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온리(ONRE)는 폐종이를 친환경 문화 수공예품으로 되살리는 업사이클링 전문 사회적기업이다. 이 사회적기업이 만든 예쁜 카드를 감상하다 물에 적시면 새싹이 자라나 조그마한 종이정원으로 변신한다. 협동조합온리가 만든 폐종이 수제 씨앗카드 ‘종이정원(Paper Garden)’이다. 생명인 씨앗을 담고 있다고 해서 ‘새싹 카드’로도 불린다.

▶ 김명진 협동조합온리 이사장이 새싹이 나온 수제 씨앗카드, ‘종이정원’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C영상미디어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만난 김명진 온리 이사장은 씨앗카드와 같은 재질인 폐종이로 만든 도톰한 명함을 건네면서 “온리는 제 고향인 ‘온고을(전주의 옛말)’에서 업사이클링을 통해 지역경제와 문화를 되살리고 나아가 지역공동체를 풍요롭게 하려는 취지에서 만들었다”며 “온고을의 ‘온(ON)’과 전주를 다시 디자인한다는 의미의 리디자인에서 ‘리(RE)’를 따온 것”이라고 했다.
업사이클링과 전주의 한지 문화를 결합
김 이사장은 종이정원을 개발해 2013년부터 시장에 출시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캘리그래피와 그림을 그리는 작가, 어르신, 결혼이민자, 성소수자 등 취약계층의 지역 일자리 창출에도 이바지하면서 2014년에는 서울관광기념품, 2015년 사회적기업 스타 상품에 연속으로 선정됐다.
김 이사장은 협동조합온리를 비롯해 아름다운가게 에코파티메아리, 녹색소비자연대 전국협의회 등 10년 이상을 업사이클 관련 사회 혁신 분야에서 종사해온 사회적기업가다. 에코파티메아리 시절에는 버려지는 옷이나 현수막, 폐가죽, 안전벨트를 활용해 가방이나 지갑, 여권 케이스, 파우치, 팔찌 등 새로운 아이템으로 재가공해 판매하기도 했다.
김 이사장은 “고향에 들렀을 때 한옥마을 기념품 시장 규모가 1000억 원이 넘는데도 ‘테디베어’ 같은 국적 불명의 외국산 기념품들이 많이 눈에 띄는 걸 보고 귀향을 결심했다”면서 “늘 숙제처럼 지역 되살리기를 곰곰이 생각하다 내가 일했던 업사이클링 분야와 전주의 한지문화를 결합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했다.
5년여의 준비 과정을 거쳐 2012년 전주로 돌아온 김 이사장은 본격적으로 사업 아이템을 구체화해나갔다. 그는 “그동안 업사이클 쪽에서 일하면서 사과로 만드는 노트, 해조류로 만드는 종이 등 친환경 비목재 펄프를 개발해 출시한 경험이 있었다”며 “이것을 활용해 인쇄소나 사무실에서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파쇄종이를 업사이클링하고, 전주 전통 한지 제작 기법을 도입하는 한편, 전주 지역민의 장인 제작 방식을 더했다”고 했다.

▶ 종이정원 제작과정. 지역에서 기부 받은 파쇄종이를 물에 충분히 불려 종이죽으로 만든다. 묽은 반죽을 틀에 붓고 씨앗을 한쪽 귀퉁이에 넣는다. 다시 한 차례 반죽을 붓고, 씨앗이 불기 전에 신속하게 건조한다. 서너 차례 압축과정을 거쳐 작가들의 작품을 인쇄한다.(왼쪽 위부터) ⓒC영상미디어
“그때 이렇게 생산한 종이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법으로 생각한 것이 ‘시드 페이퍼(Seed Paper)’였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이미 ‘그로우 카드(Grow Card)’, 영국엔 ‘씨앗 폭탄(Seed Bomb)’이라는 씨앗종이가 있었고, 국내에도 이를 본뜬 여러 개의 씨앗종이들이 도입되고 있었는데 종이정원도 그 시기에 탄생했지요.”
