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 4월 임현주 아나운서는 MBC에서 여성 최초로 안경을 쓰고 뉴스를 진행했다. ⓒ임현주
잠은 늘 부족하고 눈은 금방 피곤해졌다. 속눈썹을 붙이고 조명 앞에 앉으면 기사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매일 눈물약 한 통씩을 쓰다가 안경을 써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러니까 처음엔 지극히 신체적인 이유였다. 입사 후 6년 동안 렌즈를 착용했다. 아침 6시 뉴스를 맡고부터는 오전 2시 40분에 일어나 4시 30분에 메이크업을 받는 게 일상이었다. 아침 생방송이라 늘 긴장 상태, 수면시간은 다섯 시간 남짓이었다. 매일 진행하던 뉴스에서 단지 안경을 썼을 뿐인데 생각지 못한 관심을 받았다. 아마 아침뉴스에 등장한 이 안경 하나가 그동안 저마다 안경을 쓰며 겪었던 경험과 불편함을 떠올리게 한 게 아닐까 싶었다.
도전의 시작은 3월이었다. 아침뉴스를 진행하고 신문을 보는데, 평창동계올림픽 컬링 국가대표팀 김은정 선수가 안경을 쓴 모습이 화제가 됐다. 방송국에서도 암묵적으로 여성 아나운서는 안경을 안 쓰는 분위기가 있었다. 같이 진행하는 선배에게 먼저 자문을 구했다. “안경 쓰고 진행하면 어떨까요?”라고 물으니, “한번 해봐”라고 했다. 용기가 났다. 회사에는 “오늘은 안경을 쓰고 진행하겠습니다. 반응이 좋지 않으면 무리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보고했다.
얼마 전 아나운서 시험을 봤다는 한 지원자의 이야기다. 평소에 안경을 끼지만 카메라테스트에 렌즈를 끼고 갔다가 익숙하지 않아 프롬프터가 잘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 무리하게 렌즈를 끼지 않아도 되겠구나. 안경을 써도 되지 않을까’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안경과 렌즈를 번갈아 사용하는 이들은 이렇게 알게 모르게 형성된 ‘안경=성의 부족 또는 민낯용’ 같은 시선에 스스로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한 항공사에서도 승무원이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건조한 기내 안에서 밤낮없이 일하는 승무원들도 안경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도 처음 쓰던 날, “왜 안경을 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현실적인 필요에서 시작됐지만 내게도 많은 생각거리를 남겼다. 시간과 피로감을 줄인 만큼 뉴스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화장 시간이 줄어드니 뉴스를 챙겨보는 시간도 늘어났다. 이 간단한 일이 이토록 오래 걸린 이유는 누구도 그러지 말라고 한 적 없었음에도 하지 않았던 걸 먼저 하는 데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혹여 안경이 안 어울린다는 말이라도 들으면 더 대꾸 못하고 위축될 것 같았다.
‘만약 내가 더 시간이 지나 렌즈를 끼기 힘들고 꼭 안경을 써야 할 때가 온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렌즈를 사용하는 분들은 한 번쯤 해본 고민이지 않을까 싶다. 이제 그런 고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날의 경험을 통해 이제 시청자들도 앵커의 외모가 아닌 뉴스의 본질에 집중해준다는 믿음을 얻었다. 오랜 시간 안경 쓰는 것에 선을 그었던 건 내가 가진 막연한 두려움이었다는 것도 알았다. 지금도 일주일에 2~3일은 안경을 쓰고 방송을 진행한다. 안경을 쓰고 나서 자신감도 생겼다. 뉴스 멘트에 더 시간을 투자하게 됐고, 앵커로서의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의상도 고민이다. 여자 앵커는 화사하고 계절감을 표현하는 의상을 입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있다. 이제는 의상도 간소화하려고 한다. 남자가 그러니까 여자도 그래야 한다는 것은 이유가 되지 못한다. ‘앵커’의 본질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안경을 쓰든 쓰지 않든, 어떤 의상을 입든, 어떤 머리를 하든 그것이 더 이상 특별하게 시선을 끌거나 낯설게 느껴지지 않게 되길 바라본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말이다.

임현주│MBC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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