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외국인의 한국 여행기를 담은 모 TV 프로그램에 서울 상암동 e스포츠 경기장이 나온 적 있다. 이 경기장을 찾은 핀란드 청년 세 명은 “핀란드 아이스하키 경기장보다 더 멋진 것 같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유적지도, 유명 관광지도 아닌 e스포츠 경기장이 한국을 처음 찾은 외국인들의 발걸음을 붙잡는 모습에 의문이 든다면 간단히 이렇게 설명하겠다. “e스포츠 성지니까요.”
e스포츠(electronic sports)는 어딘가에서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단어다. 그렇지만 정확한 개념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영어 단어 그대로 해석하면 ‘전자기기와 관련한 정신·육체적 활동’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게임’으로 정의 내릴 있지만, 아니다. e스포츠는 공정한 조건에서 게임물을 매개로 승부를 겨루는 행위, 엄연한 스포츠다.
게임이 경기 종목으로 다뤄지기 시작한 건 약 20년 전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PC방의 등장과 미국 게임사 블리자드가 개발한 스타크래프트의 국내 유통이 맞물리면서부터다. 그전까지만 해도 게임은 집에서 혼자 즐기는 콘텐츠에 불과했는데 스타크래프트가 배틀 넷(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이용자와 대전할 수 있는 공간) 환경을 지원하면서 대규모 이용자를 유인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경기 요소를 접목해 e스포츠 장르를 탄생시켰다. 여타 스포츠 종목과 마찬가지로 중계방송을 도입한 점도 주효했다. 1999년 케이블 채널 투니버스가 최초로 스타크래프트를 대회 포맷으로 한 ‘KPGL배 하이텔 게임넷 리그’를 중계했고, 이는 e스포츠 방송의 시발점이 됐다. 한국을 ‘e스포츠 종주국’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인프라 측면에서도 탄탄한 위상을 자랑한다. IT 강국답게 선진화된 네트워크 기술이 게임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평가다. 상암동 OGN e스타디움이나 강남 넥슨 아레나 등 전용 경기장을 찾는 수많은 외국인이 이를 증명한다. 지난 3월 스웨덴e스포츠연맹 회장 알렉산더 할베리는 넥슨 아레나를 둘러본 뒤 “스웨덴에도 이 같은 시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한편 e스포츠 종목은 스타크래프트를 필두로 다양해지고 있다. 동계올림픽 슬라이딩 종목을 봅슬레이, 스켈레톤, 루지 등 세부 종목으로 분류하듯 e스포츠 종목도 세분화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e스포츠협회가 종목 선정 기관이다. 협회는 저변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정식종목, 그렇지 않은 시범종목으로 분류한다. 정식종목은 다시 전문 종목과 일반 종목으로 나뉘는데 전문 종목은 직업선수가 활동하는 대회로 리그 구조를 구축할 수 있는 종목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LOL)와 FIFA 온라인 3가 여기에 속한다.
e스포츠는 국내외적으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17년 e스포츠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e스포츠 시장 규모(2017년 기준)는 전년 대비 41.3% 늘어난 6억 9600만 달러(약 8000억 원)다. 국내 시장은 2016년 기준 약 830억 원. 2015년과 비교하면 14.9% 증가했다. 컴퓨터 보급 이전에도 게임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일상에 무선네트워크 서비스가 깊숙이 스며들면서 시간·공간의 한계가 사라진 덕분이다.
특히 과거에는 국가마다 인기 있는 종목이 달라 e스포츠의 글로벌 성장이 어려웠던 반면 이제는 공통적으로 인기를 끌고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종목이 많아져 성장성이 더욱 커졌다. 김철학 한국e스포츠협회 사무총장 대행은 “세계적으로 대규모 투자가 단행되고 새로운 종목들이 나오며, 국가 간 교류도 활발해지고 있다”며 “e스포츠는 지난 20년간 성장 속도보다 향후 5년간 성장 속도가 훨씬 빠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e스포츠가 야구나 축구처럼 생활스포츠이자 주류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e스포츠 종주국에서 나아가 주도국인 셈이다. 다만 PC방이 지닌 부정적 이미지 개선이 이뤄졌을 때 이야기다. 이를 위해 협회는 2015년부터 ‘공인 e스포츠 PC클럽’이라는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 사업은 전국 각지의 PC방 가운데 모범적인 시설과 e스포츠 운영 노하우를 갖춘 곳을 선별해 e스포츠 경기장 운영을 허가해준다.
이근하│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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