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길을 잃을 수도 있다. 발을 디딛는 순간, 어디부터 가야 할지 막막할 정도다. 그만큼 크고 방대하다. 30만㎡의 공간.전시실만 해도 50개에 이른다. 여기에 1만 2000여 점에 달하는 작품이 전시돼 있다. 찾는 사람도 많다. 매년 4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몰린다. 이곳에서 관람객의 발길을 인도하고 눈길을 사로잡는 이들이 있다. 바로 전시해설사다.

▶ 손은미 해설사(오른쪽)가 고성 옥천사 괘불전 앞에서 후임 해설사들과 함께 스마트 큐레이터 해설 시연을 하고 있다. ⓒC영상미디어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면 박물관으로 가라고 했다. 박물관에 담겨 있는 선조들의 삶의 흔적을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통찰할 수 있어서다. 지난 2005년 10월 서울 용산의 현 위치로 신축 이전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 역사와 문화의 중요한 가치를 배우고 즐겁게 체험할 수 있는 세계적 규모의 박물관이다. 구석기시대의 소박한 주먹도끼부터 삼국시대의 화려한 금관, 고려시대의 청자, 조선시대의 회화, 근대 사진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역사와 문화예술이 한데 모여 있다.
지하 1층, 지상 6층의 박물관 건물은 두 개의 건물이 하나로 연결된 듯 이어져 있다. 중앙 통로인 ‘역사의 길’을 중심으로 선사·고대관, 중·근세관, 기증관, 서화관, 아시아관, 조각·공예관으로 나뉘어 1만 200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해놓았다. 박물관 전체를 꼼꼼히 살피려면 약 일주일의 시간이 걸린다.
여기에 다양한 주제로 기획된 크고 작은 전시,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여러 가지 전시 안내 프로그램, 신나는 어린이박물관과 다채로운 교육 프로그램들은 박물관 체험을 더욱 유익하게 만든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꽃, 전시해설사
특히 이곳 작품들을 돋보이게 하는 건, 전시해설사들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국내 박물관으로는 최초로 전시해설 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총 8명의 전시해설사가 있다. 한국어 3명, 일본어 1명, 중국어 2명, 영어 2명이다. 자원봉사 해설사까지 합하면 230명에 이른다. 이 중 가장 베테랑은 손은미 해설사. 그는 지난 2005년 개관 직후부터 이곳에서 전문 해설사로 몸담고 있다.
“전시해설은 단순히 작품을 설명하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닙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정사(正史)’를 바탕으로 한 해설이어야 하고, 대상에 따라 맞춤형 해설을 들려주는 것이 중요하죠. 이곳에는 어린이, 청소년, 주부, 어르신, 장애인, 외국인까지 그야말로 각계각층의 관람객이 찾아옵니다. 같은 내용이더라도 이처럼 다양한 대상이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학생에게는 교과서에 나오는 유물이나 영웅적 인물과 엮어서 설명하고, 주부에게는 드라마, 영화에 등장한 인물 및 시대와 관련해 설명하는 식이죠.”
이곳 해설사들의 전시해설 준비 과정은 이렇다. 해설할 작품이 선정되면 전시관을 돌아보면서 각 실의 특징과 구조, 동선을 고려해 전시품을 파악한다. 보통 한 시간 해설에 10~15점 정도의 작품을 파악한다. 해설을 위한 자료는 박물관 발간 도록, 박물관 주체 교육자료,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을 바탕으로 하며, 그 이후 대본을 작성한다. 초기 기본 내용으로 작성한 후, 점차 내용을 늘려가며 그때마다 시연 과정을 거친다.
“전시실에서 실제처럼 연습하고 녹음해 수정 보완하죠. 이곳 해설사들은 수시로 시연을 해봅니다. 약 다섯 명의 해설사가 작품을 함께 둘러보며 실제처럼 연습하고, 서로 수정 보완을 도와주죠.”
마침 해설사들의 시연을 볼 수 있었다. 이날 시연자는 입사 4개월 차인 오한영 해설사. 그는 ‘나무, 삶의 숨결’이라는 테마로 시연을 진행했다. 선조들이 실생활에서 나무를 활용한 예를 들었고, 불교에서 나무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나무의 옻칠 사례 등을 다룬 내용이었다. 시연을 지켜보던 손은미 해설사는 “나무의 종류를 설명할 때 흥미롭긴 하나, 내용이 다소 길기 때문에 의자에 앉아서 진행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해설을 하다 보면 관람객들이 예상 밖의 질문을 할 때가 있어요. 그런 질문을 모아 ‘족보’를 만들어 공유하기도 하죠. 이 밖에도 자체 역량 강화를 위해 해설사들이 함께 타 전시를 보러 다니기도 합니다.”
