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원도 양양의 리조트 설해원 입구에 선 건축가 양진석. 그는 30년 건축 노하우를 이곳에 모두 담았다고 말한다. ⓒAROUND(HaeRan)
건축가는 나이 오십이 넘고 인생의 다양한 경험 후에 나오는 작품들이 완성도가 높다. 그런 의미에서 ‘리조트 설해원 프로젝트’는 나에게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젊었을 때는 다작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한두 개의 작품이라도 진중하게 다가가고 몰입하는 편이다. 그만큼 일의 집중도도 높았고 건축에 대해 다각도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생각의 깊이만큼이나 다양한 각도에서 건축을 바라보게 된 것도 시간이 준 선물이다. 지난 30여 년간 건축의 중심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평상시에 ‘최선의 건축’이라는 말을 즐겨 쓰는데 최선을 다해야 좋은 건축물이 나온다는 뜻이다. 건축가도 최선을 다해야 하고, 건축물을 가지려는 사람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건축도 당시에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몰입해 만든 것들이다.
건축은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건축이 대중화되기 이전에 우리는 일부 돈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건축은 삶과 관계 맺는 방식이다. 구조물 하나 짓고 그 공간 안에서 사는 것을 건축이라 여기는 것은 일차적인 생각이다. 건축은 눈에 보이는 건조물 이전에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유하는 것을 돕기도 하고 대화하게 만들어주는 역할도 한다. 위안이 되고 친구가 되어줄 때도 있다. 사람들은 마음이 지쳐 있고 위로받고 싶을 때 ‘고향에 내려간다’고 하고 피곤할 때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건 모두 건축을 말하는 것이다. 고향과 집은 가족과 친인척이 있는 공간이고 장소이다. 죄를 회개할 때 찾는 절이나 성당, 교회도 신을 만나기 위한 방식과 공간을 건축이 제시해주고 있다. 좋은 건축은 값비싼 대리석을 바르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나 시골의 마을회관, 동네 편의점에서도 건축의 관점과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의 삶이 건축물에 개별적으로 잘 녹아들 때 우리가 사는 도시의 환경도 좋아진다. 돈이 있건 없건 건축에 대해 자기만의 철학을 담을 수 있을 때 더 좋은 세상이 될 수 있다.
시대를 넘나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청사진을 제시하는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는 활동 범위를 한정해서는 안 된다. 20년 전만 해도 한국 건축가는 인테리어에는 손도 대지 않았지만, 요즘 젊은 건축가는 인테리어는 물론 영상·미디어아트·그래픽디자인·설치미술 등 영역 제한 없이 이곳저곳 뛰어들고 있다. 그만큼 시대가 변했다. 나는 건축가 이외에 싱어송라이터(5집 앨범 발표)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음악도 건축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음악은 내게 돈 벌기의 일환이나 과시가 아닌, 기록의 연속이며 창작의 발현이다. 아티스트의 작품에는 그 시기의 고민과 생각이 녹아들어 있는데 당시 만든 음악이나 건축물을 보면 어떤 가치와 고민이 담겨 있는지 알 수 있다. 인생의 화두를 던져주기에 내게는 음악과 건축 모두 소중하게 느껴진다.
둘의 유기적인 관계는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한다. 평소 건축 일을 할 때는 보이지 않는 규제가 많다. 시간과 예산에 대한 규율, 건축법에 대한 규율, 갑과 을의 관계 등 다양한 규율 속에 산다. 하지만 음악 작업을 할 때 이런 규제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물론 둘의 차이도 있다. 건축은 반응이 메일이나 블로그 등을 통해 느리고 간접적으로 오지만, 음악은 콘서트 등을 통해 관객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어 매력적이다. 건축을 하면서는 학연, 지연 등으로 얽힌 인간관계를 맺게 되지만 음악은 그런 관계에서 자유로워 사람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음악 작업을 하면서 인생이 간결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다. 현대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를 비롯해 산업화 시대 초기의 건축가들이 시대를 초월한 예술적인 건축물을 창조할 수 있었던 것도 대중과 소통하면서 다양한 영역에 도전한 덕분이다. 현대 건축가로서, 인간 양진석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기 위해서라도 활동 영역에 제한을 두지 않을 생각이다. 그것은 좋은 건축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건축가 양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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