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방의 눈먼 악사를 연기한 조관우는 어수룩하고 먹을 것만 밝히는 모습으로 구박받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본색을 드러내며 반전을 꾀한다. ⓒ조관우
나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심했다. 운 좋게 데뷔하자마자 ‘늪’으로 큰 사랑을 받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조관우라는 컬러를 바꾸는 것이 두려웠다. 고성을 쓰지 않는 것도 목이 어긋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방송 출연도 두려웠다. 옛날 화면을 보며 촌스럽고 우습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시간이 흐른 뒤에 어떻게 비춰질지 걱정이 됐다. 인터뷰를 할 때도 긴장 탓에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다른 말을 해서 ‘말 못하는 가수’, ‘동문서답하는 게스트’로 꼽힐 정도였다. 두려움의 압박이 무서웠다.
두려움은 존재의 부정에서 온 것일지 모른다. 나는 데뷔 이후에도 아버지(인간문화재 제5호 조통달 명창)에게 소리로 인정받지 못했다. 아버지는 “왜 그렇게 내시 목소리를 내냐”면서 가성을 쓰는 내게 ‘고자성음’을 낸다고 혹평하셨다. “네 목소리에는 공력이 없으니 노래를 포기하라”고도 하셨다. 1집 ‘늪’으로 인기를 끌 때도 “인기는 거품에 지나지 않고 거품이 빠지면 맹물이다”, “어설프게 얼굴이 알려지면 리어카도 못 끈다”고 매몰차게 평가하셨다. 물론 나중에는 가성으로 득음한 것을 느꼈다며 내 소리와 영역을 인정해주시긴 했다.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수 조관우의 이미지를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변화가 두려웠다. 나는 노래를 할 때 별다른 퍼포먼스가 없는 가수다. 춤은 말할 것도 없고 제스처도 없다. 마이크도 들지 않고 마이크를 스탠드에 고정한 채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한다. 바꿔 말하면 방송용 노래를 하지 않는 가수다. 방송에서는 내보이는 것이 중요한데 그림 요소가 없어서 카메라맨들이 “조관우는 어디를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난감해한다는 얘길 들은 적도 있다. 그쯤 나는 이것을 어떻게 타파할 것인가에 빠져 있었다. 때마침 ‘나는 가수다’ 출연 요청이 왔고 이를 수락하면서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프로그램 안에서 다양한 변화를 시도할 수 있어 좋았지만 4개월 넘게 방송하면서 성대결절이 온 것이 문제였다. 전쟁터에서 대포 소리쯤 내야 적들이 놀라는 것처럼 내 창법을 잊고 무리를 한 것이 원인이었다. 가벼운 딱총이었던 내 성대는 폴립에 실핏줄까지 터져 최악의 상황이었다. 결국 성대수술을 하게 됐는데, 성대 회복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쯤 제안 받은 것이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의 조악사 역이었다. 시트콤 ‘청담동에 살아요’ 출연으로 연을 맺었던 김석윤 감독이 캐스팅 제의를 한 것이다. 다른 때였다면 두려워서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목이 위기 상태였고, 아이들 학교라도 무사히 보내려면 다른 분야에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연기였는데, 이것이 나를 변화로 이끌었다. 시트콤 현장에서 김혜자 선생님이 연기하시는 모습을 보고 ‘연기를 통해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다’는 걸 느꼈다. 연기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버리고 역할에 맞는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연기자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나 자신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늪’을 부르는 가수 조관우의 이미지, 방송을 안 하는 이미지는 그동안 내가 쌓아왔다. 시간이 지난 뒤에는 그 담이 너무 높아져 다른 용기를 낼 수가 없었다.
물론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분장으로 상투를 틀었는데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내가 가진 콤플렉스 중에 하나가 앞머리 라인이 M자(탈모는 아니다)라는 것인데, 상투를 틀고 나니 신체의 치부가 확연히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키도 작은데 짚신을 신으니 더 작아진 기분이었다. 그래서 분장을 하고도 한참을 나서질 못했다. 그러다 ‘이건 가수 조관우가 아니라 조악사잖아?’ 하는 생각이 깨달음처럼 밀려왔다. 그렇게 가수 조관우를 내려놓고 나니 비로소 연기를 할 수 있었다. 연기를 하기 전에는 변화가 두려웠는데 나를 내려놓는 연습을 하면서 변화를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연기를 하면서 내 안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놀랄 때도 있다. 변화에 대한 성취감을 느끼면 두려움도 사라진다. 과거에는 새로운 것을 먹어보는 것도 꽤 두려웠다. 그래서 어렸을 때 먹은 거 외에는 찾아서 먹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맛에 대한 변화도 새롭게 느낀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면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것 같다. 변화를 즐겁게 받아들이면 이렇게 새로운 삶이 열린다.

조관우│가수·배우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뉴스레터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