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틀 포레트스’에서 혜원(김태리)은 고향을 찾은 이유를 “배고파서”라고 답한다. 대학 졸업 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임용고시를 준비했으나 낙방한 혜원. 고향에서 그를 위로해준 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었다. 편의점 삼각김밥 대신 고향 재료로 만든 콩국수가 그의 지친 마음을 달래준 것이다. 혜원이 고픈 건 배가 아니라 마음이었다. 영화는 현실을 대변했다. 치열한 경쟁이나 남들이 원하는 화려한 삶을 추구하기보다 눈앞에 보장된 행복이 보여주는 모습은 큰 위안으로 다가왔다. 우리 주변에서 혜원처럼 소소한 삶의 만족을 갈망하는 젊은 세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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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로파머’ 김현곤 대표 ⓒC영상미디어
김현곤 헬로파머 대표 역시 그랬다. 김 대표는 경북 봉화군에서 농사짓는 부모님을 따라 주말이면 어김없이 밭일을 해야 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대학에 진학하며 그는 도망치듯 도시로 향했다. 그런데 막상 당도한 도시의 삶은 이상과 달랐다. 특히 직장 생활을 하며 밥 먹듯 야근을 반복했다. 퇴근 후 마시는 맥주 한 캔이 그에게 주어진 위로의 전부였다. 고향에서는 몸이 고될지언정 과로와 스트레스로 코피를 달고 살지 않았다. 몸과 마음은 금세 너덜너덜해졌다. 그렇다고 기껏 도시에 왔는데 다시 시골로 향해야 할까. 설령 시골로 간들 도시의 윤택함에 길들여진 삶을 포기할 수 있을까. 이도저도 아닌 갈림길에서 김 대표는 망설였다. 동시에 같은 처지의 청년이 혼자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직서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며 살리라 생각했어요. 정보를 찾아보니 다수의 2030세대가 귀농·귀촌을 선택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제2의 인생, 전원생활같이 중장년을 위한 정보가 주를 이룰 뿐, 정작 2030을 위한 정보는 없었어요. 그때 결심했어요. 도시에 살면서 청년을 위한 농촌 미디어를 만들기로 한 거죠.”
로망은 잠시, 시골도 현실의 삶
농림축산식품부가 2016년 발표한 ‘귀농·귀촌 지원 종합계획’에 따르면 농촌으로 유입되는 인구는 2015년 기준 4만 1300명을 기록했다. 이 중 30대 이하 귀농가구주가 9.6%, 40대가 20%를 차지한다. 농촌으로 유입되는 젊은 세대 비율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 ‘2030을 위한 농촌생활 지침서’를 표방하는 미디어 스타트업체 헬로파머가 문을 열었다.
시골도 삶이었다. 로망만으로 살 수 없었다. 도시의 ‘경쟁’에서 지친 청년들이 N포 세대가 되어 귀농·귀촌을 택해도 시골의 현실을 잘 알지 못한다면 그들은 또다시 ‘포기’하는 상황에 이를 수밖에 없어 보였다. 시골의 삶을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현실적인 조언이 필요했다. 어떻게 보면 도시에서 농촌으로 좀 더 똑똑하게 도망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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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시와 농촌 참가자들이 양파를 매개로 이야기를 나누고 요리를 해먹는 ‘양파 워크숍’
2 헬로파머 멤버 이상윤, 김현곤, 이아롬 ⓒ헬로파머
헬로파머는 첫 콘텐츠로 ‘시골 생활 능력시험’을 준비했다. 가볍고 재미있게 정보를 전달하고자 만든 콘텐츠였다. 가령 “다음 중 시골 생활에서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것은?”이란 질문을 청년에게 던졌다. ① 사람들의 연락처 ② 정전에 대비한 양초 ③ 응급 상황에 대비한 구급상자 ④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공구 ⑤ 마을 어르신을 위한 노래방기기. 정답은 ⑤번이다. 꿈꾸는 시골을 떠올리고 문제를 풀면 쉽게 오답을 고를 수 있었다.
