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길을 스스로 개척하겠다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그래서 청년 창업이 인기다. ‘이대 앞’에도 거창한 사업이 아니라도 간단한 창업 아이템을 가지고 문을 여는 청년 사업가들이 부쩍 많아졌다. ‘전통시장 청년몰 사업’ 지원도 청년 창업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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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정문 옆 이화52번가 전경 ⓒC영상미디어
지난 11월 21일 찾은 ‘이화52번가’.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정문에서 신촌기차역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 ‘이화52번가’는 골목골목 배꽃 벽화가 수놓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화52번가’는 이화여대가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52에 위치한 점에 착안해 붙은 이름이다.
2016년 ‘전통시장 청년몰 사업’에 선정된 ‘이화52번가’는 밤에 혼자 다니기가 두려울 정도로 상권이 쇠락했던 곳이다. 정지연 이화여대 산학협력단 파트장은 “월세가 너무 올라 입점을 꺼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상권이 죽었다”며 “중소벤처기업부, 서대문구, 이화여대 산학협력단이 협력해 상권을 되살렸다”고 설명했다.
이화여대 산학협력단에 따르면, 이화52번가는 청년몰 사업을 통해 매출 연 20%, 유동인구는 30%가량 늘어나는 눈에 띄는 성과를 이루었다. 월세를 지원하는 청년몰 지원 사업이 올해 말로 끝나지만, 청년몰 지원 사업 점포 22개 중 16개 팀이 지원이 끝나도 사업을 계속할 예정이어서 청년 창업의 자리매김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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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이화52번가 상점의 패션 아이템 (우)이화52번가를 지나는 행인들 ⓒC영상미디어
최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춰 IT 업종을 중심으로 정부의 창업 지원이 확대되는 가운데 대학들도 적극 뛰어들고 있다. 창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고용이 창출되고 산업 전반이 발전하는 순기능이 있다. 다만 수년 동안 수익이 나지 않을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창업을 포기한다.
정지연 파트장은 “단번에 창업해 성공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 또 많은 실패를 경험하면서 사업을 익히는 것”이라며 “대학 시절 많은 경험을 해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이유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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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화52번가에 위치한 가드닝 숍 어반정글의 김하늘(좌)·김서해(우)씨가 식물을 가꾸고 있다. ⓒC영상미디어
실제 창업해서 사업을 하고 있는 젊은 상인들의 반응도 좋다. 이화여대 졸업생 김하늘 씨는 작은 식물원을 연상시키는 가드닝 숍 ‘어반정글’을 열었다. 삭막한 일상을 식물과 함께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김하늘 씨는 “청년몰에 입점한 22개 팀과 협업할 기회가 많아 좋다”며 “창업했을 때 겪는 문제들을 주변 상인들과 상의하고 조언도 듣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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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3. 4 가게 내부 모습들. 미술작품, 수공예품 등 젊은 감각의 가게들이 많다. 2 다양한 문화 공연이 펼쳐지는 이화 쉼터 5 과거 상권이 무너져 인적이 뜸했던 이화52번가 뒷골목이 활기를 띠고 있다.
대학과 지역 상권이 합심해 청년 창업 지원
이화여대 앞 상점들은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쇼핑의 메카였다. 호황을 누리던 당시는 13㎡ 남짓한 가게의 월세가 300만 원, 권리금도 1억 원 가까이 이르렀다. 그러나 온라인 쇼핑몰과 동대문 의류상가가 들어서고 비싼 월세에 힘들어하는 상인들이 이대 앞을 떠나면서 상권은 급속히 위축됐다.
이화52번가는 비어 있는 상가를 활용해 청년들에게 창업 기회를 제공하고, 사회와 대학이 공생하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특히 인근 신촌이나 홍대 상권이 활력을 띠고 있는 것에 비교되면서 이화 상권을 되살리자는 데 상인들도 적극 나섰다. 그리고 지난해 초 4개 점포에 이화여대생 6개 팀이 입주하면서 낙후된 상권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이화52번가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졌고, 상인들도 청년 상인들을 적극 반기게 됐다. 지금은 39세 이하 22개 창업팀이 다채롭게 사업을 하고 있다.
이화52번가는 다른 전통시장 청년몰 사업과 많은 점에서 차별화된다. 정지연 파트장은 “이화52번가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로드숍 형태로 꾸려졌다”며 “대학과 산학협력을 통해 청년 창업을 적극 돕기 위해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화52번가는 대학과 지역 상권이 합심해 청년 창업을 돕는 새로운 구조다. 이화52번가를 찾는 주 고객 대상이 이화여대 학생이라는 점에 착안해 학생들의 취향에 맞고, 대학 문화에도 긍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도록 조성됐다.
이화52번가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배꽃 벽화와 이화 쉼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의 의견도 공청회를 통해 반영됐다. 이화 쉼터는 사용하지 않는 철도용지 200㎡를 제공 받아 다양한 문화 공연의 장이 되고 있다.
높은 임대료 때문에 주점과 화장품 가게만 늘어나 결국 상권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이화52번가는 22개 청년몰 사업 선발 과정에서 푸드, 문화, 패션을 중심으로 큰 쏠림 없이 다양한 분야의 지원자를 선발해 상가와 대학의 공존을 꾀하고 있다.
지난 11월 2일 이대 창업보육센터는 이화52번가에 설치된 이화 쉼터에서 플리마켓을 열었다. 학생들의 창의적인 제품이 많다는 의미에서 ‘말랑말랑 플리마켓’으로 불리기도 했다. 대학과 지역 상권의 창업을 돕기 위해 마련된 이날 행사에는 15개 팀이 참가했는데, 그중 이대 재학생과 동문은 4팀이었다. 수제인형, 스티커, 책갈피, 주얼리 등의 상품은 물론 간단한 브런치도 판매됐다. 창업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이 부담 없이 아이디어를 내고 판매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창업 아이템이 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얻을지 체감하는 기회였다. 상권을 활성화시키면서 학생들의 창업 의지도 북돋는 효과를 얻었다.
청년몰 조성 사업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전통시장 내 유휴 공간을 활용해 청년몰 조성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전통시장의 활력 제고 및 청년 일자리 창출에 이바지하고 있다. 청년몰은 전통시장과 상점가 내에 빈 점포로 방치된 500㎡ 내외의 일정 구역을 39세 이하 청년들이 입점한 점포(20곳 이상), 고객을 위한 휴게 공간, 커뮤니티 공간 등을 갖춘 몰 형태로 조성한 곳을 말한다.
지원 대상은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 제2조에서 정한 전통시장 및 상점가로서 시장 내 유휴 공간(500㎡ 내외)을 활용해 청년몰을 조성하여 청년 상인 입점 및 육성을 희망하는 곳이다. 육성 점포의 20% 내외는 예비 청년창업자의 테스트 마케팅, 시범영업 등이 가능한 ‘오픈 인큐베이터’ 형태로 의무 조성해야 한다. 청년몰당 최대 15억 원이 지원되는데 비용은 국비 50%, 지방비 40%, 자부담 10%다. 구역 기반 조성, 점포 개선, 공동 마케팅, 사업단 운영비용 등 청년몰 조성과 청년 창업에 필요한 비용이 지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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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