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다고 치자. 이런 안 좋은 버릇을 고치려면 누가 나서야 할까? 손톱을 물어뜯는 본인이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해야 한다. 사회문제도 마찬가지다. 문제의 당사자가 해결하려 노력해야 가장 효과적이다. 주민이 직접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팔을 걷어붙인 서울시 금천구 독산4동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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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금천구 독산4동 주민센터에서 주민센터 직원들과 주민이 리빙랩 실험 결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C영상미디어
최은미(48) 씨에게 독산4동은 눈 감고도 다닐 정도로 익숙한 동네다. 어린 시절부터 골목을 누비며 놀았던 동네를 떠난 이유는 결혼 때문이었다. 결혼을 하고 생활터전이 바뀌었지만 다시 정든 마을로 돌아왔다. 다시 찾아온 동네 골목은 주인이 바뀌어 있었다. 아이들이 노닐던 자리에는 차들이 뒤엉켜 있었다. 그냥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중주차 같은 불법 주차도 허다했지만 차들이 골목에 가득하다 보니 아이들이 설 곳을 잃어버렸다. 최 씨는 잃어버린 골목을 아이들에게 되찾아주고 싶었다.
신용란(45) 씨도 골목 주차 때문에 늘 머리가 아팠다. 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는 차들 때문에 이 동네에 사는 게 나인지 차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고 주민들끼리 주차 때문에 고성이 오가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했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주민센터에서 ‘공유주차 리빙랩 실험’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리빙랩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전문가가 아닌 지역주민이 되는 것을 뜻하는 개념이다. 2004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윌리엄 미첼 교수가 처음 제시해 갈등, 안전, 환경 같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문제를 겪고 있는 당사자가 직접 해결에 나서다 보니 좀 더 밀도 있게 사안에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독산4동의 공유주차 리빙랩 실험은 주민센터 직원들의 주도로 시작됐다. 작년 초 최초의 민간인 동장 공모 당선으로 화제를 모았던 황석연 동장이 독산4동의 주차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고민하다 마련한 것이 리빙랩 실험이다. 독산4동이 안고 있는 문제는 일상생활에 관련한 것이다 보니 마을 주민들이 직접 해결의 주체가 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실험에 참여할 주민을 모아서 시작한 것이 ‘독산4동 행복주차주민위원회’의 100일간 실험이다. 최 씨와 신 씨 역시 행복주차주민위원회의 구성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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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산4동 공유주차구역에는 행복주차위원회에서 만든 주차구역 표지판이 붙어 있다 ⓒC영상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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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산4동 주민센터 지하 주차장에 마련된 공유주차구역. 공유주차구역에는 지정된 시간에 한해 주차할 수 있다. ⓒC영상미디어
주차문제 ‘공유’로 풀다
위원회는 주민이 독점으로 사용하고 있는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을 공유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은 밤 시간대를 이용하는 주민이 대다수다. 그러다 보니 낮에는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 주민이 사용하지 않는 시간대에 다른 이용자가 주차할 수 있도록 하면 골목 주차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실험은 크게 세 단계로 진행됐다. 실험지역으로 정한 골목 안의 주차구역마다 차량감지센서를, 골목 입구에는 전광판을 설치해 골목 진입 차량에 주차정보를 제공했다. 이렇게 되니 비거주자 차량이 골목에 진입하는 것을 막는 부가효과도 생겼다. 100일간의 실험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문제는 100일 뒤에 발생했다. 실험기간이 끝나자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아 동력을 잃은 것이다. 위원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정과 주민이 협약을 맺어 주민에게 행정 권한을 일정 부분 양도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2016년에 시작한 공유주차 실험은 현재 주민에게 행정 권한을 양도하는 2단계까지 진행된 상황이다. 지금까지의 실험에서 독산4동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주민이 주차구역을 얼마나 내줬는지를 묻는다면 조금 적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열한 명이 주차공간을 공유하기로 했거든요. 처음에 위원회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50개 정도는 쉽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주민들의 마음을 얻기가 예상보다 어렵더라고요. 다들 문제라고는 인식하고 있지만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일에 참여하고 싶지는 않았던 거죠. 처음에는 공유주차 공청회를 열어서 어떤 내용인지 설명하려고 했는데 참여율이 저조했어요. 그래서 주민 한 명 한 명 찾아뵙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주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은 정말 쉽지 않았다. 평소 듣도 보도 못한 욕을 듣는가 하면 말도 꺼내보기 전에 문전박대를 당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신 씨는 ‘왜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가면서까지 이 일을 해야 하나’ 하는 회의감이 드는 날이 많았다. 위원들 대부분이 그랬다. 하지만 좀 더 나은 마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저버릴 수 없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바로 ‘크리킨디’다. 우리말로 ‘벌새’를 뜻하는 크리킨디는 산에 불이 나면 자기 몸에 물을 묻혀 불을 끄러 간다. 쓸데없는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나간다는 점이 위원회가 하는 일과 닮았다. 그래서 독산4동에서 진행하는 주민활동에는 모두 크리킨디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 공유주차에 참여하는 주민은 ‘크리킨디 드라이버’라고 칭했다. 묵묵히 일을 하면서 마을의 문화를 바꿔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표식이랄까.
리빙랩 실험의 최종 종착지는 공동체 활성화
크리킨디처럼 마을의 변화를 위해 애쓴 이들 덕분에 주민의 의식이 점차 달라지고 있다. 공유주차에서 시작된 실험은 마을의 쓰레기 문제, 금연 문제 등 마을이 처한 공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여전히 독산4동은 주민 생활을 편리하게 바꾸기 위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독산4동에서 했던 공유주차 실험은 마을의 분위기를 바꾸는 데 한몫했다. 골목의 주인은 원래 주민이었다는 생각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면서 차 없는 거리를 원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위원회가 주민을 대상으로 차량통제 찬성 여부를 묻는 설문에서 98%가 압도적으로 찬성한다고 답했다. 이런 분위기를 등에 업고 차가 없어진 골목에서 마을 축제와 운동회를 열었다. 부스를 열고, 공연도 주민이 직접 참가할 수 있도록 바꿨다. 이 모든 일을 겪고 보니 위원회 구성원뿐 아니라 주민이 원했던 것은 독산4동이 ‘사람 살기 좋은 동네’로 변하는 것이었다. 사람 살기 좋은 동네로 바뀌려면 무엇보다 공동체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것이 리빙랩 실험을 통해 얻은 교훈이다.
위원회의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주은경 독산4동 주민센터 ‘가장 재밌는 마을’ 팀장은 “동단위인 주민센터가 주민들의 생활을 바꾸는 실험에 함께 참여했기 때문에 독산4동의 변화가 가능했다”고 말한다.
“독산4동의 리빙랩 실험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리빙랩과 다르게 민관이 협력해서 진행해야만 했어요. 주민들의 생활에 변화를 주려면 행정의 협력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죠. 21세기형 미래 도시는 전통적인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때문에 우리 마을에서 진행하는 실험은 모두 공동체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주민 모두가 아직은 이런 변화를 체감하지는 못할 테지만 주민 문화를 조성해 변화를 느낄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있어요. 우리 마을과 구성원들에게 어떤 변화가 생길지 저 역시도 기대가 큽니다.”
장가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