이후 귀농·귀촌을 원하는 청년들의 진짜 질문에도 답을 제시했다. “차 없이 농촌에서 살 수 있나요?”란 질문에는 김 대표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시골의 사정마다 다르겠지만 한 시간에 한 대씩 버스가 다니고 오후 7시가 지나면 막차를 놓칠 수 있는 그의 고향 이야기였다. 사정이 더 열악한 곳은 하루에 고작 한두 대의 버스가 전부라는 답변과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1km 이상은 걸어야 한다는 정보도 덧붙였다. 택시 접근성이 낮은 곳은 복합할증이 붙어 2만~3만 원의 왕복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농촌에서 농사를 짓지 않고도 살 수 있을까요?”란 질문에는 충남 금산군에 정착한 청년 사례를 소개했다. 금산군의 지역경제를 책임지는 인삼 농사를 짓지 않고서도 금산을 잘 아는 청년들이 게스트하우스, 맥주 가게를 차려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이야기였다. 이런 점은 도시와 다를 바 없었다. 천편일률적인 자영업보다 시장 조사를 하고 감각 있게 도전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설명이다.
귀농·귀촌을 바라는 여성에게 조언하기 위해서는 실제 농촌에 사는 언니들과 수다의 장을 만들었다. 대다수 농사 기구가 남성에 맞춰져 있다는 점, 같은 품을 팔아도 생기는 남녀의 임금 차이, 여성의 사생활이 많은 부분 노출돼 있다는 점, 미혼 여성은 어리게 대하는 점 등등 언니들은 직접 경험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여성이 농촌에서 직면할 수 있는 현실을 미리 알게 되는 ‘농촌의 페미니즘’을 논하는 자리였다.
현실적인 시골 정보를 흡수했다면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이제 필요한 건 똑똑한 도망법 익히기였다. 청년 귀농·귀촌을 돕기 위해 다양한 정책이 추진되고 있지만 꼼꼼하게 따져보고 틈새를 공략하라는 조언이다. 단적인 예로 부모님이 농사를 짓는다면 후계농 인증을 받아 지원받을 것, 귀농·귀촌 초기 정착 비용이 더 필요한 창업농은 영농인 바우처 카드를 십분 활용할 것을 권했다.
그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지자체별로 마련돼 있는 ‘귀농·귀촌인의 집’을 확인하는 일이다. 희망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는 곳이다. 이때 지원 금액을 반환하거나 1인 가구를 대상에서 배제하는 경우가 있으니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 김 대표가 추천하는 곳은 전북 완주군이었다. 6개월을 살아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과감히 떠날 수 있다고 했다. 경상북도의 창농아카데미도 권했다.
귀농·귀촌 제대로 알고 똑똑하게 도망치자
귀농·귀촌을 선택하면 살 곳이 필요하다. ‘귀농·귀촌 실태조사’에 따르면 귀농·귀촌인의 평균 정착자금이 1억 7000만 원 이상으로 나타났다. 그중 정착자금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부분이 농지 구입·임대와 주택 마련이었다. 하지만 청년에게 이 정도의 자금이 있을 리 만무하다. 청년을 위한 대출도 있지만 담보가 없는 청년에게 대출은 이론상으로만 가능한 이야기다. 헬로파머가 제안하는 틈새시장, ‘빈집 찾기’다.
“시골의 빈집을 활용할 필요가 있어요. 소액으로 임대가 가능하죠. 아무리 월세를 낸다고 해도 도시의 주거비용과 규모 자체가 달라요. 의식주에서 주거비용이 절감되면 생활의 부담감도 줄어들 거예요. 시골 마을이 불편하다면 읍·면 단위의 빌라도 괜찮아요.”
살 곳을 마련했다면 수익 창출을 고민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적게 벌고 적게 쓸 각오는 필수란다. 농사를 짓는 것도 좋고 그 외 경제활동도 좋다. 또는 청년에게 유리한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인근 농산품을 소포장해 유통하거나 온라인 판로를 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소규모 단위의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농촌에는 여전히 대규모 판매가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개성 없이 찍어낸 사과즙·양파즙 봉지 디자인을 개선하는 것도 청년의 진입장벽이 낮은 틈새가 된다. 또한 농산 원물보다 가공품을 만들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데 이때 일부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시설을 활용할 수도 있다. 부지런히 정보를 모을수록 부담은 낮아지는 법이다.
