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글로 연결되어 있고 글로써 사람을 판단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저는 글이야말로 최상의 포트폴리오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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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순간이 너였다> 작품 이미지 ⓒ위즈덤하우스 제공
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의 말이다. 그는 <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한다>는 책의 서문에서 “생각한 것을 글로 쓸 수 있을 때 개인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고 했다. 소셜 미디어는 글쓰기를 일상으로 만들었고, 일상을 글의 소재로 끌어당겼다. 다만 매일매일 짧은 글을 올리는 것만으로 삶이 바뀐 이들이 생겼다. SNS 작가의 등장이다. 지난 2월 출간된 하태완 작가의 책 <모든 순간이 너였다>는 89쇄를 찍었다. 3월부터 4월 셋째 주까지 교보문고, 예스 24, 인터파크 도서 등 주요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1~3위에 오르고 있다. SNS에서 나비처럼 날아오른 하태완 작가의 글은 출판계의 태풍이 됐다. 40만 명가량의 팔로워가 그의 글을 구독하고 있다.
작가의 등단 문턱 낮아지자 독자의 서점 문턱 낮아졌다
SNS에서 시작된 입소문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일은 2017년과 2018년의 출판계를 아우르는 하나의 현상이다. 먼저 이들은 SNS를 통해 정서적 공동체가 된다. 날마다 찾아오는 한 문단의 메시지는 살아 있다. 구독자들은 쓰는 이의 온기가 남아 있는 글을 읽는다. 처음에는 SNS를 구독하다가 나중에는 이 글들이 모인 책을 정독한다. 책이 나왔을 때는 페이지 수만큼의 날들 동안 이미 교감을 나눈 후다. 이들은 SNS를 이용해 글을 남기고 사라지지 않는다. 대화한다. 구독자가 쓴 글에 댓글을 다는 일은 흔하다. 소통에 성실한 유저일수록 팔로워 수도 많다. 인터파크 도서가 SNS 작가의 책을 집계한 결과 베스트셀러 에세이·시 부문 20위 안에 든 책은 2016년 2권, 2017년 8권으로 늘었다. 2016년에는 전승환의 <나에게 고맙다>, 김수민의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인기였다. 2017년에는 조유미의 <나, 있는 그대로 참 좋다>, 글배우의 <아무것도 아닌 지금은 없다>가 인기를 모았다. 출판사도 SNS로 콘텐츠를 검증하고 저자를 발굴한다.
지난 4월 9일 출판사 말글터는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가 100만 부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그의 책은 이미 2017년 가장 많이 팔린 책에 올랐다. 책이 출간된 건 2016년 8월 19일, 말글터는 이기주 작가의 1인 출판사였다. 그는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손품, 발품을 팔았다. 자신의 글에 댓글을 단 독자에게는 찾아가 ‘좋아요’를 눌렀다. 오프라인으로는 동네의 작은 책방까지 찾아가 독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출간 직후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SNS에서 그의 글이 언급되는 일이 많아지면서 ‘역주행 도서’가 됐다. 2017년 출판계에 ‘이기주 효과’는 하나의 현상이었다. 1인 출판사를 운영하던 무명의 작가가 대중미디어의 힘을 빌지 않고 오직 입소문으로 메가 히트작을 만들어냈다.
SNS 문학에는 등단의 개념이 없다. 이들에게 출간의 자격을 주는 이들은 평론가나 심사위원이 아니다. 오직 읽는 이들이다. 2017년 출간 1년 만에 100쇄를 돌파한 책 <나에게 고맙다>는 ‘책 읽어주는 남자’ 채널을 운영하는 전승환 작가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에서 전했던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다. 교보문고의 통계에 따르면 SNS에서 언급된 횟수와 판매량은 비례했다. <언어의 온도>에 달린 해시태그는 5만 6000여 건이었다. 먼저 SNS에서 뜨거운 책이 서점에서도 환대를 받는다. <모든 순간이 너였다>를 펴낸 허주현 편집자는 “평소 책을 잘 사지 않던 이들이 처음 사본 책이 이 책이었다는 반응도 있다”고 한다. 서점에 가지 않던 독자, 책과 거리가 멀었던 이들이 SNS를 통해 서점으로 유입된다.
작가가 되는 등단의 문턱은 낮아지고, 독자가 되는 서점의 문턱 역시 낮아졌다. 이들이 글로 얻고자 하는 건 지식이 아니다. 공감이자 위로다. SNS 작가는 자기계발서에 나올 만한 입지전적 인물도 아니고 문학계에 한 획을 그을 만큼 비범한 문장을 쓰지도 않는다. 하태완 작가는 스스로를 “그냥, 그저, 그런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SNS 작가들이 사용하는 문장은 미문(美文)이라기보다 평서문이다. 평범에 너무도 가까운 일상의 말이다.
툭 건드리면 이야기가 쏟아질 만큼 사람은 모두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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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미디어 시대의 화두는 ‘책을 어떻게 팔 것인가’가 아니라 ‘독자와 어떻게 만날 것인가’다. 이들은 출판사의 홍보보다 SNS 친구의 해시태그를 더 믿는다. 어떤 문장이 누군가로 하여금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면, 이 문장은 읽는 이와 공명했다는 증거다. 모두가 작가이고, 독자이며, 평론가인 시대다. 유려한 말이나 깊은 사색보다 ‘지금, 이 순간’ 내 폰이자 내 손 안에 있는 SNS 작가가 가진 힘은 크다. 하태완 외에도 김재식, 김지훈, 최대호, 박근호 등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김재식 작가의 경우 이미 140만 명이 읽고 있는 페이스북 커뮤니티 ‘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글은 누적 조회 수만 50억 회가 넘는다. 페이스북 커뮤니티 ‘비밀편지’를 운영하는 박근호 작가도 이 글들을 모아 <전부였던 사람이 떠나갔을 때 태연히 밥을 먹기도 했다>를 출간했다. 그는 이미 3년 동안 신촌에서 5000장의 손편지를 쓴 바 있다.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종이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박근호 작가는 같은 내용의 글을 50장씩 적어 우체국 앞에, 버스 정류장에 붙였다. 그렇게 “마음을 표현하다 보니 살만해졌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SNS 작가의 공통점은 이미 지독한 우울을 맛본 이들이라는 것이다. 하태완 작가는 음악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꿈이 좌절된 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너의 하루를 안아줄게>의 최대호 작가는 매일 ‘괜찮다’는 내용의 글을 쓰면서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마음의 힘을 믿게 됐다고 말한다. 스스로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쓰기 시작한 이들은, 누구를 가르치려고 하지도 않고 교훈을 주려고 하지도 않는다. 다만 쓰고, 보내고, 응답할 뿐이다.
<토지>의 박경리 작가는 생전 인터뷰에서 “행복했다면 글을 껴안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원고지 문학이든, SNS 문학이든 이들이 끝없이 쓰고, 읽는 이유는 일맥상통한다. 다만 전에는 작가의 전유물이던 문학의 문턱이 저마다 주어진 ‘자기 앞의 생’까지 가까워졌다는 게 차이다. SNS 작가들은 말한다. 마음이 후련해질 때까지 쓰라고, 그 덕분에 자신도 살아낼 수 있었다고 말이다. 거기에 힘을 얻은 이들이 ‘좋아요’로 응답한다. SNS 문학은 작가와 독자의 경계를 허문다. 모든 독자는, 작가다.
유슬기│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