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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에 사는 한영미(57) 씨는 지인들 사이에서 ‘농사꾼’으로 통한다. 웬만한 야채는 직접 재배해 먹고, 화분의 분갈이도 척척 해내는 실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 씨는 농사에 관심이 없었다. 6년 전 세종시로 이사 오면서 그의 삶은 달라졌다.
한 씨는 이전까지 청주에 살았다. 자녀들 교육 때문에 한동안 청주에서 살다가 자녀들이 분가하면서 남편과 함께 세종시로 이사를 왔다. 이사와 함께 농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도시에서는 보기 어려운 텃밭이 집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 씨는 2008년부터 세종시 농업기술센터의 원예반 수업을 들었다. 당시 세종시 농업기술센터는 한 씨처럼 농사에 관해 알지 못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농업에 대한 기초 지식을 알려주는 원예반을 운영했다.
“그 전까지는 농사에 관심을 가질 기회가 전혀 없었어요. 도시에서는 마트에 가서 사 먹으면 그게 끝이었죠. 그런데 농사에 대해 배우다 보니 우리가 먹는 야채, 과일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식탁에 오르는지를 알게 됐어요. 농사를 짓는 데 이렇게 많은 손길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농민들을 이해하게 됐어요. 농사에 대한 관심도 생겼고요.“
한 씨는 올해 봄부터 세종시 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도시농업전문가 과정을 듣고 있다. 도시농업전문가 과정은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농업의 이론과 실무를 알려주는 과정이다. 올해 3월 14일부터 진행된 이 교육에는 한 씨를 비롯해 39명이 참여하고 있다. 한 씨와 같은 이주민부터 토박이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수업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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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아파트 다니며 ‘화분 분갈이’ 봉사 보람
도시농업전문가 과정을 듣고 있는 회원들은 ‘흙의 특성 이해하기’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텃밭 정원’ ‘실외 텃밭 만들기 실습’ 등 농업과 관련된 다양한 과정을 배우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농사에 대한 교육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수업에서 배운 지식을 토대로 다양한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지난 11월 13일에는 ‘도시민 텃밭 김장 담그기 및 기부 행사’를 가졌다.
세종시 농업기술센터가 운영하는 텃밭에서 자신들이 직접 재배한 배추 등으로 만든 김치다.
11월 11일 기자가 세종시 농업기술센터를 찾았을 때 한 씨와 토착민인 이진자(52) 씨는 이틀 뒤에 있을 행사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도시농업전문가 과정의 회장을 맡고 있는 이 씨는 “봄부터 회원들이 텃밭에서 기른 배추로 김치를 담가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줄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회원들은 6평방미터의 텃밭에 배추·갓 등의 다양한 야채를 키우고 있다. 이번 행사에서 30여 명의 회원들은 배추 200포기로 김치를 담가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기부했다. 이 회장은 “우리가 담근 김치를 우리끼리 먹는 것보다 주변의 어려운 분들과 나눠먹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며 “도시와 농촌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이들은 ‘김치 기부’ 봉사 외에도 세종시 아파트를 돌아다니며 무료로 화분을 분갈이해 주는 등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이 회장은 “분갈이를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며 “우리가 배운 지식을 활용해 지역주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도시농업전문가 과정의 부회장을 맡고 있는 한 씨는 “이 교육 과정이 지역봉사 외에 지역농산물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교육 과정 중에 우리 지역 농산물이 어디서 나서 어떤 과정을 거쳐 재배되는지 등에 대해 배우는 수업이 있어요. 직접 회원들이 지역 농가를 방문하는 코스도 있고요. 저는 예전에 토마토 농장을 가본 적이 있는데 지금도 그곳에 가서 과일을 사다 먹어요. 되도록 우리 지역 농민들이 키운 야채를 먹는 게 좋잖아요.“
이주민 한 씨와 토착민 이 씨는 함께 세종시의 텃밭을 일구며 친구로 지내고 있다.
글·김혜민 기자 2013.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