김 이사장은 “지역에서 기증받은 폐종이를 재활용해 사회적 취약계층인 이웃들의 정성스런 손길을 거쳐 지역 작가들의 작품이 입혀지면 세상에 하나뿐인 ‘수제종이카드 종이정원’이 탄생한다”며 “일반 카드를 받으면 나중에 버려지지만, 종이정원은 카드의 쓰임이 다한 후에도 그 안에서 새싹이 자라나 새로운 생명을 탄생해 3개월 이상 우리 눈을 기쁘게 한다”고 했다.

▶ 협동조합온리가 제작한 수제 씨앗카드 종이정원은 총 550여 종이다. 전주 지역의 경력단절여성들이 주축이 된 ‘글꼴유랑단’이 글을 썼다. ⓒC영상미디어
김명진 이사장은 온고을의 씨앗종이는 일반 씨앗종이와 ‘신분’이 다르다고 말한다. 일반 씨앗종이는 펄프 원료를 사용하는 반면, 종이정원은 폐종이, 그중에서도 재활용이 고약한 파쇄종이를 사용한다. 파쇄종이는 기계에 의해 갈기갈기 찢긴 상태라 이면지로 재활용할 수도 없고, 부피가 커 재활용 업체들에게는 찬밥 신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은행에서 나오는 파쇄용지는 플라스틱 카드와 비닐이 섞여 있고, 사무실에서 나오는 파쇄용지는 스테이플러 철심이 섞여 있어 재활용하려면 골머리를 앓는다. 종이정원 카드 1장에 들어가는 폐지의 양은 약 15g. 연간 10만 장 정도를 생산하는 데 약 1.5톤의 폐지가 쓰인다.
김 이사장은 “비닐코팅이 된 일회용 컵이나 우유팩은 사용할 수 없어 소각처리를 해야 하지만, 우유팩은 위생적인 데다 워낙 고급 펄프여서 우유팩 펄프를 되살리는 공장에서 사오기도 한다”며 “우유팩으로 만든 종이정원 카드는 마치 분가루같이 곱고 예쁘다”고 했다.
협동조합온리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씨앗종이를 만들겠다는 생각만 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씨앗종이를 만들지 앞이 캄캄했던 것이다. 김 이사장은 “기존의 씨앗종이들, 특히 네덜란드의 대표적 씨앗종이 그로우 카드를 관찰하고, 인터넷을 통해 제조과정을 추적해나갔다”며 “한지 제조 공정을 익히기 위해 전주 지역 한지공방을 찾아가 제작과정을 배우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 결과, 6개월 만에 수제 씨앗카드 종이정원을 만들 수 있었다.
김 이사장이 설명하는 종이정원 제작과정은 마치 김을 생산하는 과정과 비슷했다. 그는 “주문자의 카드 크기에 따라 형틀의 크기가 달라진다”며 “생산과정에서 손이 많이 갈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장인이 제작 초기부터 건조 공정까지 책임지는 방식”이라고 했다.
카드 위에 인쇄되는 글씨와 그림은 오스트리아에서 수입한 특수 친환경 잉크로 독성이 거의 없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여기에 전주의 명물 ‘한지’의 다양한 색상을 담았다.
“먼저 지역에서 기부 받은 파쇄종이를 용도에 따라 분류합니다. 이것을 물에 충분히 불려 종이죽으로 만드는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탈묵(脫墨)도 진행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묽은 반죽을 틀에 넣고 가장 중요한 씨앗을 한쪽 귀퉁이에 넣습니다. 그 위에 다시 한 번 반죽을 부어줍니다. 씨앗이 발아하기 전에 말려야 하는데, 이 공정이 제일 진땀이 나고 중요합니다. 이후 서너 차례 평평하게 다듬는 과정을 거쳐서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인쇄하면 마침내 종이정원이 탄생합니다.”
김 이사장은 “일하는 분들이 손수 수작업으로 씨앗을 넣다 보니 씨앗 위치도 각기 달라 싹이 나올 때 자연스럽고 예쁘다”고 했다. 그는 종이정원에 들어가는 씨앗은 전북대 농과대학과 산학협력을 통해 종자 발아 테스트를 거친 자운영, 브로콜리, 겨자, 적콜라비, 청경채 등 5종의 씨앗을 사용한다고 했다. “특히 자운영의 꽃말이 ‘관대한 사랑’인 것처럼 따뜻한 느낌이 든다”며 “전북대 농과대학과 이미 허브랑 자생종·멸종 위기종을 중심으로 100여 종의 종자 연구개발을 마쳤다”고 했다.
