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섭(34) ‘메디프레소’ 대표는 캡슐 차와 전용 추출기를 국내 최초로 개발한 청년 벤처기업인이다. 한의사와 티 소믈리에의 도움을 받아가며 한방차, 일반 티, 블렌딩 허브티 등 12종의 캡슐 차를 제품화한 그는 2016년 메디프레소를 창업해 3년 차인 현재 안정세에 들어섰다. 조만간 캡슐화된 쌍화탕, 십전대보탕을 만들어 한방차의 대중화를 꿈꾸는 그는 3년 전만 해도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커피는 볶는 과정에서 아크릴아마이드라는 발암물질이 생긴다고 해서 미국이나 유럽 일부 지역에서 커피 유해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도, 마트에 캡슐 커피가 수북하게 쌓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갑자기 ‘건강에 도움이 되는 한방차를 캡슐 커피처럼 만들어 간편하게 마실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김 대표는 당시 대기업 직원이었다. 2016년, 안정된 직장에서 나올 때 회사 간부나 동료들은 그의 퇴사를 적극 말렸다고 한다.
“직장생활에 아무 불만도 없었어요. 연봉이나 대우나 하는 일, 인간관계 모두 좋았습니다. 인사평가도 좋았고요. 퇴사하겠다고 했더니 모두 말렸습니다. 하지만 전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게 더 비전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저도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김 대표는 “대기업에 다니는 안정적인 삶도 좋지만 그보다 ‘건강’에 더 집중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업을 하고 싶었다”며 “결혼하게 되면 가계부채나 집 구입, 육아 등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회사의 ‘황금수갑’을 뿌리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솔로일 때 과감하게 일을 저질렀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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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하섭 대표는 “이제까지 캡슐 차 사업성을 검증하는 단계였다면, 본격적인 도전은 이제부터”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스튜디오 운트
그가 캡슐 차 개발에 뛰어들 당시는 캡슐 커피가 확산되고 있던 때였다. 그는 2016년 6월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창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2년 동안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신의 아이디어를 하나하나 실천으로 옮겨나갔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시음회나 전시회가 열리면 개발한 시제품을 들고 나가 소비자의 반응을 살폈고, 아이디어를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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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디프레소는 캡슐 한방차와 캡슐 커피를 함께 추출할 수 있는 기계를 독자 개발해 2018년 3월 특허등록을 했다. 메디프레소는 지금까지 12종류의 캡슐 차를 내놓았고, 올해 안에 40종류로 늘릴 계획이다. ⓒ메디프레소
김 대표는 창업 과정에서 실리콘밸리에서 각광받은 린 스타트업(Lean Start-up) 방식을 벤치마킹했다. 린 스타트업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고 계획이 세워지면 최소한의 제품을 빠르게 출시해 고객 반응을 살펴본 후, 지속적인 피드백으로 시장에 맞는 최적의 상품을 만드는 경영전략을 말한다.
“예전에는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들이 먼저 핵심 아이디어를 도출한 후 스케줄을 짜고 필요한 예산을 마련한 다음에 제품 개발에 나섰어요. 모두 그 제품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개발이 끝날 때까지 전 과정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던 거죠. 하지만 이런 방식은 제품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돈을 들인 다음에야 시장에 나와서 반응이 좋지 않으면 돈이 바닥나 기업이 살아남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에릭 리스가 새롭게 고안한 경영전략인 ‘린 스타트업’은 처음부터 세상을 놀라게 할 ‘명품’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한방차 추출기계 특허등록
김 대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면 조금 어설프더라도 최대한 빨리 테스트할 수 있는 제품, 즉 최소기능제품(MVP·Minimum Viable Product)을 만들어 출시하고, 그런 다음 고객의 반응을 분석해 발 빠르게 개선한다”면서 “아이디어의 가설이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미련 없이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린 스타트업은 ‘만들고, 측정하고, 배우는(Build-Measure-Learn)’ 과정을 통해 고객에게서 피드백을 계속 받으며 제품을 검증하고 개선해가는 ‘현명한 시행착오’를 말한다”고 설명했다.

▶ 김하섭 대표가 서울 구로구 마리오타워에 있는 본사에서 직원들과 개발한 차를 시음하며 담소하고 있다. ⓒ메디프레소
김 대표는 대학 시절엔 9개 대학 벤처동아리 연합인 ‘미래벤처연구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가 벤처창업을 겁 없이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사실 그는 대학 때부터 마케팅에 관심이 많았고, 하나의 일에 꽂히면 뿌리를 뽑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자격증도 16개나 된다. 차 관련 사업을 시작하면서 최근에는 티 소믈리에 자격증도 땄다. 대학 시절에는 한 극단의 마케팅을 맡아 성공시키기도 했다. 군 생활을 할 때는 자신이 복무하던 대대에 도서관을 만들 생각으로 도서관장을 맡겠다고 자청하고 공간을 마련해 책을 기증받아 4000여 권 장서를 갖춘 도서관을 건립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창업 후에도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부딪쳐 해결해나갔다. 전문가를 찾아다니면서 도움을 받고, 수없이 시음회를 열어 소비자의 반응을 조사했다. 창업대회에도 계속 참가했다. 아이디어를 인정받으면서 중소기업진흥공단 청년창업사관학교,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 등에서 창업자금, 연구개발자금을 지원받았다.
‘메디프레소(Medipresso)’는 바쁜 현대인이 건강에 좋은(medi) 차를 간편하게(espresso, 이탈리아어로 빠르고 간편하다는 뜻) 마실 수 있게 하겠다는 뜻에서 만든 이름이다. ‘건강’과 ‘간편함’ 두 가지가 핵심 가치다. 캡슐 커피처럼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한방차 개발과 함께 캡슐 한방차와 캡슐 커피를 함께 추출할 수 있는 기계를 개발해서 2017년 11월과 2018년 3월 각각 특허등록을 했다.