헬로파머는 일본 르포를 통해 청년 귀농·귀촌자의 벤치마킹 사례를 제시했다. 귀농·귀촌을 택한 청년 다수가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이뤄진 마을이었다. “나답게, 새롭게 살고 싶어 왔다”고 말하는 일본의 귀농·귀촌인들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을 전체에 와이파이가 설치된 이 지역에서 청년들은 자연을 느끼고 도시의 업무도 수행했다. 이들이 폐스피커로 만든 대형 조형물은 관광객이 와서 음악을 감상하는 랜드마크가 됐다. 또한 청년들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플리마켓을 활성화하고 공유 공간을 만들어 식당과 카페를 교대로 운영하는 새로운 문화를 조직했다. 헬로파머가 제시하는 농촌생활 지침서는 “이런 삶은 어때?”라고 말하고 있었다.
사람 냄새나는, 시끄러운 농촌 만들기
헬로파머의 직설적인 이야기에 귀촌할 마음이 없어졌다고 하는 이용자도 있었다. 김 대표는 그런 의견이 오히려 반갑다고 한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가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헬로파머의 목적이 청년의 시골생활을 권하는 것보다 시골에서 잘살 수 있는 정보를 주는 데 방점이 있어서다. 막상 귀농·귀촌을 했는데 정말 맞지 않으면 도시로 유턴할 수 있는 방법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른바 ‘빠져나올 구멍 만들기’다.
“시골에서 도시로 상경할 때 화려한 도시생활을 꿈꾸지만 현실은 고단하잖아요. 지옥철로 출퇴근하고 좁은 원룸에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처럼요. 도시에서 시골에 가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귀농·귀촌을 생각하는 2030세대에게 농촌의 날것 그대로를 보여줘 제대로 알고 가게 해야죠.”
그럼에도 여전히 농촌생활을 꿈꾼다면? 김현곤 대표 역시 바란다. 헬로파머가 생산한 콘텐츠를 이용해 그들이 농촌을 바꿔나가길. 농촌도 2030세대가 살 수 있는 주요 선택지가 되고 사람 냄새나는 시끄러운 농촌을 만드는 게 헬로파머의 꿈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팜 혁신밸리’로 귀농·귀촌 청년인력 양성
농촌, 창업·비즈니스의 거점으로 육성한다
‘스마트팜 혁신밸리’ 조성 지역으로 8월 2일 경북 상주와 전북 김제가 선정됐다. 스마트팜 혁신밸리에 청년농이 유입되고 농업과 전후방 산업이 동반 성장하는 혁신모델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22년까지 전국에 혁신밸리 4개소 조성을 골자로 하는 ‘스마트팜 확산 방안’을 지난 4월 발표한 바 있다.
혁신밸리는 스마트팜에 청년인력 양성, 기술혁신 등의 기능을 집약시켜 농업과 전후방 산업의 동반 성장을 도모하는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한 농산업 클러스터 개념이다. 혁신밸리로 선정된 지역에는 청년 교육과 취·창업을 지원하는 창업보육센터, 초기 투자 부담 없이 적정 임대료를 내고 스마트팜에 도전할 수 있는 임대형 스마트팜, 기업과 연구기관이 기술을 개발하고 시험해보는 실증단지가 조성된다. 원예단지 기반 조성, 산지유통시설, 농촌 주거 여건 개선 등과 관련한 정부-지자체 연계산업 형태의 패키지 지원도 이뤄진다.
경북 상주는 혁신밸리 청년 보육체계와 자체 청년농 육성 프로젝트를 유기적으로 연계해 매년 스마트팜 전문인력 80명 배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선도농가의 멘토링으로 스마트팜 운용과 작물 재배기술을 전수하고 국내외 판로 개척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북 김제는 농생명 연구개발 인프라를 활용해 농가의 기술혁신 체계를 구축하고 기존 농가의 노후시설을 스마트팜으로 전환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선수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