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보로’는 빵 이름이 아니라 ‘소리를 보는 통로’입니다.”
대학(포스텍) 3학년을 휴학하고 창업한 윤지현 소보로 대표는 서울 성동구 사옥에서 기자를 만나 회사 이름을 정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여러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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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지현(우측) 대표와 소보로 직원들 ⓒC영상미디어
소보로는 ‘소리를 보는 통로’의 줄임말로, 청각장애인 강의 지원 시스템을 만드는 기업이다. 윤 대표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소보로를 시연해보자고 제안했다. 기자와 윤 대표가 마주 앉아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눈 이야기는 동시에 노트북 화면에 기록됐다.
자동 속기 시스템으로 기록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었다. 단지 청각장애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나 관공서의 회의록 작성에도 사용될 수 있는 기술이었다. 나아가 외국어 인식도 가능해 국제회의에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100% 완벽하게 인간의 말을 문자로 전환해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록된 내용을 쭉 읽어보면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사실 인간의 말을 글(텍스트)로 바꿔주는 기술은 10여 년 전부터 조금씩 발전해왔다. 인공지능기술 STT(Speech to Text)를 활용한 실시간 자막 서비스는 정확성이 중요하다. 윤 대표는 “띄어쓰기와 맞춤법에 맞게 제대로 텍스트로 옮겨지며, 한글뿐 아니라 영어, 중국어, 일본어 서비스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음성인식 정확도는 80~95%다.
한·영·중·일어 서비스… 정확도 80~95%
기술 완성도 못지않게 소보로가 주목받는 것은 개발 과정이다. 요즘 많은 대학이 청각장애인이 입학하면 필기를 대신해주는 봉사학생을 지원하고 있다. 봉사자의 도움으로 수업을 유지하던 기존 방식에 비하면, 말을 텍스트로 자동 변환하는 서비스는 큰 진전이다. 청각장애인 입장에서는 원하는 수업을 더욱 폭넓게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윤 대표는 청각장애인이 공부하는 어려움을 어떻게 하면 덜어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대학에서는 봉사학생이 돕고 있지만, 중·고등학교는 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윤 대표는 이런 의문을 가지게 됐다. ‘청각장애인에게 문자통역을 해주면 얼마나 편할까?’ 윤 대표가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를 고민하게 된 것은 웹툰에서 시작됐다. 인기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를 보면, 책상만 쳐다보며 학창 시절을 보낸 청각장애 학생이 대학에 가서 문자통역을 경험하고 “마치 천국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고 말한다. 윤 대표는 이 부분을 보고 사업 아이템을 떠올렸다.
포스텍의 ‘창의IT설계’라는 과목을 수강하면서, 수업 프로젝트를 하면서 그 생각은 더욱 구체화됐다. 직접 청각장애인들도 만났다. 부산 농아인협회 등 청각장애인 200여 명을 만나 그들의 의견을 듣고, 아이디어를 가다듬는 과정을 거치면서 제품의 성능을 향상시켰다.
지난해 대학교 팀원 두 명과 함께 서울에서 조촐하게 사무실을 열었다. 그 후 1년이 조금 넘는 동안 이사를 세 번 했다. ‘학교에서 얻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이들의 서울행을 이끌었다. 아직 젊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기회라는 도전정신도 한몫했다. 그러한 노력으로 지난해 제6회 정주영창업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고, 올해 소셜벤처 인큐베이터 소풍(sopoong)으로부터 투자도 받았다.
청각장애인 200명 의견 들으며 개발
소보로는 청각서비스를 넘어 속기 업무로까지 활용도를 넓히고 있다. 현재 PC버전과 함께 안드로이드 기기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모바일 버전도 있다. 전화통화를 할 경우, 상대방의 통화 음성이 텍스트로 기록되는 서비스도 가능하다. ARS 전화, 정부 민원 상담 등에서 청각장애인에게 유용한 기능이다. 다만 최근에는 사생활 보호, 도청 등의 우려로 통화 음성에 특정 소프트웨어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신형 핸드폰이 출시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통화 음성 문자 변환 기능을 발전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보로는 이용시간에 따라 요금이 부과된다. 개인 고객은 시간당 2000원, 기업 및 기관은 시간당 1만 원의 비용을 부과한다. 소보로 사이트를 방문해 프로그램을 내려받고 로그인한 후에 사용하는 형식이다. 무선 마이크와 수신기를 사용하면 정확도가 높아지며, 현재까지 7개 기관과 사용 계약을 맺은 상태다.
향후 목표에 대해 윤 대표는 “공학은 결국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라며 “사람을 생각하며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생각에서 청각장애인들이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느끼는 현장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에는 의료 현장의 어려움에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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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지현 대표의 ‘소보로’ 시현 모습 ⓒC영상미디어
“청각장애인이 병원에 갈 때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의사로부터 진단을 받고 주의사항을 들어야 하는데 의사가 수화를 하는 경우는 드물거든요.”
대부분은 청각장애인과 대화를 할 경우 진단 내용을 종이에 써서 보여주거나, 키보드로 내용을 쳐서 청각장애 환자에게 보여주는 방식 등이 이용되고 있다. 윤 대표는 “태블릿 PC를 이용해 자연스럽게 의사와 청각장애인의 대화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초·중·고등학교에서도 소보로 서비스를 이용하면 좋을 것 같다. 장애가 배움의 기회를 막는 장애물이 돼서는 안 된다”고 소신 있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