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리고 찌그러졌다. 어딘가 잘려나가거나 부패하고 있다. 평소 미술관에서 보던 작품과는 다르다. 낯설고, 어색하다. 게다가 불쾌할 수도 있다. 이런 작품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추한 건 예술이 될 수 없는가?”
듣고 보니 그렇다. 미의 기준은 항상 있었다. 시대별로 변해왔건만 항상 있었다.
그런데 ‘추’의 기준은 없었다. 그저 ‘미’의 상대적인 개념 정도로만 있었다. 추함은 무엇일까? 전시는 이 물음에서 시작했다.
정영목 서울대학교 미술관장은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추한 것’은 없다. 단지 ‘추한 것’과 ‘추하지 않은 것’에 대한 판단 기준이 상대적일 따름”이라면서 “기존의 상대적 이미지들과 비교해보면 여기 모인 각 작가의 이미지는 우리 시각에 익숙지 않아 일차적으로 낯설고 불편하다. 그 불편함과 혐오를 직접 느껴보는 것이 이번 기획전의 콘셉트”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오치균, 서용선, 장 뒤비페, 토마스 데만트, 심승욱, 이근민, 최영빈, 함진 등 작가 13명의 작품 5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아름다움과 대치되는 ‘추(醜, ugly)’의 감각에 주목한다.
‘추’의 감각에 주목한 작품 50점
머리카락이나 먼지, 닭 뼈와 같이 미술 작품의 소재로 잘 쓰이지 않는 일상의 부스러기로 작업하는 함진 작가의 신작이나, 일상의 폐기물을 새까맣게 칠한 다음 위태롭게 쌓아올려 ‘불안’ 혹은 ‘혼돈’의 메시지를 전하는 심승욱 작가의 설치 작업이 그렇다.
회화 작품도 있다. 1980~1990년대 초 뉴욕 유학 시절 노숙자, 공동묘지를 소재로 한 오치균의 작품, 서용선의 작품 ‘개사람’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젊은 작가 최영빈, 이근민의 그로테스크한 작품이 더해졌다.
특히 전시의 동선 마지막에 있는 올리비에 드 사가장의 퍼포먼스 영상(‘변형’, 2011)은 이 전시의 메시지인 ‘추함’을 가장 자극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의 얼굴 위에 소조를 하듯 진흙과 물감을 뒤덮고 뭉개고 흔들어 털어내는 행위가 마치 얼굴을 난자한다는 느낌을 준다. 작품 앞에는 일정 대상의 시청을 제한하는 경고문이 붙어 있을 정도다.
이번 전시는 서울대학교 미술관의 2017년 상반기 첫 전시다. 5월 14일까지 열리며.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은 무료다.
전시장에는 ‘전시 관련 자료’도 구비해뒀다. <미와 예술>, <추의 역사>, <공포의 변증법> 등 20여 권의 전문 서적을 통해 미와 추에 대해 좀 더 심도 있게 고찰해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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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승욱 ‘부재와 임재 사이’(2015).인간의 상처와 기억을 담고 있는 소소한 오브제들. ⓒC영상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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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우 ‘생각의 기록’(1994). 역사 속에 놓인 현실에 직면한 개인의 내면과 실존에 대한 고민. ⓒC영상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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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빈 ‘소리쳐 속삭이다’(2010). 변이된 기형적인 살덩이는 무의식 속 분열하는 자화상이기도 하다. ⓒ서울대 미술관 제공
박지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