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무색해진 지 오래다. 이웃 간의 분쟁으로 법원 문턱을 드나드는 일도 왕왕 있다. 그러나 광주 남구 주민들에게 이는 먼 나라 이야기다. ‘마을분쟁해결센터’가 있어서다. 이곳을 통해 주민 스스로가 분쟁을 해결한다.
이웃과 갈등이 빚어지는 사례는 많다. 가장 흔히 발생하는 것 중 하나가 층간소음.
광주 남구 백운동의 S아파트에 사는 번역가 A씨 역시 층간소음의 피해자였다. 장장 3년간, 매일같이 잠을 설쳤다. 위층 B씨의 집 아이가 뛰노는 층간소음 때문이었다. 도무지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던 건 물론 건강마저 악화됐다. 참다못한 A씨는 막대기로 천장을 치는 ‘보복소음’을 일삼기 시작했다. 위층과 갈등의 골이 깊어진 건 당연한 수순. 결국 A씨는 ‘마을분쟁해결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센터에서는 즉각 화해지원회의를 열었다. 센터는 B씨에게 아이 교육을 당부하고 바닥에 매트를 설치하게 했다. 한편 A씨에게는 보복소음에 대해 사과하도록 했다. 화해한 두 집은 센터의 권고사항을 이행했고, 이웃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식사를 함께한 뒤 둘도 없는 이웃사촌이 됐다.
층간소음뿐만 아니다. 윗집의 사정으로 피해를 입는 경우는 또 있다. 남구 봉선동 B아파트의 C씨 얘기다. C씨는 어느 날 벽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심할 정도의 곰팡이가 슬어 있었던 것. 원인은 위층의 생활누수였다. 벽지가 훼손됐다며 위층과 수차례 대화를 시도했지만 개선은 쉽지 않았다. C씨는 100% 보상을 요구했고, 위층에서는 2/3만 보상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 결국 둘은 마을분쟁해결센터의 힘을 빌렸다. 회의 이후 아랫집은 전체 벽지를 교환하기로 했고 금액은 C씨가 1/3을, 위층이 2/3를 부담하기로 합의했다.
층간 갈등 이외의 사례도 있다. 남구 진월동에 사는 P씨는 집 근처 상가에서 목줄 없이 돌아다니는 대형견 때문에 다리를 다쳤다. P씨는 상가 주인에게 개를 단속해달라고 거듭 요청했지만 실랑이만 반복됐고 말싸움에 지친 P씨는 마을분쟁해결센터를 찾았다. 센터 직원의 중재로 상가 주인이 개를 사무실 안에서만 키우고 외출할 때는 목줄을 꼭 채우겠다고 약속을 받아냈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 운영
광주 남구에서는 주민 간 분쟁이 발생했을 때 소송으로까지 번지는 일이 없다. 사례는 다양하지만 해결은 모두 한곳에서 한다. ‘마을분쟁해결센터’다.
센터는 지난 2015년 9월 11일에 개소했다. 2016년 말 기준, 총 174건(층간소음 62건, 생활누수 24건, 주차문제 13건, 애완견 소음 10건, 층간흡연 9건, 기타 56건)의 분쟁이 접수됐다. 이 중 143건이 원만하게 해결됐다(화해지원회의 22회, 상담·방문 해결 75건, 당사자 간 화해 46건). 약 85%의 화해율을 자랑한다.
민문식 센터장은 “마을에서 발생하는 아파트 층간소음, 주차 및 쓰레기 투기 문제, 도로·주택 관련 갈등, 어린이·청소년 다툼 등 사소한 분쟁이 제소 등 법적 절차에 따르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 비용 증가와 공동체 붕괴라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시민의 소통과 참여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모으는, 더불어 살아가는 광주형 자치공동체 모델 발굴의 필요성으로 설립하게 됐다”고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주목할 점은 센터의 자치적 운영 구조다. 이웃 간 갈등을 강제 조정이 아닌 주민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한다. 국내에는 여러 법적 분쟁 해결 기관이 있지만, 이처럼 시민 자율 해결을 기반으로 한 분쟁해결센터는 이곳이 유일하다.
센터 구성원은 법률 전문가(변호사, 법무사, 교수), 지역의 덕망가(남구 마을공동체 관계자, 청소년 전문가 등), 층간소음 관리사, 각 분야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모두 재능 기부를 통한 화해지원 활동으로 자율적 분쟁 해결을 도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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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광주 남구 백운1동 까치마을한마음축제 당시 주민들과 최영호 남구청장의 모습. 까치마을 주민들은 주민 간 분쟁 해결을 위한 소통방 개소 이후 이웃 간 우애가 더욱 높아졌다. 2 마을에 마련된 ‘이웃에게 마음을 전하세요’ 게시판. 3주민과 자원봉사 전문가들이 원탁에 모여 화해를 도모하고 있다. ⓒ마을분쟁해결센터
마을 소통방, 20개소로 확대 계획
분쟁 해결 절차는 이렇다. 이웃과 갈등이 있을 경우, 마을분쟁해결센터(062-607-4967)에 접수한다. 그러면 센터에서 분쟁 상대에게 연락을 한다. 그리고 참여 의사를 확인한다. 상대방이 참여하겠다고 하면 화해지원회의 날짜를 잡는다. 해당 날짜에 당사자와 센터 전문가들이 원탁에 앉아 편안한 분위기에서 회의를 하고 원만한 화해에 이르도록 돕는다.
