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네 잎 클로버가 행운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나폴레옹이 전쟁터에서 네 잎 클로버를 따기 위해 몸을 숙인 덕분에 그 위로 날아든 총알을 피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네 잎 클로버의 상징 때문이다. ‘찾을 수 있는 확률이 낮은 풀’이라는 점도 네 잎 클로버를 향한 사람들의 믿음에 힘을 더했다. 수많은 세 잎 클로버 사이를 휘젓던 중 어쩌다 한 번 마주한 네 잎 클로버에 격한 반가움이 몰려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본래 클로버의 원산지는 유럽이지만 1950년대 국내에서 목초로 심던 것이 전국에 번져 귀화 식물(외국에서 들어와 토착화된 식물)이 됐다. 잎을 뜯어내도 일주일 뒤면 다시 수확할 수 있을 정도로 번식력이 강하다. 씨앗 하나만 발아해도 밭을 모두 덮을 수 있어 피복식물이라고도 불린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네 잎 형태는 일종의 돌연변이로 세 잎 클로버가 대다수다. 굳이 확률로 따지자면 네 잎 클로버는 세 잎 클로버 만 장당 한 장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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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영상미디어
그런데 올해 초 네 잎 클로버를 찾았다는 사람들이 꽤나 많아졌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중심으로 네 잎 클로버를 인증한 사례만 해도 상당하다. ‘이 추운 겨울에 어떤 풀밭을 헤맨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 무렵, 그 진원지가 커피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가 판매하는 ‘오트 그린티 라떼’의 토핑으로 올려진 네 잎 클로버였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보니 진짜 근원지는 충북 청주에 위치한 농장 안. 혹독한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네 잎 클로버들이 빠끔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운이 좋아야 겨우 찾을 수 있다는 네 잎 클로버이지만 이곳에서만큼은 한가득이다. 10년 가까운 시간을 네 잎 클로버 기르기에 써온 농부 홍인헌 씨의 결과물이다. 작은 발상으로 시작된 그의 노력은 어느덧 매일 2만 장의 네 잎 클로버를 피워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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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잎 클로버가 올라간 커피 음료의 모습 ⓒ스타벅스커피코리아
“1983㎡(600평) 규모의 클로버 밭에서 매일 2만 장의 네 잎 클로버를 수확하고 있습니다. 넝쿨같이 자라나는 클로버 사이에서 네 잎 형태를 찾아 그것을 삽목(가지, 줄기 따위를 자르거나 꺾어 흙 속에 꽂아 뿌리 내리게 하는 방식)해요. 거기서 자라난 새순을 또 삽목하고 채집한 씨앗을 뿌리고 교배하다 보면 네 잎 클로버를 얻게 됩니다. 그 과정을 10년 가까이 반복하다 보니 지금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습니다. 대량으로 그리고 식용으로 네 잎 클로버를 기르는 사람은 제가 유일합니다.”
입소문 탄 장식용 클로버, 기대 이상 성과
‘클로버 농부’로 알려진 그이지만 앞서 20년 넘게 화훼 농장을 운영해온 화훼 전문가다. 혹자는 홍 씨의 네 잎 클로버가 큰 인기를 끌게 된 배경에 대해 유명 프랜차이즈의 식재료로 쓰였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의 숨은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결과다.
원예학을 전공한 홍 씨는 꽃 농사를 목표로 1988년 상경했다. 예상보다 부족한 자금 탓에 뜻하지 않았던 수출 전문 중소기업에 입사하게 됐다. 스웨터를 수출하는 회사였는데 그곳에서 바이어 역할을 맡았다. 주문부터 수출까지 모든 절차의 하자를 막기 위해 수면 시간을 제외하고 일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10년이 흘러서야 화훼 산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홍 씨는 돌이켜보면 당시 경험이 지금의 자신을 존재하게 했다고 이야기했다. 눈앞의 이익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멀리 내다보며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은 그때 길러졌기 때문이다.
홍 씨가 화훼 산업에 뛰어들면서 선택한 것은 장미 재배였다. 경북 구미에서 형을 따라 재배와 유통을 도왔다. 시기적으로 운이 나빴던 탓이었을까. 외환위기와 맞물리면서 속된 표현으로 쫄딱 망했다. 포기하는 대신 꽃 배달 업체와 손을 잡고 무던히 부딪쳤다. 결과적으로 대형 마트에 화훼를 납품하는 데 성공했다. 과거에 비하면 충분히 안정적인 정착이었지만 안주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더 나은 수익 가치를 낼 수 있는 틈새시장을 파고들어야 했고 그 고민의 끝이 네 잎 클로버였다.