문화재 뒷이야기까지, ‘스마트 큐레이터’
중앙박물관의 차별화된 해설 프로그램으로는 ‘스마트 큐레이터 서비스’를 빼놓을 수 없다. 박물관에 전시 중인 문화재 속 숨은 이야기를 흥미로운 주제와 연결해 전문 해설사가 들려주는 전시해설 프로그램이다. 특히 주제와 관련된 문화재 앞에서 학생 관람객이 직접 태블릿 PC를 사용하고 확인하면서 진행되는 전시해설이므로 문화재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람객의 집중도 또한 매우 높다.
스마트 큐레이터는 총 13개의 주제로 구성돼 있다. 박물관 최고의 명품으로 진행되는 ‘관장님이 추천하는 우리 관 명품’, 손상되고 파괴된 문화재들에게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보존처리의 과정을 따라가 보는 ‘과학으로 본 유물의 비밀’, 최근 개발된 역사 속 무기에 담긴 이야기를 찾아보는 ‘시대의 첨단 기술, 무기’ 등이 있다. 이와 같이 문화재의 뒷이야기, 즉 발굴 과정이나 X선 촬영 사진과 같은 분석 자료 등까지도 확인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중앙박물관에서는 교과서 속 문화재 탐험(2, 3, 11, 12월 토요일), 봄길 따라 시간여행(4~5월 토요일), 가을밤을 걷다(9~10월 수요일 밤 7시), 부처님 오신 날, 한글날 테마전과 상설과 예약을 통한 명품 코스 해설을 진행하고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 중앙통로. ⓒC영상미디어
주요 전시 해설 프로그램
● 큐레이터와의 대화
매주 수요일(야간 개장) 18:00~18:30 / 19:00~19:30
※ 누리집(관람 정보-전시 해설-큐레이터와의 대화) 일정표 참조
● 박물관 명품 해설
사전 전화 예약제(성인, 기관 등 희망일 하루 전까지 신청. 한국어는 10인 이상)
※ 한국어: 02-2077-9684 / 영어, 중국어, 일본어: 02-2077-9683
● 이야기가 있는 전시해설 ‘스마트 큐레이터’
월~금요일 16:00 / 토~일요일 10:00, 16:00 ※ 누리집 예약
● 상설전시관 전시 해설
10:00~11:00 / 11:00~12:00 / 14:00~15:00 / 15:00~16:00 ※ 누리집 일정표 참조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 상설전시
괘불전_고성 옥천사 괘불
2017년 석가탄신일을 맞아 상설전시관 2층 불교회화실에서는 경상남도 ‘고성(固城) 옥천사(玉泉寺) 괘불(掛佛)’을 전시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선보이는 열두 번째 괘불전이다.
‘옥천사 괘불’(경남유형문화재 제299호)은 석가모니불과 문수·보현보살,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의 간략한 구성으로 영산회상(靈山會上)을 묘사한 불화다. 영산회상이란 인도 영취산에서 있었던 석가모니의 설법 모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불교 미술에서는 가장 대중적인 주제다. 10m가 넘는 규모의 화면에는 장대한 불·보살이 그려지고, 삼존(三尊)의 적색과 녹색 법의(法衣)와 천의(天衣)에는 다양한 문양이 베풀어져 화려함의 절정을 보여준다.
기간: 2017년 4월 25일~10월 22일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서화관 불교회화실(상설전시관 2층)
● 기획전시
아라비아의 길
대한민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수교 55주년을 맞이해 사우디관광국가유산위원회와 함께 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특별전 ‘아라비아의 길’을 준비했다. 아라비아는 중·근동 고대 문명의 교차로로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페르시아, 지중해 지역 문명권과 활발히 교류하며 다양한 문화를 꽃피웠다. 또한 이슬람교의 발상지로서 지금도 수많은 순례자의 발길이 이어지는 종교적 중심지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립박물관을 비롯한 주요 박물관의 대표적 소장품 460여 건을 선보이며, 선사시대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아라비아의 긴 역사와 문화를 소개한다. ‘아라비아의 선사시대’, ‘오아시스에 핀 문명’, ‘사막 위의 고대 도시’, ‘메카와 메디나로 가는 길’,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탄생’ 등 모두 5부로 구성했다.
기간: 2017년 5월 9일~8월 27일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박지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