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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매미라도 농촌마을 매미의 목청이 더 큰 것일까. 밝은 페인트와 원목으로 예쁘게 꾸며진 단층짜리 학교 복도까지 힘찬 매미소리가 들려온다. 행정구역으로는 대전시 유성구이지만, 학교 밖 풍경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주변 풍경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지는 듯한 이곳은 학교폭력 피해학생 치유전문 ‘해맑음센터’다.
교육부가 지원하는 해맑음센터는 대전광역시교육청과 사단법인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가 업무협약을 맺어 2013년 7월부터 전국 유일의 기숙형 치유센터로 운영 중이다. 전국 초·중·고교의 학교폭력 피해학생들을 대상으로 장기(1년) 또는 단기(2주 단위, 연장 가능)로 미술·음악·문화·원예 등 예술치유 프로그램과 전문교육, 심리상담, 체험활동, 기본교과공부 등의 프로그램으로 일상으로의 복귀를 돕고 있다. 기숙사를 포함해 이곳에서의 모든 활동은 무료다. 공인 위탁교육시설이므로 입소기간이 학교출결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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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쓰던 학교 건물을 활용한 해맑음센터의 분위기는 밝고 유쾌했다. ‘이룸터’, ‘해냄터’, ‘키움터’ 등 교실 앞에 붙은 명패도 여느 학교와 달랐다. 식당은 ‘배부름터’, 북카페는 ‘지혜의 샘터’다. ‘시원한걸’, ‘시원하군’은 어느 곳일지 상상해 보시길.
학교폭력 피해 학부모 집단상담도 병행
각 교실마다 도란도란 아이들과 선생님이 오후 프로그램을 진행중이다. 한 교실에서 칠판에 문제풀이를 해 가며 자신보다 어린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덩치 큰 고교생이 눈길을 끌었다.
“시원(가명)이는 고교 2학년인데 전교 2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해요. 이곳 동생들에게 자발적으로 수학을 가르치고 있어요. 주말이면 집에서 프린트물을 잔뜩 만들어 올 정도로 열성이에요.”
조정실(56) 해맑음센터장의 설명이다. “학교폭력 피해를 입은 아이들은 자존감이 낮은 상태가 되는데,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라는 것이 자존감 회복에 큰 역할을 합니다. 이곳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고 서로 돕고 배려하는 가운데 자존감이 높아지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마음도 생겨납니다. 그것이 해맑음센터의 가장 큰 장점이죠.”
조 센터장은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회장이기도 하다. 자신의 딸이 학교폭력 피해자가 돼 심각한 후유증을 겪은 뒤 다른 피해학생 학부모들과 함께 학교폭력 피해학생들의 치료와 치유를 위한 활동을 펴왔다. 마침 기자가 간 날은 해맑음센터의 학부모 집단상담이 있는 월요일이었다. 해맑음센터는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들도 상담받게 하고 있다.
조 센터장은 “아이들이 학교폭력 피해자가 되면 그 부모 역시 분노, 우울감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어느 부모님은 왜 가해자는 그대로 학교에 다니는데 내 아이는 여기까지 치료를 받으러 와야 하느냐며 울기도 하셨어요. 아이들이 이곳에서 어느 정도 치유를 받고 주말에 귀가했는데, 부모가 그대로이면 치유 성과가 없게 되므로 반드시 부모 상담을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날 학부모 집단상담에 참여한 학부모들은 서로가 학교폭력의 피해자 부모라는 점에서 서슴없이 가슴에 쌓인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가해학생이 전학을 갔는데, 기존 학교에서 150미터 떨어진 학교였대요. 동네 골목에서 다시 마주치니 우리 애가 기절할 뻔했죠.” “약물사용 기록이 나중에 취직에 장애물이 될까 걱정이에요.”
학부모 집단상담을 담당하는 해맑음센터의 이송화 씨는 “학부모님들은 이곳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오신다”고 전했다. 그 자신도 한때 학교폭력 피해학생의 부모였다.
“학교폭력 피해자 위한 힐링시설 더 많아야”
“저도 아이를 데리고 2년간 심리상담을 받으러 다녔어요. 교육부 지원시설이 지금은 전국에 한 곳이다 보니 멀리서 오시는 분들은 생업을 팽개치고 오세요. 다른 곳에도 이러한 시설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해맑음센터를 거쳐간 아이들은 약 200명 정도. 지금 15명이 장·단기로 입소 중이다. 아이들 중 절반가량은 약물 치료를 받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라고 한다. 하지만 복도에서 만난 아이들의 표정을 보니 이곳에 온 자체만으로도 어느 정도 힐링이 된 듯하다.
아이들이 이곳에서 자존감 회복과 함께 배우는 것이 용기다.
“하지 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로 자신을 바꾸고, 그럼으로써 주변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젠 싫다고 말하려고요.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수학문제풀이를 마치고 교실을 나온 시원이가 말했다. 모든 아이들이 “하지 마”라고 말할 용기를 낼 수 있을 때까지, 우리 곁에 해맑음센터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글과 사진·박경아 기자 2014.09.22
해맑음센터 www.uri-i.kr ☎ 070-7119-4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