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의료빅데이터에 따르면 2017년 국내 우울증 환자 수는 68만 169명. 지난 10년 동안 정신건강의학과 환자 증가율은 1위로 암 환자보다 비율이 높았다. 급속도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다양한 상황을 마주해야만 하는 현대인들에게 정신질환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여느 질병이 그렇듯 정신질환은 하나의 병이고 여러 증상으로 나타난다. 다만 눈으로 상흔을 확인할 수도,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인지하기 어려운 만큼 획일화된 치료법만 적용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미래형 멘탈헬스케어센터 CTOC의 출발점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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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TOC는 무술과 심리학적 접근 방식을 결합해 개인 맞춤형 치유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CTOC
“우리나라에서는 치료 목적으로 병원에 가면 대다수 의사들이 약물 처방을 내려요. 반면 미국이나 영국과 같이 정신건강 선진국은 의학적인 처방 외에 사회적인 처방이 존재해요. 이를테면 어떤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어떻게 활동해야 하는지, 어떤 운동이 필요한지 등 일상생활에서 약물 말고도 병행할 수 있는 치료 방법을 알려주는 겁니다. 그런 부분에 비하면 우리나라 정신건강 치료 생태계 수준이 좋은 편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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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은하 CTOC 대표 ⓒC영상미디어
CTOC는 ‘Challenge To Change(변화를 위한 도전)’이라는 의미 아래 건강한 정신과 신체를 만들 수 있도록 맞춤형 치유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장은하 CTOC 대표는 공급자 중심의 단편적 솔루션에서 벗어나 소비자 중심의 통합적 솔루션을 지향한다. 사람은 개별적 존재이기 때문에 개인의 총체적인 삶을 들여다보는 접근방식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서비스 대상자를 ‘환자’라고 표현하지 않고 ‘고객’ 혹은 ‘소비자’라고 지칭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증상을 주제로 상담을 진행하고 치료법을 제시하는 게 뭐 그렇게 특별한 일인가 싶겠지만 무술(武術)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점은 분명한 차이점이다.
소비자 중심의 무술 중심 치유
CTOC는 심리·신체·사회적 건강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특화 프로그램으로 ‘WLT(Wellness Lifestyle Training)’를 내놓았다. 정신건강과 육체건강을 양분화하지 않고 두 가지를 동시에 지속 가능하도록 하는 수단으로 무술을 활용한다. 단편적으로 보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정신건강과 육체건강은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어느 한쪽에만 무게를 둬선 안 된다는 것이다.
무술 프로그램은 총 열한 가지. 근력 및 체력운동, 타격기, 잡기, 명상 및 기공 등 네 개 형태로 각 종목마다 치유 목적이 다르다. 장은하 대표는 가짓수보다 무술 형태의 의의를 강조했다. 어떤 사람이든 누구나 고유의 강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발견하고 지속적으로 계발할 수 있는 운동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근력 및 체력운동, 타격기는 짧은 시간에 자신감이나 외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한편 명상 및 기공은 정신적 안정감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무술이다. 세부적으로는 웨이트트레이닝, 복싱, 무에타이, 주짓수, 태극권, 명상 등 정적인 프로그램부터 격렬한 프로그램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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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타격형태의 무술은 대상자의 자신감을 이끌어 내는데 유용하다.
(우) 적성검사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대상자의 성향을 신체적 반응에서 확인하는 경우도 있다. ⓒCTOC
CTOC는 심층 상담과정에서 무술 기반 행동반응 검사를 실시하는데 이는 일반 심리상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함이다. 심리상담 중 어려운 부분은 환자의 내면 의식과 성향을 끌어내는 것이다. 상담 대상자가 설문조사, 적성검사 과정에서 스스로를 감추거나 과장할 수 있는 답변을 고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체적 반응은 실제 그대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빠르게 내면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일각에서는 CTOC 프로그램을 ‘특정 무술이나 종목으로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운동 프로그램을 정신의학, 심리학적인 접근 방식과 결합해 개인마다 다르게 적용한다는 게 중론이다.
“스스로를 점잖고 인내심이 많은 성향이라고 하던 사람에게 태극권을 시켰더니 몇 십 초 지나지 않아 성질을 내요. 복싱을 권했는데 어떤 사람은 달려들고 또 다른 사람은 도망가죠. 각 반응으로 그 사람을 이해하고 어떤 운동으로 치료할 수 있을지 확인하는 겁니다. 일례로 왕따 트라우마가 있는 친구에게는 가장 빨리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타격 운동부터 권해요. 그 이후에 명상을 진행한다든지 심리 테라피를 병행하는 식이죠.”
