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란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당신 아이들의 삶을 편안하게 해줌으로써 그들을 불구자로 만들지 말라.”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을 위해 다섯 가지 미래 교육방향을 설정했다. 학생들의 흥미와 적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교육, 사고력과 문제 해결력 그리고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 개인의 학습능력을 고려한 맞춤형 교육, 지능정보기술 분야 핵심인재를 기르는 교육, 사람을 중시하고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교육이 그것이다. 국가경쟁력은 핵심인재 양성에 있다고 보고 지능정보사회를 위한 새로운 교육 혁신을 추진할 방침이다. 혁신의 한가운데는 창의성 교육이 자리 잡고 있다. 아래 글은 ‘몰입’과 ‘창의성’에 관해 국내 최고 전문가로 평가받는 황농문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가 학술지 ‘세라미스트’(2016년 12월호)에 기고한 ‘몰입적 사고와 창의성 교육’을 필자의 허락하에 발췌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주
2015년 9월 <축적의 시간>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리 산업계는 현재 대단히 힘들지만 앞으로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가장 큰 이유는 저가 인력과 저가 시장으로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던 중국의 급속한 추격 때문이다. 중국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더욱 높은 기술력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의 추세를 보면 우리가 축적의 시간을 갖는 동안 중국은 이미 우리를 앞질러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문제와 관련해 주목할 점은 중국의 빠른 경제성장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발전해가는 국가들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스라엘과 독일 등의 선진국이다. 이들 국가는 왜 그토록 높은 경쟁력을 갖는가? 그 핵심은 바로 교육방식에 있다. 이들 국가의 특징은 오랫동안 사고력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교육을 해왔다는 것이다.
창조형 인적자본 배출이 중요한 이유
그렇다면 창의성 교육이 산업경쟁력 혹은 국가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서울대 경제학과 김세직 교수의 연구결과가 주목할 만하다. 김세직 교수에 따르면, 1967년부터 30년 동안 평균 8%대의 높은 고도 경제성장을 해오던 우리나라가 1997년부터 성장률이 계속 추락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창조형 인적자본을 배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해되고 있는 창의성 교육이란 지적인 도전을 주어 생각을 유도함으로써 사고력을 높이는 교육이라 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창의성 교육이란 두뇌를 발달시키는 교육이다. 이는 최근 뇌과학의 발달로 지적인 능력이 예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후천적이라는 사실과 함께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창의성에 대한 개념이 발달하지 않았던 고대에도 오늘날 창의성 교육과 비슷한 개념을 가지고 교육한 이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소크라테스다. 소크라테스의 교육법은 주로 질문을 매개로 이루어졌는데, 이를 소크라테스식 문답법 혹은 산파술이라고 부른다.
유대인도 2000년 가까운 세월을 나라 없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았지만 지적인 도전을 유도하는 질문식, 토론식 교육으로 철저한 창의성 교육을 했다. 이러한 교육이 2014년까지 194명의 유대인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결과를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질적 공리주의’를 주창한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은 어린 시절 정규학교에 다니지 않고 아버지에게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자서전에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교육이 당시 정규학교의 전형적인 주입식 교육과 어떻게 다른지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내가 받은 교육은 그런 주입식 교육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무엇이든 배움이 단지 기억력 훈련이 되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배우는 모든 단계를 이해하도록 힘썼을 뿐 아니라 가능하면 가르치기에 앞서 내가 스스로 이해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나 스스로 해답을 찾기 위해 온 힘을 다하기까지는 절대로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
이처럼 존 스튜어트 밀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심오하고 난해한 철학고전을 읽고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을 스스로 생각하도록 유도했다. 이러한 아버지의 교육은 전형적인 지적 도전의 교육이자 창의성 교육이었고, 밀의 천재성은 이러한 교육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뉴턴은 만유인력을 어떻게 발견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내내 그 생각만 했으니까”라고 대답했다. ‘케인스 이론’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케인스에 따르면, 뉴턴의 특별한 재능은 문제를 풀 때까지 계속 끈질기게 그 문제를 머리에 담아두는 능력이었다고 한다. 몇 시간, 며칠 그리고 몇 주일이고 쉬지 않고 생각해서 결국 해결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나는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99번은 틀리고 100번째가 되어서야 비로소 맞는 답을 얻어낸다”고 했다. 진화론을 제창한 다윈도 “내가 과학에서 성취한 어떤 것이건 오로지 끈질기게 열심히 오랫동안 생각한 결과다”라고 말했다. 그 역시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몇 년이고 생각했다고 한다.