사안에 따라 분쟁해결센터를 직접 찾아오기가 꺼려지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각 마을의 ‘마을 소통방’에 가면 된다. 동네마다 마련돼 있어 접근성이 훨씬 좋다. 그곳에서도 생활 갈등 중재·조정 역할을 한다.
소통방 역시 지역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공간으로, 주민 화해 지원인이 상주한다. 평소에는 마을 사랑방처럼 공동체 교류 공간 역할을 하고, 주민 간 갈등 예방 캠페인이나 교류 프로그램 등도 연다. 주민 간 갈등이 발생할 경우 갈등 당사자 주민과 이웃이 소통방에 모여 문제를 해결하는 화해 지원 회의를 연다.
현재 마을 소통방은 노대동 ‘콩깍지 송화마을’, ‘진월동 ‘이웃사촌마을’, 주월2동 ‘오카리나 문화마을’, 백운1동 ‘오순도순 까치마을’ 등 6곳이다. 67명의 주민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갈등을 중재하고 있으며, 마을 소통방은 올해 말까지 20개소로 늘어날 예정이다.
민문식 센터장은 “올해는 소통방이 추가 확대됨에 따라 관리할 센터 인력 보강과 전문가 조정인의 역할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면서 “또한 소통방에 상주하는 주민 화해 지원인이 탄탄한 교육을 통해 화해 지원인으로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전했다.
2017 국민통합 사례 수상작 “갈등 해소 넘어 개개인 행복 찾았다”
이 같은 광주의 사례는 지난 5월 2일 국민대통합위원회가 발표한 국민통합 25개의 우수사례 중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대통합위가 추진한 올해로 다섯 번째를 맞이한 국민통합 우수사례 발굴사업은 전국 17개 시?도에서 응모한 국민통합 사례 중 127건을 발굴해 외부 위촉위원 등의 심사를 거쳐 25개 우수사례를 선정했다.
최우수상으로는 서울 성동구의 ‘젠트리피케이션을 넘어 상생도시로’, 인천 남구의 ‘용현1?4동 생생 독정골 프로젝트’, 충북 증평군의 ‘갈등, 신뢰로 친환경농업기반 조성’ 사업 등의 사례가 선정됐다.
서울 성동구청 ‘젠트리피케이션을 넘어 상생도시로’
서울 성동구는 둥지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 폐해 방지를 위한 정책 추진 사례를 제출, 최우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간 성동구는 예술가와 사회적 기업 등이 모여들면서 뜨는 동네로 주목받기 시작한 성수동 지역의 상승된 가치를 건물주뿐만 아니라 기존의 지역공동체가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정책을 선도적으로 추진해왔다. 우선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서 2015년 9월 전국 최초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제정하고 전담 부서를 신설했다. 이후 지속 가능한 발전 정책 수립을 위한 연구 용역 시행, 전국 지자체 간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MOU 체결 및 포럼 개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지방정부협의회 구성 등의 정책을 시행했다.
인천 남구 ‘용현1·4동 생생 독정골 프로젝트’
지난 2013년 인천 남구의 ‘마을 만들기 사업’ 일환으로 용현1?4동 ‘생생 독정골 만들기’ 사업이 시작됐다. 그러면서 인천의 대표 구도심이었던 남구가 문화 중심 창조도시로 재탄생했다. 용현1?4동 ‘생생 독정골 만들기’는 기존 물리적 재개발과 자본 중심으로 도시 재생을 이루는 형태에서 벗어나 창조성과 아이디어로 만드는 ‘창조적 문화도시’를 목표로 한다.
이에 따라 풍물단 운영 및 마을이야기 연극 제작, 깨끗한 동네 만들기 등이 주민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야기가 있는 벽화 골목 만들기 사업은 청소년의 비행 골목이 된 제물포 북부역 골목 환경(청소년이 훼손시킨)을 벽화 그리기로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핵심이다.
충북 증평군 ‘갈등, 신뢰로 친환경농업기반 조성’
충북 증평군은 ‘갈등, 신뢰로 친환경농업기반 조성’이라는 이름으로 농축산 순환자원화 시설을 추진했다.
증평군은 2년여 동안 집회, 주민 간의 소송, 행정심판 제기, 면지역 이장단 집단사퇴 조짐, 도청회의실 점거(삭제) 등의 갈등을 겪었으나 주민설명회 5회, 주민간담회 2회, 유사시설 견학 3회 등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원만히 해결됐다.
친환경농업의 필요성과 지속 가능한 농업 발전을 위한 주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갈등을 신뢰로 승화시켜 이를 해결한 국민통합 우수사례로 높게 평가받았다.
박지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