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없던 공간이 생겼다. 요컨대 ‘인문학 놀이터’다. 온갖 장르의 책을 실컷 보다 지적 욕구가 생기면 인문학 강좌를 들을 수도 있고, 강좌를 듣다가 할 말이 생기면 인문학 담론에 참여할 수도 있는 곳이다. 쉬어가고 싶을 땐 미술 작품으로 눈을 돌리면 된다. 눈과 입이 모두 피로해지면 음악 연주를 감상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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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한길사의 ‘순화동천(巡和洞天)’ 얘기다. 지난 4월 24일 문을 열었다. 순화동천의 동천은 ‘이상향’을 의미한다. 노장사상에서 나온 말이다. 위치는 서울 서대문구 순화동. 한길사가 창업 초기 자리 잡았던 곳이기도 하다. 순화동에 있는 이상향이라는 말이다. 재밌는 이름이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모든 문화, 예술, 인문의 한가운데에는 책이 존재한다. 책과 함께 사는 삶이라야 건강하고 반듯하다”면서 “순화동천은 책방, 갤러리, 책 박물관, 인문학 강의장, 담론을 위한 회의장까지 갖춘 새로운 개념의 공간으로 인문의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마치 미로 같은 공간이다. 1815㎡(550평) 규모에 3만 권 이상의 책이 있다. 지난 41년간 한길사에서 펴낸 책들이다.
책 3만 권과 5개의 특색 있는 공간
김언호 대표는 “한길사 팬들에겐 이곳이 그리운 고향처럼 느껴질 것”이라면서 “한 시대정신의 지도 같은 곳”이라고 했다. 60m에 이르는 구불구불한 복도 곳곳에 책을 놓았고, 복도에는 ‘한길책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책장 맞은편엔 그림이 걸려 있다. 책과 그림이 마주 보고 대화하는 모습이다. 한길책방을 따라 걷다보면 다섯 개의 공간이 하나씩 나온다.
첫 번째 방은 ‘책 박물관’이다. 책 박물관은 근현대 출판문화사에 빛나는 고서들을 전시한 공간이다. 현재는 윌리엄 모리스와 귀스타브 도레의 책 작품들과 19세기 풍자화가 4인의 ‘권력과 풍자’전을 마련해놨다. 이 공간 중앙에는 음악 연주를 할 수 있는 자그마한 무대도 마련돼 있다. 작은 음악회가 정기적으로 열릴 예정이다.
두 번째 방은 ‘1st Art(퍼스트 아트)’ 방이다. 이곳에는 미술품 등이 전시된다. 지금은 ‘탐서여행’이라는 전시가 마련돼 있다. 김언호 대표가 전 세계 책방을 돌며 찍은 책 사진들이다. 세 번째 ‘한나 아렌트’ 방은 강의실이다. 이곳에서는 저자와 독자의 인문학 담론이 펼쳐질 예정이다. 그 밖에도 ‘윌리엄 모리스’ 방, ‘플라톤’ 방 또한 전시와 강연을 위해 마련했다. 이 다섯 개의 방은 8~15명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부터 50~70명이 함께할 수 있는 방까지 그 크기가 다양하다.
김언호 대표는 “앞으로도 책 박물관에서는 근현대 출판문화사에 빛나는 아름다운 고서들을 전시할 것”이라면서 “또한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와 함께 읽고 담론하는 ‘한길그레이트북스 스쿨’, 명사 초청 강연, 인문 강연 등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개관 기념 프로그램 풍성
순화동천은 5월 한 달 동안 개관 기념 프로그램으로 3대 기획전을 선보이고 있다. 19세기 영국의 위대한 책 예술가 ‘윌리엄 모리스’전과 프랑스의 전설적인 삽화가 ‘귀스타브 도레’전을 비롯해 같은 시기 파리에서 활동한 스타이렌, 윌레트, 포랭, 질 등 풍자화가 4인의 날카로운 예술혼을 만나볼 수 있는 ‘권력과 풍자: 19세기 프랑스 풍자화가 4인전’을 개최한다.
●아름다운 책의 장인 ‘윌리엄 모리스’전
19세기 영국의 위대한 책 예술가 윌리엄 모리스가 출판공방 캠스콧 프레스에서 평생의 예술동지 에드워드 번 존스와 함께 펴낸 아름다운 책의 세계를 만나볼 수 있다.
●책 그림의 거장 ‘귀스타브 도레’전
19세기 프랑스의 위대한 책 예술가 귀스타브 도레가 표현한 책 예술의 세계를 보여준다. 늘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선 도레는 책 삽화의 새로운 경지를 구현해냈다.
●‘권력과 풍자’전
19세기 중후반 파리에서 활동한 스타이렌, 질, 윌레트, 포랭 등 위대한 풍자화가 4인의 작품전이다. 격동의 정치·경제·사회 상황에서 권력자와 가진 자를 고발하는 예술혼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김언호 한길사 대표의 사진전 ‘탐서여행’, 최은경 이화여대 교수의 ‘BOOKS’ 전시, 김억 목판화가의 ‘국토진경’ 전시도 상시 운영한다. ‘탐서여행’에서는 사진으로 포착한 책의 미학을, ‘BOOKS’ 전시에서는 자기와 크리스털, 철 등으로 만든 책들의 아름다움을, ‘국토진경’ 전시에서는 국토인문학의 경이로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아울러 순화동천은 본격적인 개관 기념 강연으로 ‘한나 아렌트의 정치사상’을 총 5강 진행했으며 매 강의마다 100여 명이 함께하는 등 호평을 받았다. 순화동천은 이를 이어받아 최고급·최신의 인문학 강연을 계속할 계획이다. 또 지난 5월 16일에는 순화동천 뮤지엄 콘서트가 첫 회로 개최됐다. 바이올리니스트 서민정과 피아니스트 최승리가 연주했다. 앞으로도 음악 연주회는 꾸준히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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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