위대한 업적을 낸 창의적 인물들의 공통점
과학 분야의 노벨상은 창의적인 업적을 낸 과학자들에게 수여한다. 그러면 노벨상 수상자들도 몰입적인 사고를 했을까? 199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루이스 이그나로는 2006년 한국을 방문했는데, 노벨상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일주일 내내 24시간 ‘왜, 어떻게’가 머리를 떠나지 않고, 해답을 얻었을 때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1967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한스 베테는 무엇이 그를 유명하게 만든 물리 문제를 풀도록 했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두 가지가 요구됩니다. 하나는 머리죠. 그리고 두 번째는 분명 아무런 결과도 나오지 않을 수 있는 문제에 매달려 기꺼이 오랜 시간을 생각하면서 보내는 것입니다.”
1954년 노벨화학상과 196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라이너스 폴링은 그의 60회 생일파티 때 한 학생이 어떻게 하면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낼 수 있느냐고 질문하자 다음과 같이 답했다.
“많은 생각을 하고 그중에서 나쁜 걸 버리게.”
미국 최초 여성 노벨상 수상자인 바버라 매클린턱은 옥수수를 연구하면서 유전자 전이를 발견한 공로로 1983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연구할 때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옥수수를 연구할 때 나는 그것들의 외부에 있지 않았다. 나는 그 안에서 그 체계의 일부로 존재했다. … 나는 종종 나 자신을 잊어버렸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 내가 나 자신을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196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파인만은 자신은 물리랑 논다는 표현을 쓰곤 하였다. 또한 물리는 유일한 취미이고 일이자 오락이었고, 항상 물리에 관한 문제를 생각한다고 했다. 그의 자서전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에는 이러한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전에는 레스토랑으로 가는 길에 순경에게 잡히는 일이 종종 있었다. 나는 생각하면서 걷다가 가끔 한 번씩 멈춰 선다. 너무 어려운 것을 생각하다 보면 걸을 수가 없다. 이때는 멈춰 서서 해결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가끔씩 멈춰 서는데, 어떤 때는 손을 공중에 내저으면서 혼잣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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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해동 Proceed 아이디어팩토리에서 ‘로봇인공지능 만들기 통합 창의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강하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작업을 선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조선DB
창의성은 생각하는 힘에서 출발
우리가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의 머리를 가질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이 했던 몰입적인 사고는 적절한 교육이나 훈련을 받으면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다. 내 경험에 따르면 이들의 몰입적인 사고를 따라 하기만 해도 충분히 창의적이 될 수 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단지 생각하는 시간의 문제다. 포기하지 않고 충분히 오랜 시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10분 생각해서 얻은 아이디어보다 1시간 생각해서 얻은 아이디어의 창의성이 더 높고, 이보다는 하루 종일 생각해서 얻은 아이디어의 창의성이 더 높으며, 또 이보다는 일주일 내내 생각해서 얻은 아이디어의 창의성이 더 높을 것이다. 즉 충분히 오래 생각하면 누구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이처럼 명확하고 단순하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조지 버나드 쇼는 이렇게 말했다.
“1년에 두세 번 생각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생각을 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버트런드 러셀은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죽기보다도 싫어한다”라고 했다. 이 말은 글자 그대로 사실이다. 몰입적인 사고의 위력을 수없이 체험한 나는 대학원 지도학생들에게 생각하는 것을 엄청나게 강조한다. 몰입적인 사고를 열심히 실천한 학생들은 놀라운 성과를 내고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만든다. 그런데 내가 만족할 정도의 몰입적인 사고를 실천하는 학생은 10%도 안 된다. 그래서 깨달은 사실은 ‘어렸을 때부터 생각하는 교육을 받지 않으면 생각을 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오랫동안 끈질기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능력이다. 이것이 창의성 교육의 핵심이다. 따라서 창의성 교육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 지적인 도전을 반복해서 경험하도록 하면 된다.
