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자란다. 자란다는 말에는 키가 큰다든지 몸무게가 느는 것 같은 신체적인 성장도 있지만 정서적인 성장도 포함된다. 정서적인 성장을 제대로 하려면 아이와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궁금한 것은 함께 답을 찾아가고, 놀이를 하고 싶으면 함께 놀아줘야 아이의 세계가 넓어진다. 이런 과정은 맞벌이가 대부분인 요즘 부모들에게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아이는 시간을 가리지 않고 성장하지만 부모들은 낮 시간, 어쩌면 저녁 시간까지 아이와 함께 있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내내 손에 들고 살거나 학원 뺑뺑이를 돈다. 부모가 원해서가 아니다. 그것 외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어서다.
‘자란다’를 만든 장서정 대표는 10여 년 이상 회사를 다닌 워킹맘이었다. 두 아들을 친정어머니와 가사도우미에게 맡기고 꾸준히 일했다. 하지만 아이가 다섯 살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세상이 궁금해지고 하고 싶은 게 많은 나이. 아이는 점점 엄마의 손이 필요해지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색칠공부를 찾아서 하고 싶을 때, 궁금한 것이 생길 때 외할머니와 가사도우미는 잘 모르기 때문에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려”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부분이 채워지지 않다 보니 장 대표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라서 드는 죄책감이었다. 대안을 찾다 보니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돌본 경력이 있는 중년 여성을 구한다는 구인광고를 냈다. 그 광고를 보고 두 명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 명은 유치원 원감 경력이 있는 50대 중년 여성이고, 한 명은 20대 여자 대학생이었다.
대학생 선생님 카테고리별 분류해 맞춤 추천
장 대표는 그때만 해도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잘 캐치해낼 거라는 생각에 대학생은 그냥 돌려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 대학생은 동생 일곱 명을 돌본 경험이 있어서 누구보다 더 잘할 자신이 있다며 호언장담했다. 반신반의했지만 결국 두 사람을 모두 불러서 아이와 놀게끔 했다. 결과는 대학생의 ‘완승’이었다. 아이는 처음 본 대학생의 무릎에 안겨 놀잇감을 가져다주고 나중에는 자기의 보물창고를 공개하면서 친밀감을 드러냈다. 아이들의 첫 선생님은 1년간 일주일에 두 번 아이들과 정을 나눴다. 그때의 경험이 장 대표가 대학생 선생님과 함께 돌봄서비스를 해보자고 마음먹은 계기가 됐다.
“그때 아이들을 봐줬던 대학생 선생님이 했던 것처럼 아이가 가진 상호작용 욕구를 충족시켜줄 만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런 서비스를 하는 곳은 없더라고요. 아이가 만 3세가 되면 학령기에 접어들어서 문자와 사회적 개념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아져요. 베이비시터와 다르게 가정 안에서 이뤄져야 할 최소한의 지적 욕구와 인성, 호기심을 해결해줄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자란다’를 시작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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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란다에서 만난 자란다 선생님과 아이들 ⓒ자란다
자란다는 놀이와 방문학습을 한데 묶은 돌봄서비스를 제공한다. 단순한 돌봄과 다르게 책 읽기, 체육활동, 영어공부까지 사용자가 원하는 교육 콘텐츠에 맞춰 선생님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용금액은 시간당 1만 3000원이다. 현재 자란다를 이용하는 부모 회원 수는 4000명에 달하고, 지난 분기 매출은 1억 원 정도다. 설립한 지 불과 1년 조금 넘는 기간이지만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돌봄서비스’라는 개념을 이해시키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장 대표가 투자자를 만나러 가면 대부분이 상체를 뒤로 젖힌 채 관심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자란다에 대해 설명하고 나면 돌아오는 대답은 더 힘이 빠졌다. “아이를 태권도학원에 보내면 되잖아요”, “옆집 엄마한테 맡기지”, 심지어 “엄마가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랑 붙어 있으면 되겠네” 하는 식의 답변을 듣는 게 일상이었다. 투자자나 지원 프로그램 심사위원이 대부분 50대 남성이다 보니 자란다 서비스의 필요성을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아무도 장 대표의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을 때 만난 것이 사회적기업인 액셀러레이팅 전문기업 ‘소풍’이었다. 소풍에서 함께 문제를 해결하면서 자란다를 사업화할 수 있었다. 이후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아 글로벌기업 구글이 창업가를 지원하는 프로젝트에 선정돼 서울 강남구에 있는 ‘구글캠퍼스 서울’에 입주했다. 지난 4월에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가 개최한 스타트업 데모데이 행사인 ‘디데이’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자란다는 현재 장 대표를 포함해 총 여덟 명이 함께하고 있다. 고객 응대 담당자, 아이와 부모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선생님 추천 업무 담당자, 플랫폼 기획자, 선생님 응대 담당자, 시스템 개발자, 아이와 선생님의 상호작용 가이드를 만드는 개발자 등 저마다 업무를 분담하고 있다. 하지만 자란다에서 가장 중요한 구성원은 ‘자란다 선생님’이다.
