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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강원도에서 이웃 주민이 네살짜리 여자아이를 성폭행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강원지방경찰청은 지난해 11월 29일 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 어린이를 성폭행한 혐의(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이모(57) 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지난해 초부터 이웃에 살고 있는 정모 양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며 환심을 산 뒤 수차례에 걸쳐 성폭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 양은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조손가정 어린이여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경찰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모 씨가 정 양의 가정 상황을 알면서도 이러한 범행을 저질렀다”며 “충동이 아닌 의도적인 범행”이라고 전했다.
조손가정·한부모가정 등 취약계층의 어린이들이 학대·성폭행 등의 범죄에 노출되고 있다. 2012년 경남 통영에서 발생한 고(故) 한아름 양 사건 역시 비슷한 경우다. 아름 양은 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선 뒤 행방이 묘연해 가족들이 실종 신고를 했지만 실종 6일 만에 숨진 채로 발견됐다. 당시 아름 양은 이혼한 부모 사이에서 방치돼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용직 노동자인 아버지는 아름 양을 거의 돌볼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군 입대를 앞둔 오빠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집을 자주 비웠다.
2011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나홀로 아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방과후 집에 돌아갔을 때 1시간 이상 혼자 또는 초등학생 아이들끼리 지내는 어린이는 97만명으로 전국 초등학생 328만명 중 30퍼센트에 달했다. 특히 일주일에 5일 이상, 하루 평균 5시간 보호자 없이 지내는 완전 방치 아동은 12만명에 달했다.
이처럼 어른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소위 ‘방치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아동학대는 심각하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회적으로 방임돼 있는 어린이들은 범죄의 대상이 될 위험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발표한 ‘2012년 전국아동학대현황 보고서’를 보면 이러한 사실을 더욱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2012년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 접수된 사례 중 아동학대로 판정된 사례는 6,403건이었다. 이 중 피해 어린이의 가족유형을 살펴보면 친부모가족이 2,415건(37.7퍼센트)이었으며 친부모가족 외 형태가 3,566건(55.7퍼센트), 대리양육 형태와 기타는 각각 177건(2.8퍼센트)과 70건(1.1퍼센트), 파악 안됨 175건(2.7퍼센트)이었다.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친부모가족 외 형태의 경우 한부모가족에 해당하는 부자가정과 모자가정, 미혼 부·모가정이 각각 1,480건(23.1퍼센트), 935건(14.6퍼센트), 131건(2.0퍼센트)으로 전체의 약 40퍼센트를 차지했다. 2011년 44퍼센트였던 것에 비하면 감소한 수치이지만 우리나라의 한부모가족 비중이 약 10퍼센트 내외인 점을 감안할 때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수치가 아니다.
어린이 돌봄시설에 ‘안전지킴이’ 배치해야
한부모가족의 경우 부부가 함께 담당하는 생계 유지 및 자녀 양육을 1명의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 모두 감당해야 함에 따라 경제상황은 더욱 불안정해져 학대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홍창표 홍보협력팀장은 “현재 한부모가족 지원법에 의거해 저소득층 한부모가정에게 어린이 양육비가 지원되고 있으나 실지급액이 5만원에 그치는 등 다소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한부모가족 내 부모가 자녀를 적절히 양육하고 학대를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사회보장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동학대는 비단 취약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린이집, 아동복지시설 등 돌봄시설 내 아동학대 문제 역시 심각했다. 피해아동 가족유형 중 대리양육 형태는 177건(2.8퍼센트)에 달했다.
이 중 가정위탁은 13건(0.2퍼센트), 입양은 37건(0.6퍼센트), 시설보호는 127건(2.0퍼센트)이었다. 이는 아동학대로 판정된 6,403건 중 비교적 적은 수치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대리양육 형태의 가정에서 성장하는 어린이는 친인척 등 제3자에 의해 양육돼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심리·정서적인 측면에서 불안정할 수 있기 때문에 각별한 관심이 요구된다. 특히 가정위탁, 입양 시설에 있는 어린이가 학대를 받을 경우 후유증은 더욱 심각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발간한 <돌봄시설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사례집>을 보면 어린이 양육시설에서 열세살짜리 어린이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린 사건이 접수되기도 했다.
홍 팀장은 “시설의 경우 교육 및 정책을 더욱 강화해 전문적인 양육 기술을 갖춘 시설 종사자들이 양성될 수 있도록 자격 기준을 엄격하게 해야 한다”며 “인권침해에 대한 사전 감시 및 자율규제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시설 내에 지킴이 등을 배치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글·김혜민 기자 2014.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