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은 왕’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인의 의식에는 집에 온 손님이든 매장에 온 손님이든 극진히 대접해야 한다는 것이 뿌리 깊이 박혀 있다. 그래선지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이 손님에게 당하는 갑질은 상식을 벗어난 경우가 많다. 최근 갑질을 하는 고객의 방문을 정중히 거절하는 ‘공정 서비스 권리 안내’를 매장에 붙여 화제가 된 스노우폭스코리아의 백현주 대표를 만나 공정 서비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겨울, 스노우폭스코리아가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스노우폭스의 전 지점에 붙인 공정 서비스 권리 안내 때문이다. 미국 휴스턴에 본사를 둔 스노우폭스는 스시바로 시작해 현재 미국 19개 주와 호주, 한국, 유럽 등에 계열사가 있는 도시락 프랜차이즈 기업. “우리 직원이 고객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다면 직원을 내보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직원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시면 고객을 내보내겠습니다”라고 적힌 안내문은 고객을 왕으로 대접하는 우리나라 서비스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스노우폭스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고객의 갑질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 스노우폭스코리아 백현주 대표와 직원들. 백 대표는 고객이 왕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기업이 나서서 직원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C영상미디어

갑질 고객 방문 거절하는 공정 서비스 권리 안내로 화제

“스노우폭스는 미국에서 시작된 회사예요. 사업 영역을 확장하면서 한국에 매장을 열게 됐는데 처음에 고객의 갑질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미국에서는 매장 직원에게 갑질을 하는 고객이 없어요.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경찰을 불러서 해결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이런 문제의 해결점이 전혀 없더라고요.”

백현주(46) 스노우폭스코리아 대표이사가 들려주는 갑질은 흔히 말하는 상식선에서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매장 앞에 주차해놨으니 견인되지 않도록 지키고 있으라는 사람, 폐기하는 음식물을 훔쳐가는 사람, 동의 없이 직원을 몰래 촬영하는 사람, 물병이 사용하기 불편하다며 물병을 편한 것으로 바꾸면 사진을 찍어서 보내달라는 사람 등 다양한 일화가 있다. 직원 대부분은 이런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별달리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속앓이를 했다. 백 대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로 마음먹고 ‘공정 서비스 권리 안내’를 매장에 붙였다.

“사실 매장 문을 처음 열 때부터 붙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분들이 한국에 맞지 않는 정서라고 백이면 백 다 말리더라고요. 반대한 분들은 반발하는 고객이 많을 거라고 걱정한 거죠. 그때 그 말을 듣지 말고 진작부터 안내문을 붙였더라면 직원들이 좀 더 편하게 일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스노우폭스 매장에 공정 서비스 권리 안내를 붙인 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직원들은 회사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이 회사는 내가 불합리한 일을 당했을 때 지켜줄 수 있는 곳’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일하다 보니 애사심을 갖는 직원이 늘었다. 직원이 불합리한 요구를 하는 고객을 ‘거절’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였다.

기업이 직원을 보호하는 울타리 역할해야

스노우폭스를 찾는 고객의 태도도 달라졌다. 매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직원을 조심스럽게 대하게 됐다. 쉬쉬하던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니 오히려 손님이 갑질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 것. ‘손님은 왕’이라는 한국식 관념에서 벗어나 직원을 보호하는 스노우폭스를 오히려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늘었다. 직원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안내문이 스노우폭스를 대중에 알리는 훌륭한 마케팅 수단이 된 셈이다.

스노우폭스의 공정 서비스 권리 안내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사람도 많다. 한국에는 맞지 않는 정서라며 안내문 붙이는 것을 말렸던 지인들 역시 그 후의 변화를 궁금해했다. 스노우폭스의 긍정적인 변화를 보고 그들도 매장에 공정 서비스 권리 안내를 붙이기 시작했다.
 
백 대표는 기업의 인식이 변해야 한국의 서비스 문화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경영자는 서비스에 대해 부당한 컴플레인이 발생했을 때 직원을 보호하기는커녕 직원 뒤에 숨어버리곤 한다. 직원은 고객에게 한 번, 회사로부터 또 한 번 상처를 받는 셈이다. 고객이라는 이유만으로 무례한 행동을 그냥 참고 넘긴다면 기업과 동등한 파트너로서 일하고 있는 직원이 입은 상처를 치유할 길이 없다. 이는 한국 기업에 만연한 고객 우선주의에 따른 문제다.

“스노우폭스도 마찬가지지만 한국의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20대 초·중반이죠. 이 어린 친구들이 갑질을 당했을 때 받는 상처가 얼마나 크겠어요. 기업에서 이들을 보호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해요. 직원에게 부당한 대우를 막을 수 있는 방패를 쥐어주거나 기업이 나서서 부당한 컴플레인에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백 대표는 시민 의식도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일부 사람들의 머리에 박힌 ‘돈을 냈으니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겠다’는 식의 태도가 바뀌어야 해요. 돈을 낸 사람만 존중받아야 한다는 문화 자체가 갑질 문화를 양상하고 있어요. 돈을 내면 정당하게 물품을 가져갈 수 있을 뿐이지 직원을 하대하는 권리를 사는 건 아니란 얘기죠.  ‘고객이 돈을 지불하면 저희는 물품과 올바른 서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 이게 스노우폭스가 생각하는 고객 서비스입니다.”

장가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