순천만정원박람회 기념카드 제작업체로 선정
종이정원은 1년 정도 액자에 넣고 보다가, 그다음 접시그릇에 적셔놓으면 3개월 동안 새싹을 감상할 수 있다. 게다가 친환경 특수인쇄를 하기 때문에 물에 적셔도 잉크가 탈색되지 않는다. 김 이사장은 “종이정원은 발아력이 뛰어나 보통 2~7일이면 싹을 틔운다”며 “그 덕에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서 기념카드 제작업체로 선정됐다”고 했다.
종이를 뚫고 나온 새싹은 눈으로 즐겨도 되지만 수경재배하면 석 달은 충분히 싱싱한 잎을 즐길 수 있다. 흙에 옮겨 심으면 더 크게 키울 수도 있다. 수제카드 한 장의 가격은 4500원대, 친구 생일카드나 어버이날 카드, 크리스마스 카드는 5장에 1만 원에 판매한다.
이러한 매력 때문에 소비자들의 반응은 좋은 편이다. 종이정원을 구매한 소비자는 반드시 재주문을 한다.
김 이사장은 “일반 카드는 한 번 전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씨앗카드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지녔다”며 “식물을 정성스레 키우는 과정에서 카드를 자주 바라다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보다 더 좋은 고객 감성마케팅은 없다”고 강조했다. 군대 가는 아들이 선물한 씨앗카드를 100일 휴가를 나올 때까지 물을 주며 정성껏 키웠다는 일기를 블로그에 올린 어머니도 있다. 또 교도소에 있는 부모님께 보내려 했으나 외부 반입물품 금지라 너무 아쉬웠다는 글을 올린 자녀들도 있었다.
온리에는 ‘계약직 공동작업장’이란 다른 회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작업 형태가 있다. 즉 서류상으로는 취약계층이 아니지만 동생의 병원 수발을 드는 등 장애인 가족을 돌보느라 주 40시간씩 일할 수 없는, 실질적으로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일자리다. 김 이사장은 “이분들에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고 형편껏 작업한 만큼 임금을 준다”며 “매출이 연중 고르게 발생하지 않는 회사의 특성상 변동 사항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지금까지 온리가 제작한 카드 디자인은 총 550여 종. 이 가운데 400여 종이 지역 작가의 작품이고, 나머지는 명화와 한국 민속화 중 저작권이 풀린 것들을 사용하고 있다. 카드 디자인 개발에는 전북 지역의 영세한 작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온리가 지출하는 금액의 90%가 지역 안에서 순환되고 있다”고 흐뭇해했다.
종이정원엔 6개 산업이 담겨 있다
온리는 매장 매출과 주문제작 매출 비중이 각각 90%와 10%를 차지하지만, 앞으로는 주문제작 비중을 더욱 늘려갈 계획이다. 그러나 수제생산이다 보니 생산능력이 한계가 있다는 게 문제다. 현재 6명의 직원으로 공방을 완전히 가동하더라도 생산량이 월 8000여 개에 지나지 않는다. 2015년 김 이사장은 중국에서 300만 장의 주문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아픈 추억을 갖고 있다. 카드 완성에 3주가 걸리는 당시 생산 공정과 인원으로는 물량을 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김 이사장은 LG소셜펀딩을 통해 LG전자 명장들의 도움을 받아 기존 생산량을 2배 이상 늘리면서 장애인들도 작업이 가능한 작업도구를 개발했다. 이 밖에 강원도 정선군청의 요청에 따라 제2생산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정선군청은 폐광으로 일자리를 잃은 주민들의 일자리 창출에 온리의 사업모델이 제격이라고 판단했다”며 “만일 제2공장이 완성되면 연 100만 장의 생산도 거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이사장은 “종이정원이 작은 엽서카드에 불과하지만, 실제로는 6가지 산업이 집약된 것”이라며 “전통적 제지 산업, 종이 재활용 산업, 종자 산업, 디자인 산업, 업사이클링 산업, 전통공예 산업 등이 그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