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군
재빠른 속도로 하강하는 전투기가 뿜어내는 굉음에 절로 물러서게 된다. 한눈에 봐도 느껴지는 엄청난 무게감에 압도되기까지 한다. 전투기에서 내리는 사람을 보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인다. 남성 조종사가 내릴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결연한 눈빛에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여성 조종사다. 올해 초 우리 공군 역사상 최초로 여성 비행대장에 이름을 올린 세 명 중 하정미 소령이다. 공군 전투비행대장은 전투비행대대의 모든 작전 임무와 훈련을 감독하고 후배 조종사의 교육을 계획한다.
1998년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한 하 소령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입학 계기와 처음으로 전투기를 조종했던 순간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한창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 ‘공군사관학교 여생도 선발’이 이슈였어요. 그때도 지금처럼 하고 싶은 것이 많았어요. 기질적으로 두려움이 없는 편이거든요. 일반 대학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커리큘럼에 마음이 움직였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데 매료됐던 것 같아요. 전투기 첫 조작은 크게 어렵진 않았어요. 하지만 공부하고 연구한 것으로 모든 게 가능한 건 아니더라고요.”
하 소령은 2006년 보라매 공중사격대회에서 저고도 사격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이후 기종 전환에도 도전해 2007년 주력 전투기인 KF-16의 첫 여성 조종사로 거듭났다. KF-16은 하 소령이 전투기 조종사로서의 꿈을 갖게 해준 기종인 만큼 그의 도전은 주저함이 없었다.
도전을 망설이지 않는 성격 때문일까. 하 소령은 자신이 비행대장으로 임명된 데 대해 “그것은 단순히 다른 남성 동료들만큼 비행하고 업무할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은, 또 한 번의 관문 통과를 의미한다”면서 “‘최초 여생도’, ‘최초 여성 전투 조종사’ 등 선배들의 발자취가 역사 그 자체”라고 말했다. 여군 조종사들의 기록이 과거에 그치지 않고 향후 전투비행대대의 지휘관을 할 수 있고 더 나아갈 길이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현재진행형을 만들었다는 데 의미를 뒀다.
내 도전이 후배에게 길잡이 됐으면
첫 여성 전투 조종사가 등장한 때는 2002년이다. 당시만 해도 여성 조종사에 대한 검증이 완료되기 전이라 고성능 항공기, 대형 항공기 운용대대에 배치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분명 달라졌다. 여성 조종사들이 역량을 온전히 발휘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고.
“사회적으로 성 역할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여성의 활동 영역이 전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어요. 더불어 여성 관련 기사에 늘 따라붙던 ‘최초로’, ‘유일하게’라는 수식어가 이제는 ‘최고의’, ‘탁월한’으로 대체되고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봐요.”
하 소령은 이미 자신의 영역에서 선두 주자에 올라섰지만 도전 의식은 더욱 강해졌다. 현재 위치에서 열심히 하면 또 다른 한계를 넘어설 것이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후배들에게 보다 쉬운 길을 열어주고 싶다.
“발굴하고 개척하려는 시도 자체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에요. 도전하는 그 모습만으로도 멋있지 않나요? 항상 꽃길만 걸을 순 없지만 하얀 눈밭을 뒤따르는 누군가에게 길잡이 역할을 하는 발자국을 찍는다는 것도 소중한 시도죠.”
이근하 | 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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