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제강점기에 살았더라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면?” 살면서 한 번쯤 생각했을 법한 질문, 아니 한 번쯤 떠올려봐야 할 질문이다. 광복 72주년이었던 지난 8월 15일에는 더더욱 그랬다. 이날 개관 30주년을 맞은 독립기념관은 새롭게 단장한 제4전시관 ‘평화누리’를 공개했다. 독립운동의 의미와 가치를 관람객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한 모습이다.

▶ 지난 8월 22일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 살아 숨 쉬는 보훈 성지 평화누리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내부를 돌며 ‘자신이 생각하는 국가 모습’을 그려보거나 독립유공자 후손 인터뷰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C영상미디어
1987년 국민의 성금으로 건립된 독립기념관은 선열의 활동과 정신을 기리는 장이다. 우리 민족의 국난 극복사, 국가 발전사와 관련한 자료를 한데 모은 7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됐다. 이 중 제4전시관은 ‘딱딱한 공간’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감성관’으로 거듭났다.
독립기념관 정문에서 굽이진 길을 따라 10여 분쯤 달렸을까. ‘평화누리’라는 커다란 명패가 달린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초록빛 잔디와 어우러진 건물 외관은 흔히 접하는 기념관과 다를 바 없다. 그렇지만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코끝에 감도는 풀 내음 비슷한 향기는 분명히 달랐다. 조은경 학예연구사(평화누리관 기획 담당)는 “국내 전시관에 향기를 도입한 것은 최초”라며 “절개를 뜻하는 대나무의 향에 꽃향기를 더해 독립운동이 지향했던 평화로운 삶을 후각적으로 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관 입구 좌측에 수북한 리플릿이 눈에 들어왔다. 탐험대가 들고 있으면 어울릴 듯한 지도 형태의 빳빳한 A4 용지였다. 그 안에는 다짐의 길, 실천의 길, 하나 됨의 길, 울림의 길로 이어진 여정이 그려져 있었다.
리플릿이 안내하는 순서에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어두운 조명 아래 허물어진 콘크리트 벽이 막아섰다. 나라를 빼앗김과 동시에 평범한 일상이 무너져 내렸을 그 순간을 상징하는 듯했다. 바닥에서 동그란 불빛이 깜빡이고 독립운동가들의 어록이 곳곳을 비췄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역사의 현장에서 그들을 따라 걷는 듯한 비장함이 감돌았다. 거울로 채워진 벽면 속 나를 보고 있자니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잠시 허물어졌다.
한쪽 벽 틈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따라가자 자연광 가득한 좁은 길이 나타났다. 독립운동가들이 되찾으려 했던 평화, 희망의 공간을 표현한 것이다. 그 길 끝에 다다르니 ‘실천의 길’이 시작됐다. 널찍하게 펼쳐진 공간은 50년간 독립운동이 전개된 곳곳을 아우르는 느낌이다.
앞서 걸어온 바닥에 비춰진 점들은 선의 형태로 이어져 있다. ‘독립의 길’이라는 콘셉트를 그대로 반영하며 관람객이 머릿속에 그리는 생각의 흐름을 깨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벽면 빽빽이 들어선 대형 스크린을 통해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모습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영상 속 인물들의 이목구비가 묘사되지 않은 점에 의문이 들었다. “이름 모를 평범한 사람들 모두가 당시 독립운동의 주역이었음을 의미한다”고 조은경 학예연구사는 말했다.
‘하나 됨의 길’에 접어들자 저음의 목소리가 울렸다. “후예들이여, 우리의 독립운동이 결실을 맺어 우리가 꿈꾸는 나라가 되었는가.” 과거가 현재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평화누리관이 감성관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순간이다. 독립운동의 가치를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의 감성을 울림으로써 의미를 새기려 한 것. 관람객은 과거의 음성에 답할 수 있다. 전시관 한쪽에 준비된 크레파스로 자신이 생각하는 나라의 모습을 그린 뒤 스캐너에 올리면 스크린에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이다.
여정의 마지막인 ‘울림의 길’은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 걷고 있는 길, 걸어야 할 길이다. 75m에 달하는 완만한 오르막길에 서면 물길을 형상화한 파란 빛줄기가 움직인다. 관람객이 물길의 시작점에서 자신의 이름을 입력한 화면을 왼쪽으로 밀면 독립운동가의 명단과 자신의 이름이 함께 흘러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선열을 기억하고 그들의 뜻을 미래로, 세계로 확산시켜 나가자는 의미다.
조은경 학예연구사는 “순국열사들이 평화를 위해 걸어온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관람객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생각을 유도하는 공간으로 기획했다”며 “각 길목마다 기다리고 있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독립운동의 참뜻을 생각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독립기념관의 기존 전시관에서도 체험 위주의 공간을 찾을 수 있다. 항일 독립운동을 주제로 한 제7전시관에 들어선 순간 관람객은 잠시 과거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임시정부 요원이 되기도, 독립신문 기자가 되기도, 독립만세를 외치는 열사가 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힘을 합쳐 광복을 맞았던 순간을 간접 체험해볼 수 있다.
살아 숨 쉬는 보훈 성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정부 수립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1998년 11월 개관했다. 3·1운동 직후 유관순 열사가 투옥돼 숨을 거둔 지하 옥사와 감시탑, 고문실, 사형장 등 준엄한 역사성을 고스란히 담아 독립 현장 교육의 생생한 장으로 꼽힌다.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251
국립대전현충원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을 추모하는 대표 공간이다. 주요 시설물 가운데 준고전식 콘크리트 2층 건물인 보훈미래관은 관람객의 접근성을 높인 게 특징. 2009년 노후 시설과 시청각 위주의 전시라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전면 리모델링을 실시해 현대적 감각을 더했다. 이곳을 나오면 3300㎡의 녹지로 조성된 보훈장비 전시장에 전투장비가 가득해 또 다른 생동감을 준다.
대전 유성구 현충원로 251
국립영천호국원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을 모시는 국립묘지다. 2만 2000여 기를 안장할 수 있는 묘역과 1만 2000여 기를 안치할 수 있는 납골당, 현충관, 호국안보전시관 등을 갖추고 있다. 이 중 현충관에서는 순국선열의 넋을 기리는 각종 의식이 진행되며 전쟁역사실, 한국전쟁실, 해외파병실로 나뉘어 민족 투쟁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경북 영천시 고경면 호국로 1720
안성3·1운동기념관
안성은 3·1운동, 항일, 의열투쟁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고장이다. 이에 선열의 자주독립 정신을 계승하고 후세에게 역사교육을 할 수 있는 안성3·1운동기념관이 지난 2001년 조성됐다. 이곳 에서는 횃불 모양의 무궁화동산을 볼 수 있다.
경기 안성시 원곡면 만세로 868
이근하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