“네 잎 클로버를 재배한 계기는 솔직히 표현하면 ‘돈이 될 것 같아서’였죠. 무수한 클로버 중에서도 누구나 좋아하는 네 잎 클로버만 자랄 수 있도록 종자를 개량하는 게 어렵잖아요. 셀 수 없을 만큼 실험하고 시도하고 나서야 식용 네 잎 클로버를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생일 케이크 위에 네 잎 클로버 올렸으면
2012년 각고의 노력 끝에 탄생한 네 잎 클로버는 사업 초기만 해도 일반 화훼처럼 판매됐다. 화분형 네 잎 클로버 100만 개를 준비했는데 판매량은 5만 개에 불과했다. 다듬을 틈도 없이 빠르게 뻗어 자라는 탓에 남은 물량은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을 전환해 식용 식물로서 네 잎 클로버의 가치를 살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식용이 가능하다’는 인증을 획득하자마자 영업에 나섰다. 네 잎 클로버로 장식한 다양한 요리 사진을 담은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고 발로 뛰며 홍보했다. 서울 여의도 63빌딩 내 고급 식당을 대상으로 ‘요리에 네 잎 클로버를 장식으로 올려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생각보다 냉담했다. 데코레이션으로 익숙한 허브 잎이나 건강한 이미지의 삼도 아닌데 소비자의 눈길을 끌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대다수였다. 홍 씨는 제안을 바꿨다. “무료로 네 잎 클로버를 공급하겠습니다. 손님들의 반응을 확인하고 결정하세요.” 무료 제공된 네 잎 클로버 3000장이 부족할 정도로 소비자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렇게 식용 네 잎 클로버 장식이 입소문을 타고 퍼지기 시작했다. 스타벅스 측에서 라떼용 토핑으로 네 잎 클로버를 채택하고 싶다고 먼저 연락이 왔다.
“당초 회사가 예상한 네 잎 클로버 토핑 음료 판매량은 일주일 기준 9만~10만 잔이었어요. 그런데 이제 하루 기준 5만 장의 네 잎 클로버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기대 이상의 성과였지요. 하지만 현재 제가 공급할 수 있는 물량은 하루 최대 2만 장입니다. 수요를 맞추기 위해 농장 증설을 계획하고 있어요.”
홍 씨가 농장 확충을 계획하는 이유는 더 있다. 내년에는 네 잎 클로버를 들고 해외 시장에도 진출할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해외 바이어가 네 잎 클로버를 봤을 때 ‘아 저건 그냥 뜯어 먹어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대화된 시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처음 식용 클로버 개발을 다짐했을 때 궁극적인 목표는 ‘전 세계 생일 케이크 위에 내 네 잎 클로버를 하나씩 올리는 것’이었다. 해외 진출은 그 목표를 위한 과정이다.
“이미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대박 났다’, ‘성공해서 좋겠다’고 이야기하지만 저는 기쁘지만은 않아요. 그동안은 준비 과정이었고 진짜 시작은 이제부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더 많은 수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기술 측면에서 보완해야 할 점이 많아서 걱정이에요.”
홍 씨에 따르면 클로버 재배를 위해 특별한 환경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클로버 잎은 비닐같이 얇은 덕에 숨구멍이 없어 추위에 강하다. 다른 풀은 돋아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날씨에도 가장 먼저 자라는 풀이다. 밀폐시킨 잎을 냉장보관하면 달나라까지 가져갈 수 있을 만큼 생명력이 강하다. 다만 빛에 민감하기 때문에 해가 지면 스스로 잎사귀를 접고 해가 떠야 잎사귀를 편다. 그가 자신의 네 잎 클로버를 지구 반대편 나라에 수출했을 때 생리적인 주기 현상을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는 이유다. 그는 네 잎 클로버 재배와 동시에 일자리 창출 측면도 고민하고 있다.
“많은 판로를 확보하고 안정화가 되면 프리저브드 플라워(말린 꽃) 형태의 네 잎 클로버도 생산하려 합니다. 그렇게 되면 화훼를 전공한 학생이나 장애인들도 작품을 만들 수 있어요. 존폐 기로에 놓인 대학 화훼과들도 꽤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전공 이후 일자리를 찾지 못한 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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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 씨는 식용 네 잎 클로버를 다양한 음식에 활용할 계획이다. ⓒ홍인헌
무엇보다 홍 씨는 네 잎 클로버의 인기에 대해 냉정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이 호응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요? 안주해서는 안 돼요.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그에게 네 잎 클로버의 가치를 물었다.
“네 잎 클로버를 보면 누구나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행운이 찾아들 것만 같아서요. 웃음도 나고요. 누군가 제 네 잎 클로버를 보고 행복할 수 있다는 자체가 제겐 큰 가치입니다.”
이근하│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