“군 생활을 할 때부터 차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무슨 차가 건강과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지 조사해가면서 마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몸에 좋은 차라도 끓이기가 번거롭고 맛과 향이 좋지 않다면 꾸준히 마시기가 어렵지 않나요? 티백은 보통 맛이 밋밋하거나 오래 담가두면 떫은맛이 납니다. 한 시간 이상 끓여내는 한방차는 떫은맛과 쓴맛 때문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고요. 오래 끓일수록 거북한 맛도 같이 우러나기 때문이죠.”
김 대표는 “‘한방차도 캡슐 커피처럼 고압으로 빠르게 추출하면 맛이 부드러워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했고, 농촌진흥청에서 센 불에 오래 가열하는 중탕가열과 고압추출 두 가지 모두 성분에는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고압으로 추출한 한방차는 여러 번 우려먹을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맛이 훨씬 은은하고 향기도 좋다”고 했다.
그는 우선 누구든 쉽게 마실 수 있도록 부담감 없는 맛과 향에 초점을 맞췄다.
“한의사, 티 소믈리에와 협업해 제품을 개발했어요. 한의사는 어떤 재료들을 섞을 때 효능이 좋아지는지 자문해줬고 어떤 체질의 사람이라도 편안하게 마실 수 있도록 재료의 독성을 없애는 법제(法製) 과정을 맡아줬습니다. 티 소믈리에는 어떤 재료를 어떻게 덖어야 좋은 맛과 향을 내는지를 연구해줬어요. 한방차도 커피처럼 로스팅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거든요. 맥반석에 덖을지, 철판에 덖을지, 훈연(燻煙)을 할지 재료마다 달라집니다.”
여러 재료를 덖고 분쇄하고 섞어서 만든 캡슐 한방차는 기존 캡슐 커피 기계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한방차의 맛과 성분을 더 잘 추출할 수 있는 기계를 개발해 ‘메디프레소머신’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다. 버튼이 두 개라서 기존 캡슐 커피도 함께 사용할 수 있다.
“직장생활을 할 때 제조 공정을 관리했기 때문에 제조업의 공정을 꿰뚫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직접 기계를 개발할 수 있었죠. 아직 양산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고급형 기계도 개발했습니다. 기존의 모든 캡슐 커피와 캡슐 차를 이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한방차의 종류에 따라 최적의 온도, 압력, 추출량을 조절할 수 있는 기계죠.”
40종류의 캡슐 차와 전용 기계 양산이 목표
메디프레소는 이제까지 12종류의 캡슐 차를 내놓았고, 올해 안에 40종류로 늘릴 계획이다. 피곤함을 풀어주는 박하와 몸의 열을 내려주는 녹두를 섞은 ‘서머버케이션(Summer Vacation)’, 연잎과 율무를 섞어 몸을 가볍게 해주는 저스트슬림(Just Slim), 최근 뷰티푸드로 각광받고 있는 꽃 히비스커스를 차로 만든 ‘히비스커스 힐링(Hibiscus Healing)’ 등 이제까지 내놓은 캡슐 한방차는 ‘맛과 향이 은은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에서 1회성 이벤트로 펀딩 목표를 855% 달성하며 단숨에 2600만 원을 모금하는 돌풍을 일으켰고, 농식품 아이디어 경연대회에서도 대상을 받았다. 그러나 김 대표는 국내시장만 내다봤다면 사업을 시작하지도 않았단다.
“올해 2월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유럽 최대 소비재박람회 암비엔트(Ambiente)에 참가했고, 예상대로 많은 나라가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터키, 홍콩, 대만 등 여러 나라가 견적을 요청했고, 미국의 한 레스토랑 체인은 1만 박스를 미리 주문했습니다. 현재 미 식품의약국(FDA), CE인증(유럽 안전인증 제도), 할랄인증(이슬람 율법상 무슬림들이 먹고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된 식품·의약품·화장품 등에 붙이는 인증) 절차를 밟고 있는 단계지요. 하나의 인증당 수백만 원의 인증료가 들어가는 등 인증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정부가 나서 벤처들의 해외 진출에 활로를 개척해주었으면 합니다.”
김 대표는 독일 대회에서 해외 바이어들이 메디프레소의 기계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고 했다. “호텔이나 레스토랑에 우리 기계와 차를 함께 공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수질이 좋지 않은 나라에서는 특히 차를 많이 마십니다. 그러다 보니 색다른 차를 찾는 수요가 이미 형성돼 있어요. 요즘은 동양의 건강 차에 대한 관심도 높습니다. 국내시장뿐 아니라 세계시장까지 겨냥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메디프레소는 현재 2종의 캡슐 차 추출 머신을 보유하고 있다. 최신 기종은 1억 5000만 원을 투입해 만든 제품으로, 이 머신에 개인별 체질을 분석해 체질에 맞는 차를 골라주는 IT솔루션을 장착할 예정이다.
“한의사와 협업으로 개인의 체질을 분석하는 IT솔루션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 솔루션을 머신에 장착하면, 고객들은 자신의 체질에 맞는 한방차를 골라 마실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 체질상 인삼차는 맞지 않고 둥굴레차를 마셔야 하는데, 이런 것을 IT솔루션을 장착한 캡슐 차 머신이 해결해줄 겁니다.”
스타트업이 성장하려면 초창기에 투자와 자본 유치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과 나라마다 마케팅 초점을 달리하면서 위치 선정을 잘하면 어마어마한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김 대표는 “이제까지 사업성을 검증하는 단계였다면, 본격적인 도전은 이제부터”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오동룡│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