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제231탐색구조비행대대 비행대장으로 근무 중인 손정환 소령은 8년간의 장거리 연애 끝에 결혼의 문을 통과해 이후 8년 동안은 주말부부로 지냈다. 공군 조종사라는 직업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겼다. 그 사이 아이는 셋이 되었고,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 됐다. 아내가 육아로 쓸 수 있는 휴직은 모두 소진한 뒤였다. 아내는 손 소령에게 ‘육아휴직’을 권했다. 아직 소속 부대에서 육아로 휴직을 한 사례는 없었다. 남자, 군인, 파일럿인 그가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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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군 최초로 아빠 육아휴직을 경험한 손정환 소령 가족 ⓒC영상미디어
“고민이 많았어요. 불이익을 당할까 봐 걱정도 됐고요. 비슷한 사례가 없으니 참고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존경하는 선배 한 분이, 인생 말년에 가장 후회되는 일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충격을 받았어요. 자기 분야에서 큰 성공을 이룬 분인데, 나이가 들고 보니 가족 안에서 자기 자리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은 엄마하고만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고, 아빠는 손님처럼 대한다고요. 그때 결심했어요. 저도 더 늦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죠.”
주말에만 보던 아빠가 주중에도 있으니 아이들이 좋아했다. 첫째는 여덟 살, 둘째는 다섯 살, 셋째는 세 살이었다. 허니문은 길지 않았다. ‘잘 놀아주던’ 아빠가, 육아와 살림을 전담하는 아빠가 되자 엄격해졌다. 특히 그의 ‘군인정신’은 아이들에게도 교관 같은 마음이 들게 했다. 왜 빨리 적응하지 않는지, 왜 이렇게 훈련이 더딘지, 그로서는 답답한 시간이었다.
“엄마들이 출산 후 우울증을 겪는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다가 석 달이 지나니까 우울해졌어요. 왜 이렇게 밖에 못하는지 스스로 자괴감이 들더라고요. 육아와 살림을 함께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어요.”
그래도 군인 신분인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는 ‘체력적으로’ 뛰어날 줄 알았다. 아이들 어린이집 체육대회에 출전하면 항상 순위권에 들었다. 하지만 육아 앞에서는 장사가 없었다. 딱 한 달이 지나자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혔다. 체중이 7~8㎏ 줄었다.
“시간이 좀 흐르니까 왜 이렇게 조급하게 생각했나 싶더라고요.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는 불안감도 작용했던 것 같아요. 결국 제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건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유를 갖고 아이들을 기다려주기로 했죠.”
SNS와 카페 활동이 큰 도움이 됐다. 비슷한 시기, 비슷한 고민을 겪는 ‘육아아빠’들과의 소통은 그에게 숨통을 틔워주었다. 기존의 ‘아빠 육아’ 서적들도 있었지만 너무 고수들의 이야기였다. 책 속의 이들은 아이들에게 이유식도 척척 만들어주고 재미난 놀이도 딱딱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에게는 너무 어려운 이야기였다. 1년의 육아휴직 후, <아빠, 육아휴직해도 괜찮아>라는 책을 펴낸 이유다. 자신처럼 시행착오 가득한 초보아빠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처음엔 누구나 서투르다고, 아이들이 금방 변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이다.
“육아휴직이 저에게도 두 번째 인생을 계획하는 시간이 되었어요. 조직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다른 생각을 하기 어렵잖아요. 정해진 경로대로, 주어진 삶을 살게 되죠. 그런데 이렇게 한 걸음 떨어져 나와 보니, 제가 처한 상황과 우리 사회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게 됐어요. 앞으로 나와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도 고민하게 됐고요.
육아를 하면서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아이들을 돌보는 틈틈이 시간을 냈다. 체력은 생존의 문제였다. 목공을 배우기도 하고, 평소에 관심이 있던 부동산경매 책을 찾아보기도 하면서 ‘자기효능감’을 높여갔다. ‘자신감’은 육아와 살림을 하는 데도 꼭 필요한 감각이었다.
“육아휴직을 하고 나서 아이들과의 관계가 굉장히 친밀해졌어요. 아내와는 전보다 더 전우애가 생겼죠. 전에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서로 이야기를 해야 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휴직이 끝난 뒤로도 퇴근해서 아내가 아이들 이야기를 하면 귀담아들으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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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정환 소령이 아이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C영상미디어
아빠를 위한 온·오프라인 공간 필요해요
아빠 육아가 보편화되려면 사회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북유럽에는 ‘라떼파파’가 흔하다. 한 손으로는 유모차를 끌면서 다른 손으로는 커피를 마시는 아빠를 뜻한다. OECD 조사에 따르면 북유럽 국가의 경우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의 비율이 45%를 웃돌았다. 스웨덴은 1974년부터 ‘부모 육아휴직 제도’를 도입했는데, 정부는 부부가 육아휴직을 동등하게 나눠 사용하면 ‘양성 평등 보너스’를 제공한다. 노르웨이는 ‘아버지 할당제’를 두고 아버지가 4주 동안 육아휴직을 쓰지 않으면 어머니 역시 육아휴직을 쓸 수 없도록 만들었다. 북유럽 국가의 남성 육아휴직 활성화 노력은 출산율 증가라는 결실을 맺었다. 1998년 1.5명이던 스웨덴의 합계 출산율은 2015년 1.88명으로, 노르웨이는 1.75명으로 늘어났다.
“북유럽의 라떼파파가 가능한 이유는 사회가 함께 변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출산율을 높이려면 가정에서 느끼는 독박육아의 부담이 줄어야 하거든요. 그러려면 아빠가 짐을 함께 져야 해요. 제가 인생을 돌아보니 서른에 결혼해서 100세까지 산다고 하면 인생의 2/3를 아빠로 보내는 거더라고요. 그런데 제대로 된 ‘아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거죠. 그나마 엄마의 경우는 온라인의 맘 카페나 오프라인의 키즈카페라도 활성화되어 있지만, 아빠들은 여기에서도 소외돼 있거든요.”
그의 말대로 ‘아빠 육아’를 담당해야 하는 지금 세대의 아빠들은 ‘ 육아’를 본 바도, 배운 바도 없다. 새로운 시대의 아빠상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앞으로도 어떤 아빠가 될 것인가는 끝없는 고민거리가 될 거 같아요. 저뿐 아니라 이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요. 여러모로 육아휴직은 제 삶에 터닝 포인트가 됐어요. 아이들의 기억 속에도 아빠와 함께했던 ‘기억의 앨범’을 풍성하게 남길 수 있어서 감사해요. 그 시간이 저와 아이들의 삶에 든든한 재산이 되리라 믿어요.”
유슬기│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