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한 장의 그림이 열 마디 말보다 강한 인상을 남긴다. 문자 중심의 의사소통으로 못다 전한 감정을 작은 그림, 일명 ‘이모티콘’으로 대신할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모티콘은 감정을 뜻하는 emotion과 유사 기호를 의미하는 icon의 합성어로 우리말로는 ‘그림말’이다. 과거 부수적인 기호에 불과했던 이모티콘은 문자 자체를 대체할 정도의 전달력을 자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간단한 표정의 이모티콘부터 움직임과 소리를 더한 이모티콘까지 그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잘 고른 이모티콘으로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는 그야말로 이모티콘 전성시대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제한된 글자 수에 전하고 싶은 내용을 모두 담으려고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스마트폰 메신저가 등장하면서 그 고민은 사라졌고, 더 나아가 이모티콘만 전송해도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앨버트 메라비언(Albert Mehrabian)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1971년에 쓴 <침묵의 메시지(Silent Messages)>를 통해 커뮤니케이션 이론 메라비언의 법칙(The Law of Mehrabian)을 발표했는데, 이 법칙에 따르면 의사소통 중 시각과 청각의 중요성은 55%, 38%인 데 반해 언어는 7%에 불과하다. 이모티콘이 주는 강렬함이 문자 그 이상일 수 있는 이유다.
이모티콘의 보급화는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 초반 미국 카네기멜론대 학생이 컴퓨터 자판으로 :-)이라는 부호를 사용하면서부터다. 책 <누구나 이모티콘을 제작할 수 있다>에서는 이모티콘의 변천 과정을 1세대 텍스티콘, 2세대 그래픽콘, 3세대 애니콘·사운드콘으로 설명하고 있다. 특수문자의 조합으로 구성된 형태로 시작해 간단한 그래픽으로 다양한 감정 표현이 가능해졌고 동작 및 효과음까지 더해지면서 더욱 생생한 느낌의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됐다.
덕분에 이모티콘은 온라인 환경에서 감정을 전달하는 데 존재하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했고 스마트폰 등장과 함께 그 역할은 더욱 커졌다. 2017년 기준 국내 대표 스마트폰 메신저 카카오톡의 누적 이모티콘 상품은 5500개. 지난 2011년 11월 이모티콘을 도입한 이후 6년 동안 900배 이상 성장했다. 한 달 동안 발신되는 이모티콘 메시지 수만 20억 건에 달하고 매달 2700만 명의 이용자가 텍스트 대신 이모티콘으로 대화를 주고받고 있다.
박창호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시각적 효과를 주면서도 전달 내용을 축약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라며 “이모티콘이 공식 언어는 아니지만, 언어의 모습이 다양해지듯 이모티콘 또한 여러 가지 모습으로 앞으로 더 많은 소비가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이모티콘의 대상이 광범위해지고 있다. 이미 존재하는 캐릭터가 이모티콘 주요 대상이었던 과거와 달리 이모티콘으로 제작하기 위해 탄생하는 캐릭터가 있는가 하면 유명인을 본뜬 이모티콘, 이용자 얼굴을 합성한 이모티콘 등이 생기고 있다. 활용도가 높아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감정 소통의 수단이나 생산물 홍보 수단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모티콘 활용법이라면 기부와 연계한 경우도 있다. 이모티콘 구매액 중 일부를 자동으로 기부할 수 있는 ‘기브티콘’(Give와 Emoticon의 합성어)이다. 이제 이모티콘은 새로운 대화 콘텐츠를 넘어 일상 곳곳에 파고드는 사회문화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 어떻게 이모티콘을 사용하고 있을까.
이근하│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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