, ‘TV’를 소재로 차용해 세상을 보고자 하는 마음을 대변했다.
이번 전시는 일본인 요코 마즈다 시즈에의 소장품으로 구성됐다. 니키의 작품 ‘연인에게 러브레터’를 보고 “니키가 쏜 총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내 가슴에 꽂혔다”고 말할 만큼 강렬한 인상을 받은 마즈다였다. 그는 20년간 우정을 쌓으며 니키의 작품을 수집해 각종 매체에 니키를 소개하기 위해 노력했다. ‘요코, 바다 건너 20년의 우정’ 전시 공간은 두 사람의 뜨거운 우정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의 고민부터 작업에 대한 고찰을 담은 그림편지가 이를 증명한다. 사랑, 우정을 매개로 감정이 성숙해지며 니키는 사람과 교류를 시작했다. 자연히 예술의 지평도 넓어졌다.
20년 걸쳐 조성한 대중의 유토피아 ‘타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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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탈리아 ‘타로공원’에 조성된 작품들은 22개의 타로카드 형상을 하고 있다.
2 ‘거대한 얼굴’은 기존 작품들과 달리 눈, 코, 입 형상이 드러나 있다.
3 1994년 열린 니키 드 생팔의 전시회 포스터 ⓒC영상미디어
예술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한 니키는 상처를 극복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이어준 예술의 힘을 대중과 나누기로 했다. ‘인간 드라마가 담긴 정신세계’ 공간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희곡, 설화, 우화에서 동기를 얻은 작품이나 멕시코, 이집트를 여행하며 만난 요소에 자유로운 상상력을 더했다. 광폭하고 압도적인 상징체들에 비일상적인 형태와 밝은 색채를 덧입혀 유순하고 명랑하게 표현했다. 고단한 삶의 아픔을 긍정적으로 승화시켜 대중에게 위로를 건넸다.
20년에 걸쳐 조성된 ‘타로공원’은 단연 걸작이다. 과거 바르셀로나 구엘공원을 보고 조각공원 건축을 꿈꾼 그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 ‘타로공원’을 조성했다. 22개의 타로카드 형상이 조각으로 건축된 곳이다. 니키는 타로카드 형상이 삶의 힘과 단계를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예술을 통해 상처를 치유한 것처럼 ‘타로공원’이 불안에서 벗어나 동심과 활력을 얻는 장소가 되길 바랐다. 대중에게 유토피아를 선물하고자 한 것이다. 인생의 막바지에서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였던 궁극의 이유일지도.
실제 ‘타로공원’의 분위기를 묘사하기 위해 전시장에 이탈리아 현지 모습을 상영하고 있다. 공원을 메운 타로 형상은 모형으로 축소해 전시했다. 전시장 내부의 거울, 도자기, 모자이크는 작품 내부로 들어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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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타로공원’ 전시 공간에 이탈리아 ‘타로공원’의 실제 영상과 작품 모형물들이 전시돼 있다.
5 친구 요코 마즈다 시즈에를 따라 일본에 갔다가 영감을 받아 만든 ‘부처’
6 작품 ‘해골’은 화려한 소재와 색채를 자랑한다. ⓒC영상미디어
그의 작품은 곧 인생이었다. 니키 드 생팔은 자유로운 예술혼을 불태우고 세상의 굴레를 뛰어넘고자 했던 작가로 평가된다. 자유분방한 작품 역시 보수적인 예술 관념에 일침을 가했다. 그럼에도 그의 예술 인생을 관통하는 건 따로 있다. 치유와 위로. 예술은 무너져내린 자신의 내면을 치유했다. 또한 세상을 향한 위로를 계속해서 전했다. 그가 의도했든 그러지 않았든 관객은 니키 드 생팔의 작품을 보면서 작품 밖에서 얻을 수 없는 또 다른 감정을 선물 받으니.
니키 드 생팔展-마즈다 컬렉션
기 간 9월 25일까지(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 휴관) 오전 11시~오후 8시
장 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
문 의 02-580-1300
입장료 성인 1만 4000원, 청소년 1만 원
선수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