장 대표 스스로 부모였기 때문에 자란다가 부모의 욕구를 충족시킬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반대로 대학생들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처음 뽑았던 직원은 장 대표 아이들의 한글선생님이었다. 서울교육대학교에 재학 중인 선생님에게 자란다를 함께 해보자고 제안했더니 좋은 후배들을 소개해줬다. 아이 한글선생님을 중심으로 시작한 20명의 선생님과 ‘자란다 선생님’은 5월 현재 1900여 명이 등록한 상태다.
장 대표는 자란다 선생님이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라는 책임감을 갖고 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자란다 선생님으로 새로 등록을 하면 수수료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일당으로 받는다. 활동한 기간이 길어지면 수수료는 점차 낮아진다. 또 원한다면 활동증명서를 주기 때문에 취업 활동에도 도움이 된다. 대학생 입장에서는 자란다 선생님으로 일하면서 돈도 벌고 취업에 필요한 경력도 쌓는 셈이다.
내년 초부터 전국으로 서비스 확장
부모가 원하는 선생님을 추천하는 방식을 쓰다 보니 선생님을 분류하는 기준이 필요했다. 자란다는 선생님을 뽑을 때 우선적으로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기질검사를 한다.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최소한의 스크리닝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적극적으로 제안할 수 있는지, 약속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등 기준이 되는 항목 검사 결과와 인터뷰 결과, 요청 응답률, 취소율 등을 종합적으로 합산해 16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한다. 그런 다음 부모 회원에게 요청이 들어오면 부모의 요구나 아이의 성향과 맞는 선생님을 찾아 추천하는 방식이다.
자란다 회원은 대부분 학습을 위해 선생님을 요청한다기보다 좀 더 정서적인 면에 치중해 있다. “영어숙제를 한 시간 봐준 다음 한 시간은 아이가 원하는 대로 놀아주세요”, “한 시간은 미술놀이를 하고 한 시간은 함께 자전거를 타주세요” 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주로 6~9세 아이를 둔 부모의 요청이 많다. 처음에는 아이 연령대가 다양했다. 막상 서비스를 시작해보니 3~5세 아이들은 보육이 더 필요한 나이라 자란다의 서비스를 이용하기에는 좀 이른 감이 있었다. 반면 6~9세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배우고 놀이를 하는 것 모두 만족하고 있다. 다행히 반응도 좋은 편이다. 부모의 반응도 좋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초등학교 1학년인데 반말하는 습관이 있는 아이였어요. ‘물’ 이러면 보통 어른들이 ‘물 주세요라고 해야지’ 하면서 아이의 말을 바로잡으려고 하잖아요. 그렇게 하는 것보다 아이가 한 말을 ‘물 주세요’처럼 다시 존댓말로 바로잡는 게 더 효과적이에요. 이런 방법을 저희가 연구하고 자란다 선생님이 현장에서 활용하는 식이죠. 그 아이는 다행히 반말하는 습관을 고치고 지금은 존댓말을 잘 쓰고 있어요. 이렇게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순간이 가장 보람 있어요.”
자란다는 2017년 초부터 지금까지 쌓아온 데이터를 기반으로 내년 초에는 서비스를 전국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자란다는 아직 본격적으로 마케팅을 시작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서울에서만 운영하고 있어서 배타 서비스 중이라고 봐요. 지금까지 자란다를 운영하면서 노하우를 쌓고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간이었다면 앞으로는 그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란다가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시간이 될 거예요. 자란다는 초등 돌봄 절벽이 화두인 요즘 부모들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예요. 저도 자란다 덕분에 일을 하는걸요. 저처럼 일과 아이 사이에서 갈등하는 부모가 많을 거예요. 그들의 문제에 자란다가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장가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