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3일, 밤 10시가 가까워 오는 시간. 정부세종청사 2단계 구역으로 대형 트럭들이 하나 둘씩 진입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트럭들은 초행인 탓인지 점멸등을 켜고 도로 중간중간에서 길을 찾아 멈칫멈칫하는 모습들이었다. 세종청사로 이주하는 정부부처의 짐들을 실은 이사트럭들이었다.
“주말이어서인지 차가 많이 막혀서 예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서울에서 오후 6시가 조금 못 돼 출발했는데, 네 시간 가까이 걸렸네요.” 한 이사트럭 운전기사는 추운 날씨에 손을 비비며 조금은 생소하고 또 조금은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봤다.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길게 이어진 세종청사의 건물들은 밤중에 그 모습을 더 뚜렷하게 드러내는 것 같았다. 13일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이전하는 부처들이 들어서는 청사 9동에서 15동까지의 건물들은 모두 불을 켜놓아 불야성을 방불케 했다. 반면 딱 1년 전인 지난해 이맘때 이사를 마친 1단계 이전 청사들에는 불이 켜진 사무실도 있고 꺼진 사무실도 있어 확연한 대조를 이뤘다.
“여러분, 오늘 밤 모두 수고 좀 해 주세요. 두어 가지 당부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서류든 비품이든 정부 물품, 국가 물품들이니 특히 조심해서 날라 주세요. 분실하거나 깨지는 등 이상이 생기면 서로 곤란합니다. 또 하나, 실내에서는 절대 금연입니다. 꼭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린 같은 날 늦은 밤 14동 교육부청사 정문. 한 이삿짐 운반업체의 현장 책임자는 20여 명의 젊은이들에게 간단하게 지시한 뒤 트럭 짐칸의 문을 열고 하차 작업을 주도했다. 이른바 11톤 탑차로 통하는 커다란 이사트럭의 화물칸에는 잘 포장된 짐들이 빼곡하게 쌓여 있었다.

“오늘 밤을 새워야 할지 모르니까, 무리하면 안 됩니다. 부상을 입지 않도록 조심조심 꾸준하게 물건을 나른다는 생각으로 일해주세요.”
현장 책임자가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이삿짐 나르는 젊은이들을 독려했다. 이삿짐을 옮기는 젊은이들의 상당수는 대전 등 인근지역에서 모집한 대학생 아르바이트 근로자였다.
“건물이 이렇게 큰지 몰랐습니다. 지금은 좀 어설퍼 보이지만, 자리를 잡으면 세종시가 정말 대단한 도시가 될 것 같은데요.” 24세의 한 이삿짐 운반 아르바이트 학생은 “청사 이전이라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데 동참하게 돼 힘들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알바가 될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안전행정부의 청사이전 태스크포스 팀에 따르면, 이번 2단계 청사 이전에는 2천대 가까운 트럭이 투입된다. 지원 인력 등이 타고 오는 승용차까지 포함하면 수천 대의 차량이 보름 남짓한 청사 이전 기간에 동원되는 것이다. 태스크포스 팀의 최교신 사무관은 “이사를 위해 예비비로 290억원가량이 책정됐다”며 그 규모가 엄청난 것임을 시사했다.
구체적인 청사 이전작업은 이전하는 개별 부처들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전체적인 일정 조율과 이사 지침은 안전행정부가 마련했다. 안전행정부는 서울과 세종청사에 24시간 종합상황실을 개설하고 올해 말까지 가동한다. 이사 첫날 밤늦은 시간에 전화를 걸어도 근무자들은 곧바로 전화를 받는 등 긴장을 늦추지 않는 모습이었다.
최 사무관은 “폭설이나 교통사고 등 긴급 상황에 대비해 경찰, 국토부 등과 협조연락망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2단계 이전의 첫 테이프를 끊은 곳은 주로 정부부처 소속기관들이었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나 해외문화홍보원 등이 그런 예다. 서울의 서소문 사무실을 떠나 이사 오는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13일 점심때가 조금 넘은 시각 세종청사에 짐을 풀기 시작했다. 산뜻한 새건물의 손상을 막기 위해 짐들이 이동하는 복도 등의 통로에는 비닐 보호덮개들이 길게 깔려 있었다. 짐들은 주로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위층으로 옮겨졌는데 고장이나 별 탈 없이 순조롭게 작동됐다. 청사 밖에서는 토요일인데도 불구하고 막바지 조경작업 등이 분주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서울이 집이라는 한 이삿짐업체 직원은 작업을 지휘하면서 복잡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건물이 정말 웅장하네요. 압도되는 느낌입니다. 엄청나게 큰 건물들이 이런 식으로 길게 이어져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서울의 중요한 한축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아 서울에 애정을 가진 사람으로서 솔직히 유쾌한 기분은 아니라고 털어놨다.
2014년은 사실상 정부부처 이전 원년 연말까지 이사를 마치는 2단계 이전 부처는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국가보훈처 등 6개이다. 이들 부처에 딸려 있는 소속기관은 무역위원회, 전기위원회, 해외문화홍보원, 교원소청심사위원회 등 10여 개에 이른다. 이사 규모는 부처의 크기와 거의 정비례 하는데,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가 트럭 400대 규모로 가장 크다. 교육부와 고용노동부는 각각 250대 안팎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2단계 청사 이전으로 세종시는 행정중심복합도시로서 제 모습을 한층 뚜렷하게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1단계 이전으로는 반쪽짜리 같았던 청사 건물이 2단계 이전으로 양 날개를 펼친 듯 외양부터 안정감을 주고 있다. 이전 부처 직원들의 이주 외에도 다른 지역에서 업무를 보기 위해 세종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는 등 도시의 활력이 배가될 게 확실하다.
내년 하반기 3단계 이전은 상대적으로 소규모여서 2014년은 온전한 정부부처 이전의 원년으로 기록될 듯하다. 청사 구역과 첫마을의 길가 등 세종시 곳곳에는 ‘중앙행정기관의 세종 이전을 환영한다’는 문구가 걸린 현수막과 깃발들이 지난해보다 훨씬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청사 이전으로 한층 빠르게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착근하는 세종시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졌다.
글·김창엽(자유기고가) 2013.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