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 인쇄소 골목이 청년들의 창업거리로 자리 잡고 있다. 3년여 전부터 자금이 부족한 청년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게를 운영하면서 거리를 활성화시켰고, ‘열정도’라는 이름을 붙여 명소로 만들었다. 지난 11월 7일 오후 용산 열정도 거리를 직접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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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높은 주상복합건물 사이에 섬처럼 낮은 지역이 형성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C영상미디어
서울 용산 인쇄소 골목(원효로 1가)에 위치한 ‘열정도’ 거리는 지하철 1호선 남영역, 6호선 효창공원역, 4·6호선 삼각지역과 가깝다. 세 역 모두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교통의 요지로, 높은 주상복합건물 사이에 섬처럼 낮은 지역이 형성되어 있어 섬을 뜻하는 ‘도(島)’라는 글자가 붙었다. ‘열정’은 청년장사꾼들이 의기투합해서 만들었다는 데서 나온 단어다. 일명 ‘돈 없고 빽 없는’ 청년들이지만 열정 하나로 이곳에 둥지를 틀고 사업을 시작했다는 것을 상징한다.
열정도 거리가 만들어진 것은 3년 전이다. 당시 이 거리는 사람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썰렁하고 텅 빈 곳이었다. 한때 인쇄소 골목으로 부흥하던 시절도 있었으나, 시장이 쇠락하면서 활기를 잃어갔다. 무엇보다 재개발이 한창 진행되다가 중단되면서 분위기는 심각해졌다. 인근 지역은 재개발 사업으로 높은 주상복합건물이 속속 들어왔는데, 유독 이곳은 예전 풍경 그대로 남은 이상한 장면이 연출됐다.
이렇게 거의 버려진 거리는 청년장사꾼들의 도전의식을 자극했다. 주로 20~30대 청년의 젊은 사장들은 썰렁하던 골목을 젊은 에너지로 채웠다. 그들에게는 낮은 임대료가 가장 매력적인 요소였다.
열정도 거리의 시작은 ‘열정도 감자집’이다. 경복궁역 금천교시장에서 맥주와 감자를 팔면서 화제가 됐던 열정감자의 김윤규 대표는 청년 30여 명을 모아서 ‘청년장사꾼’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용산 인쇄소 골목에 여섯 개의 가게를 열었고, 그것이 열정도 거리의 시작이 됐다. 현재 이곳에는 청년장사꾼 매장이 일곱 개가 있다. 빨간색 간판을 단 매장은 열정도 치킨혁명, 열정도 감자집, 열정도 철인 28호, 열정도 쭈꾸미, 열정도 곱상, 열정도 다가구주택, 열정도 고깃집이다. 이 매장들은 다양한 이벤트를 공유한다. 스탬프를 찍어주고 할인도 된다.
청년장사꾼 매장 이외에도 40여 곳의 매장이 있다. 고기, 곱창, 치킨, 아이스크림, 커피, 와인부터 패션 편집숍까지 다양한 개성을 가진 매장이 속속 들어서는 중이다. 거리 중간에는 큰 플래카드로 열정도 마을지도가 붙어 있다. 청년장사꾼 매장과 일반 매장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기자가 찾은 시간은 오후 1시. 열정도 거리는 점심과 저녁 두 차례 활기를 띠는데, 점심시간을 맞은 직장인들이 찾아드는 시간이었다. 술을 판매하는 매장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지만, 식당과 카페에는 손님이 많았다.
남영역 근처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지은영 씨는 이곳에 오면 에너지가 넘쳐서 즐겨 찾는다고 했다. 젊은 청년상인들이 항상 밝은 목소리로 환영해주니, 기분 좋은 에너지를 받아가는 것 같아 좋다고.
“처음에는 회식을 하면서 이 골목을 알게 됐어요. 1차부터 3차까지 한곳에서 해결할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매장마다 젊은 청년들이 큰 목소리로 반겨주니까 업무 스트레스가 절로 사라지는 기분이었어요. 점심시간에 오면 또 다른 분위기를 즐길 수 있어서 좋아요. 사무실 안에 갇혀 있다가 이런 옛날 느낌의 거리를 산책할 수 있으니까요. 백반집과 카페가 좋아하는 코스예요.”
열정도 거리는 청년들이 만든 공간답게 골목 구석구석 위트가 넘쳤다. 고깃집 앞에는 ‘사는 건 어차피 다 고기서 고기다’, ‘열정 활활 참숯 활활’, ‘열정을 만나면 정열이 솟는다’, ‘쭈꾸미 팔아 장가가자’ 등 기발한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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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열정도 쭈꾸미’는 청년장사꾼들이 만든 가게 중 한 곳으로, 저녁 시간에 특히 문전성시를 이루는 맛집이다. ⓒC영상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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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4, 5, 6 ‘여기 파스타가 맛있는지 어떻게 알리오 올리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려 있다’ 등 청년들의 젊고 기발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문구들이 골목 곳곳에 있다. ⓒC영상미디어
열정도 거리에는 아직도 옛 흔적을 지닌 건물들이 있다. 인쇄소도 남아 있다. 이곳에서 20년째 근무하는 한 인쇄소 직원은 “최근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서 동네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면서 이런 변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죽어 있는 골목이 활발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청년들의 열정이 대단한 것 같다”며, “썰렁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게 되어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열정도 거리는 젊은 사람들이 모인 장소답게 재미있는 이벤트가 수시로 열린다. 야시장처럼 매일 밤 흥겨운 분위기가 연출되지만,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특별한 이벤트가 펼쳐진다. 최근에는 할로윈을 맞아 파티를 했고 버스킹 공연, 플리마켓, 푸드트럭 등 청년들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접목된 다양한 행사가 꾸준하게 열린다. 청년상인들의 패기와 개성 가득한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다면 이 시간에 맞춰서 방문하는 것이 좋겠다. 열정도 거리에서 열리는 다양한 소식은 페이스북(www.facebook.com/thepassionisland)으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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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언영|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