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연구진이 2세 아이를 둔 맞벌이 부부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아이와 놀 때 다양한 단어를 사용한 ‘아빠’를 둔 아이들이 3세가 됐을 때 언어능력이 훨씬 발달했다. 교육학자 패더슨이 생후 5개월 된 유아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아빠가 없거나 아빠가 양육에 참여하지 않은 유아는 사물을 눈으로 좇거나 물건을 잡으려고 다가가거나 손에 쥐는 행동이 현저히 적었다. 반면 아빠와 친밀한 아이는 몸짓이 활발할 뿐 아니라 낯선 사람에게도 별 두려움 없이 다가갔다. 일종의 ‘낯가림’이 덜했다.
<0~3세, 아빠 육아가 아이 미래를 결정한다(The Dad Factor)>를 쓴 리처드 플레처는 세 살 전 아빠와의 유대감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아빠의 육아가 아이에게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자극을, 엄마의 육아는 감성적이고 공감적인 자극을 준다는 게 그의 연구 결과다. 엄마는 놀이를 통해 아이의 내면과 정서를 다뤄주고, 아빠는 아이의 사회성과 규범을 세워줘 아빠 놀이와 엄마 놀이가 합쳐질 때 비로소 전뇌(全腦)가 발달한다.
이런 연구들은 아빠가 육아를 ‘돕는’ 조력자가 아니며 아빠가 양육에 참여하는 것은 단지 엄마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한 차원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린 자녀는 엄마의 돌봄이 더 필요하므로 열심히 일해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 아빠의 도리라고 믿는 것이 ‘가장 큰 실수’라는 것이다. 아이의 ‘미완의 뇌’는 아빠에게 어떤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다르게 완성된다. 이 시기는 보통 0~3세까지다.
여성에게는 임신과 출산을 통해 본능적으로 ‘모성애’를 북돋는 호르몬이 나오지만, 남성은 그렇지 않다는 것 역시 통념의 오류로 드러났다. 최근 뇌의학 연구를 보면 아내의 임신 기간과 출산 직후 남편의 프로락틴 수치는 올라가고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떨어졌다. 프로락틴은 양육과 젖샘을 자극하는 호르몬으로, 아빠 역시 출산을 겪으며 다정해지고 아기의 울음에 민감해지도록 청각회로가 발달했다. 뇌가 먼저 아빠 됨을 인식해 남편 역시 남자에서 아빠로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0~3세, 아빠 육아가 아이 미래에 큰 영향
아빠도 육아의 주체라는 인식은 확산되고 있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다. ‘2017년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를 보면 국민 10명 중 8~9명은 ‘남성도 육아와 가사에 참여해야 한다’고 답했지만, 응답자의 10명 중 7명은 ‘육아휴직을 낼 때 직장 상사 및 동료들에게 눈치가 보인다’고 답했다. 실제로 10명 중 6명은 ‘자녀 때문에 휴가를 내는 직장 동료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으로 생기는 업무 공백을 동료가 메워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체인력이 마련되지 않는 경우 ‘민폐휴직’이 되기 십상이다. ‘맘 편히 쓸 수 있는’ 직장 내 휴직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개인이 용기를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남성 육아휴직의 경우에는 이 제도에 대해 알고 있다고 답한 비율이 22.7%에 그쳤고, 들어는 봤지만 내용은 모른다는 비율이 64.4%를 기록했다. 이런 연유로 초등학교 미만 자녀를 둔 아빠가 평일에 아이를 돌보는 시간은 평균 45.5분으로 나타났다. 아이가 아빠에게 친밀감을 느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다행히도 남성 육아휴직자의 비율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2018년 상반기 민간 부문 남성 육아휴직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5.9% 증가했다. 상반기 전체 육아휴직자 가운데 남성의 비중은 16.9%로 지난해보다 5.5% 늘었다. 남녀고용평등법은 만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를 둔 근로자는 최대 1년의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다. 정부는 육아휴직을 낸 고용보험 가입자에게 육아휴직급여를 지급한다.
유슬기 | 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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