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82년 MBC 성우로 입사한 이래 36년째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누군가는 외길 인생이라고 부르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성우 이외에 대안이 없는 사람이다. 목소리를 뛰어넘는 재주가 없으니 한눈 팔지 않고 성우로 활동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돌이켜보면 감사한 일이다. 어린 나를 성우의 세계로 이끈 것은 한 편의 영화였다. 그 시절 서울 동부이촌동에는 70원에 두 편을 상영하는 동시상영관이 있었다. ‘석양의 건맨’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는데 동시 상영작인 ‘별들의 고향’이 먼저 상영되었다. 별 생각 없이 영화를 보던 나는 신성일이 안인숙과 허름한 여관에 누우면서 하는 대사 “경아, 오래간만에 같이 누워보는군”이 귀에 꽂히듯 들어왔다. 목소리 하나로 전율이 느껴지는 기분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매료된 나는 성우가 되기 위한 길을 찾아 나섰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성우가 되기 위한 기본 바탕은 어느 정도 마련된 상태였다. 중학교 시절 짝사랑하던 국어 선생님 마음에 들기 위해 국어책 읽기에 특별히 신경 썼던 것이다. 그러다 국어책을 잘 읽는다는 이유로 우연히 웅변대회에 나간 것이 성우 트레이닝의 첫걸음이 되었다. 당시에는 반공·수출 진흥을 주제로 한 웅변대회가 많았다. 처음 참가한 대회에서 4등을 했다. 이에 자극받아 혜화동의 ‘동향 변론학원’을 다니면서 절치부심하게 되었다. 학원에서는 웅변 발성과 원고 쓰는 법, 제스처 등을 가르쳐주었는데, 다음해 웅변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면서 전국남녀웅변대회를 휩쓸고 다녔다. 이런 상황에서 성우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남산에 있는 성우 학원에서 영화 ‘별들의 고향’의 신성일 역을 맡았던 성우 이강식 선생님도 직접 만났다. 대학에 다니면서 성우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군대 제대 후 1982년에 응시한 MBC 성우 시험에서 수석으로 입사했다. 당시 성우 10명(남 3명, 여 7명)을 뽑는데, 1700여 명이 몰렸을 정도로 인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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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우 박기량은 지금도 여전히 마이크 앞이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고 말한다. ⓒ박기량
방송국 생활은 쉽지 않았다. 신인 시절에는 드라마 배역도 맡아야 했는데, 목소리 때문인지 카바레 ‘제비족’ 같은 역할을 소화해야 했다. 그렇게 부침을 겪다가 입사동기들보다 먼저 프리 선언을 했다. 사실 연기자는 준비 과정이 복잡하다. 분장도 해야 되고, 의상과 헤어도 신경을 써야 한다. 보여줘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역할도 국내로 제한된다. 하지만 성우는 다르다. 우주전사로 은하계를 날아다닐 수 있고, 한 마리 표범이 되어 세렝게티 초원을 달릴 수도 있다. 전쟁에 참전하는 군인도 되고, 만화 속 주인공 쾌걸 조로리도 될 수 있다. 대본과 마이크만 있으면 어디서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실제로 나는 전쟁영화를 녹음할 때 전투복을 입고 갔고, 영화 ‘키스의 전주곡’을 녹음할 때는 알렉 볼드윈처럼 슈트를 빼입고 갔다. 그렇게 몰입했다. 뒤에서 일하는 것도 성우의 장점이다. 얼굴이 알려지면 행동에 제약이 있지만 성우들은 입만 열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일상에서 생활할 때는 그 또한 큰 장점이다.
성우로 일하며 방송의 공익성을 깨달은 순간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1997년 IMF 외환위기와 함께 시작된 MBC ‘성공시대’는 1회 정주영 회장부터 100회 박세리 프로골퍼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성공신화를 담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녹음 당시 방송국 앞으로 두툼한 편지 한 통이 배달되었는데, “저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죽음을 떠올리는 실직 가장입니다. 이 편지도 지금 탑골공원에서 쓰고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내용이었다. 그곳은 실직 가장의 가슴 절절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 편지를 받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 뒤로 나는 허투루 녹음을 한 적이 없다. 내 목소리가 누군가의 인생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18년 동안 이어온 ‘VJ 특공대’의 출연료를 한 번도 올리지 않은 것은 방송의 공익성 때문이기도 하다. 성우는 내 직업이기도 하지만, 목소리로 우리 사회에 작게나마 이바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그런 마음으로 마이크 앞에 선다. 그 마음이 스피커 너머 시청자에게도 전달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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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 박기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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