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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버영화관람을 찾아 영화를 관람하는 어르신 ⓒ김은주
대한민국에서 어르신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 어디일까요. 바로 서울 한가운데 있는, 가장 번화한 곳 중 하나인 종로입니다. 서울 종로의 첫인상은 슬펐습니다. 넘치는 시간을 어찌하지 못해 남이 두는 바둑판 훈수를 드는 것으로 소일거리를 삼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곳, 마치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 듯 노인들이 모여드는 그곳 역시 종로가 보여주는 하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종로로 모여든 어르신들의 노후는 힘든 시절을 살아온 삶에 대한 위안이나 보상을 주지 않았습니다. 빈곤과 고독, 병고, 무위고(無爲苦)가 고령사회의 주축을 이루는 우리 어르신들의 실상이었지요.
말뿐인 감사와 인사로는 더는 그들의 삶에 위안이 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은 어르신들을 위해, 이곳에서만큼은 그들이 오롯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바로 그 종로 한복판에서 ‘이것이 나의 미래다’라는 생각으로 어르신들을 위한 전용 극장이 싹을 틔웠습니다. 어르신들을 위한, 하지만 모든 세대를 위한 ‘실버영화관’은 그렇게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2009년 1월 실버영화관이 개관해 그해 6만 5000명에 이르는 어르신 관객이 이곳을 찾았습니다. 같은 해 11월에는 실버영화관이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문화’이자 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아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누적 관객 190만 명을 돌파하기까지 이곳을 찾은 어르신들 중 영화를 공짜로 보겠다는 분은 단 한 분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 손을 꼭 잡고 “이 극장이 계속 유지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함께 걱정을 해주고 있습니다.
개관 초기에는 어르신들이 나서 청와대와 서울시에 실버영화관 지원을 위한 탄원이 이어지기도 했고, 극장 운영에 보태라며 자신의 통장이며 땅문서까지 내민 어르신도 있었습니다. 물론 감사한 마음만 받고 모두 정중히 거절했지만, 그럴 때마다 어르신들이 당신들만의 문화와 문화공간에 얼마나 목말라 했는지 새롭게 깨닫곤 했습니다.
최근 ‘치매국가책임제’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추억을파는극장 역시 이에 맞춰 또 다른 한 발을 내딛었습니다. 지난 10년은 어르신들의 눈높이에 맞는 추억의 영화와 공연으로 오랜 친구 같은 극장으로서 우리 사회 고령화 문제의 한 해법을 제시했다면, 앞으로의 10년은 ‘떼창’과 ‘떼춤’ 등 어르신의 인지능력과 일상생활 동작능력을 강화할 수 있는 치매 예방 프로그램을 내놓을 생각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어르신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치매 친화적 환경 조성에 힘을 다해보려고 합니다.
지금 꺼내든 이 사진 한 장은 실버영화관을 있게 한 힘입니다. 사진 속 어르신들의 잔잔한 얼굴은 제가 지금까지 실버영화관을 이어올 수 있게 한 소중한 이유가 돼주었습니다. 우리 어르신들의 마음을 읽게 해준 이 한 장의 사진은 어쩌면 우리 사회 ‘어르신 문화’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김은주│(주)추억을파는극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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