약물 치료 방식이 주된 관리 생태계에 새로운 접근법을 내민 배경에는 장 대표의 경험이 있었다. 장 대표는 CTOC 창업 전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심한 우울증을 앓았고, 신체적 이상 증세도 느꼈다. 치료를 위해 정신과 상담, 약 처방 등 많은 솔루션을 거쳤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으로는 부족했다.
“내가 내 몸부터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어야 내 삶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작정 운동을 해보자는 결심으로 무술수업과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했고 1년이 지나면서 건강한 정신, 신체를 찾는 계기가 됐어요. 건강해지니까 저와 같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보이더라고요. 많이 아팠고, 또 극복해봤기에 그들의 삶에 관여할 수 있는 동기와 힘이 생겼던 것 같아요.”
정신건강관리 생태계 선진화 목표도
CTOC는 예비 사회적 기업이기도 하다. 정실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기 위한 역할도 빼놓지 않는다. 단순히 개인을 치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신건강관리 생태계의 선진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장 대표의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정신질환코드를 갖고 있을 경우 120여 개의 직업 자격이 박탈된다. 또 다른 병원을 다니는 것처럼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여전하다. 증상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는 사람들이 적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 사람이 자신의 증상을 깨닫고 병원에 찾아가기까지 걸리는 시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영국인은 약 34주 소요되는 반면 한국인은 84주다. 장은하 대표는 정신과 병원이나 심리센터가 존재하지만 소비자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소비자와 공급자(의사) 간 정보 비대칭성에서 야기되는 문제점이다. 미국의 경우 멘탈헬스케어 시장에서 공급자 집단과 소비자 집단의 권익은 거의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같은 아픔을 지닌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지지하는 집단이 운영되고 있고 원격진료도 활성화됐다.
“흔한 예로 성형외과나 피부과, 치과는 어느 곳이 좋다고 공공연하게 소개하고 추천하잖아요. 그런데 정신과는요? 숨기기 급급하죠. 정신과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떳떳하게 드러내고 그중 문제점을 이야기해야 치료 수준이 향상될 수 있어요. 소비자들이 제공되는 서비스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공급자들이 치료 수준을 높일 이유가 없어요. 우리는 고객들이 제 목소리를 내면서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이러한 서비스는 제공자들이 늘어야 경쟁과 협력 구도가 생길 겁니다.”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 중 외부로 나오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함을 호소하는 사례가 있다. 여기서 장 대표는 CTOC 서비스 접근성의 한계를 마주했다. 그는 이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마음의 CPR’ 교육을 내놓았다. CPR(심폐소생술)가 생존을 위해 필요한 교육이고 누구나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것처럼, 누구든지 주변 사람들의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는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한다. ‘자살예방 Q.P.R’는 대표적인 교육 과정이다.
“옆에서 죽어가는 누군가를 살릴 때 심폐소생술을 하죠. 마음이 죽어간다는 사람은 누구에게 CPR를 받아야 할까요? 같은 아픔을 겪어본 사람 그리고 극복한 사람이 그 과정을 또 다른 누군가와 공유하면서 치유할 수 있는 ‘아픔의 전문가’를 교육하는 겁니다. 이들은 지역사회 혹은 학교로 돌아가서 커뮤니티 조성, 캠페인 전개, 온라인 내 익명 조력자 등으로 활동할 수 있어요.”
Q.P.R는 묻고, 듣고, 설득하고, 추천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Q(Question)는 고통의 정도를 정확하게 물어봐주는 것,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묻고 들어주는 과정이다. P(Persuade)는 무엇이 효과적인 치유 방법인지 이해시키고 유도하는 설득 과정이다. 마지막으로 R(Refer)는 이전 과정에서 더 나아가 ‘아픔의 전문가’를 양성하고 추천하는 단계다.
설립된 지 올해로 2년째를 맞은 CTOC의 궁극적인 목표는 분명하다. 누구나 장소와 시간의 제약 없이 멘탈헬스에 대해 자신만의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플랫폼이 되는 것.
“더 나은 정신건강관리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맞손이 필요합니다. 그 생태계가 울타리라면 저희는 CTOC라는 하나의 꽃을 피워낸 상태예요. 다른 꽃들도 생겨야죠. 현재는 울타리가 사회적 편견 때문에 낡고 너무 높아요. 저희 역할은 그 울타리를 낮추고 넓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요새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나 정신과에 다닌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행위를 두고 ‘정밍아웃’이라고 표현한다고 합니다. 그게 당연한 날이 와야죠.”
이근하│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