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명예박사 학위식에서 만난 신중현과 라이오넬리치. 임진모가 두 거장의 만남을 옆에서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임진모
미국 버클리음대는 2017년 한국인 최초로 신중현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졸업식 현장에서 브라운 총장은 신중현을 “절대적 음악 전설”이자 “끊임없이 발전하는 아티스트”라고 칭송하면서 “1970년대 한국 정부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견지한 반체제(anti-establishment)적 태도가 그의 위상을 드높였다”고 말했다. 축사에는 신중현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이유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버클리음대는 정부와 기존 질서에 대한 반항적 면모를 로큰롤의 사회적 가치라는 맥락에서 높게 평가한 것이다. 이것은 기타 연주를 넘어 음악 자체에 대한 평가였기에 신중현은 “음악 하는 사람에게 영광”이라며 기뻐했다.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기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다른 일정으로 참석했다가 현장에서 신중현과 조우한 것인데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영광이었고 음악평론가의 자세와 소명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버클리음악대학은 졸업식 하루 전에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모여 졸업 공연(Commencement Concert)을 한다. 이번에는 버클리음대 근처 보스턴 유니버시티의 아가니스 아레나에서 진행됐는데,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 다섯 음악가의 명곡과 추천 곡이라 팝스타 공연을 방불케 했다. 다섯 음악인은 신중현을 비롯해 라이오넬 리치(Lionel Richie), 토드 런그렌(Todd Rundgren), 루신다 윌리엄스(Lucinda Williams) 그리고 그래미상 주관사 미국레코딩예술과학아카데미협회(NARAS) 회장 닐 포트나우(Neil Portnow)였다. 신중현도 이 무대에 올라 펜더 기타로 미국 재즈 파퓰러 고전이라 할 수 있는 ‘가을 낙엽(Autumn Leaves)’을 연주했다. 그만의 색깔을 살린 이 연주는 삽시간에 소문이 퍼져 다음 날 보스턴 거리에서 만나는 많은 미국인이 ‘대단한 연주를 들려줘 영광’이라는 찬사를 건넬 정도였다. 공연 뒤에 라이오넬 리치가 신중현에게 먼저 다가와 “내한공연을 하게 되면 초청하고 싶다”고 인사하기도 했다. 나는 신중현의 무대를 보며 한국 대중음악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음을 절감했다.
지금의 K-POP은 기계적이고 비주얼 중심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에 반해 신중현은 왜소하고 특별히 돋보이지 않는 비주얼이다. 하지만 연주가 시작되면 신중현만의 강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음악에 대한 끝없는 에너지와 고집이 연주에서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다. 록과 팝의 본고장에서도 결코 수그러들지 않는 스탠스였다. 현장에서 연주를 들으며 한 명의 음악가가 자기만의 독창성을 확보했을 때는 그 어떤 철학적 성과 못지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현실의 영예와 돈의 축복은 받지 못했지만 역사적 인물이며 음악적 강자다.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깨달은 사실은 신중현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전문적으로 말하면 그는 음악인다움(musicianship)과 음악적 태도(musical attitude)를 완성한 인물이다. 신중현은 “결국 순수함이 이긴다. 음악가는 음악 지향, 돈, 명예와 관련해서 순수해야 한다. 대중도 결국에는 순수한 것을 사랑하고 인정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신중현이라는 거목을 바라보면서 평론가라는 직업을 다시 한 번 돌아봤다. 평론가는 음악가를 받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음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내게 부탁을 하고 찬사를 보내기도 하지만 평론가는 음악인들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직업이다. 미국에서 마주한 신중현의 공연은 평론가의 존재와 정체성, 방향성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됐다. 신중현은 “음악 하려고 마음먹었으면 듣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나는 록은 물론 재즈, 클래식, 우리 국악, 심지어 트로트도 듣는다”고 했다.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 거장도 지금까지 노력하고 듣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단다. 물론 전문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겸손한 태도다. 재능과 겸손은 좌우의 날개이다. 신중현을 보며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부단한 노력으로 더 많은 음악을 듣고 재능과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그것이 음악가들을 진정으로 받드는 일이라고.

임진모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뉴스레터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