지적인 도전을 경험하도록 하는 방법은 대단히 많다. 유대인 가정교육이나 학교교육처럼 질문을 하는 것, 또 유대인 하부르타 방법처럼 서로 토론을 하면서 공부하는 것, 난해한 철학고전 등을 깊이 생각하면서 읽는 것, 글쓰기를 하는 것, 무언가를 창의적으로 만드는 것, 미지의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생각하는 것 모두 지적인 도전을 유도하므로 창의성 교육이 될 수 있다.
창의성 교육에서 지적인 도전의 크기도 중요하다. 지적인 도전이 클수록 창의성이 발달하는 효과도 크다. 그러나 지적인 도전을 높일 때는 점진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사고능력은 개인차가 많이 난다. 학교성적은 동일하더라도 어렸을 때 공부방식 등의 차이에 따라 사고력의 개인 차이는 대단히 크다.
창의성 교육을 받는 선진국 아이들은 학교 다니는 것이 재미있다고 한다. 왜 창의성 교육을 받으면 재미가 있을까? 나는 질문식 수업에 의한 창의성 교육을 하는데, 학생들로부터 대체로 재미있고 즐겁게 수업에 참여한다는 피드백을 받는다. 왜 창의성 교육이 즐거울 수 있는지에 대해 논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즐거움의 본질과 관련된 뇌과학 지식이 필요하다. 도파민은 우리 뇌에서 분비되는 대표적인 쾌감 물질이다.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하든 그로 인해 쾌감을 느꼈다면 근본 원인은 도파민 작용에 있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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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농문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학생들 스스로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몰입 교육’으로
창의성을 기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선DB
엔트로피 법칙으로 본 창의성 교육
자연현상이나 생명현상이 예외 없이 자연법칙을 따르듯, 우리의 삶 역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자연법칙대로 흘러간다. 이러한 법칙을 올바로 이해하고 활용할 때 비로소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통제할 수 있다. 이 법칙 중의 하나가 바로 아인슈타인이 모든 과학의 제1 법칙이라고 한 ‘엔트로피 법칙’이다. 엔트로피 법칙은 수많은 천재들의 합작품으로 인류에게 남겨진 위대한 유산이다.
엔트로피 법칙이란 모든 현상은 항상 전체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다시 말해 우주의 모든 현상은 본질적으로 더욱 무질서한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뜻한다. 전체 엔트로피는 반드시 증가하지만 부분 엔트로피는 감소할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생명현상이 가능하고 문명도 발달할 수 있으며 우리가 무언가에 집중도 할 수 있다. 생명체가 무생물과 다른 점은 정보처리를 통해 부분적으로 엔트로피를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생명현상은 엔트로피가 부분적으로 감소하는 현상이고, 이러한 경향은 하등동물에서 고등동물로 올라갈수록 더 심해진다. 우리가 무언가에 집중하면 정신이 산만한 상태에서 고도로 질서정연한 상태로 진행하므로, 부분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저절로 흩어지는 담배 연기를 한곳으로 모으는 일과 같이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사람이 필요한 무언가에 집중한다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정신활동이라 할 수 있다.
엔트로피 법칙의 관점에서 삶을 보면, 필요할 때 스스로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요소다. 교육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한다. 필요한 것에 스스로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이 바로 창의성 교육이다. 창의성 교육은 각자의 경쟁력, 더 나아가 국가경쟁력을 획기적으로 올릴 뿐 아니라 필요한 것에 스스로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형성시켜 수동적이고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행복한 삶을 보장해주는 해법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로버트 하인라인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교육이란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당신 아이들의 삶을 편안하게 해줌으로써 그들을 불구자로 만들지 말라.”
황농문 |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