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당신이 마신 커피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여유, 일상, 즐거움, 단순 카페인?
사회적기업 ‘카페 오아시아’ 루나 제너린이 건네는 커피에는 그 이상이 담겨 있다.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와 두 아이를 기르고 있는 싱글맘 바리스타 루나 제너린. 이제 꿈이 생겼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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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영상미디어
쓴맛, 단맛, 커피 한 잔엔 인생이 담겼다고 한다. 필리핀에서 온 루나 제너린(34)이 전하는 커피에는 깊은 희망의 맛까지 더해져 있다. 한국에서 보란 듯이 성공하고 싶은 갈증, 다른 다문화가정에 전하고 싶은 희망과 포기하지 않길 바라는 응원의 마음 등. ‘카페 오아시아’는 그들의 꿈을 해갈하는 도시의 오아시스다.
12년 전, 처음 밟은 한국 땅은 낯설었다. 의지할 사람 하나 없었다. 그래도 두 아이를 낳고 하루하루 농사를 지으며 세월은 무던히도 흘렀다.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그 어떤 시름도 잊혔다. 한국 생활에도 점차 적응해갔다. 소박한 가정을 이루는 꿈은 온전히 내 것 같았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제너린 부부에게 닥친 불화는 결국 7년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가져왔다.
‘필리핀으로 돌아가야 하나’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고민했다. 차디찬 현실의 바람은 지칠 대로 지친 그의 마음을 매섭게 흔들었다. 그때 아이들의 어린 눈망울을 보았다.
“한국은 아이들의 나라예요. 애들을 위해 계속 한국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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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평 남짓 규모인 ‘카페 오아시아’의 리스타 루나 제너린은 매장 관리, 재료 주문, 커피 제조와 판매 모두를 혼자 담당하고 있다. 그는 “커피가 잊고 있던 꿈을 되찾아주었다”며 다문화가정의 희망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 c영상미디어
커피 맛은 자신 있다
세 식구는 서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동안의 아픔은 다 잊기로 했다. 그때 유독 제너린의 눈에 들어온 것은 커피였다. 기계를 만지자 ‘이거다’ 싶었다. 커피는 아무 이유 없이 그를 매료시켰다. 아메리카노, 카페 라떼, 카라멜 마끼아또…. 커피를 배우는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은은한 커피 향, 우유 거품이 만들어내는 예술은 그동안 잊고 있던 꿈을 되찾아주었다. 서울이주여성디딤터에서 이같은 자립 교육을 받고 자활에 성공했다.
제너린은 다른 커피숍에서 1년간 일하며 실력을 쌓아갔다. 아울러 마케팅, 고객 만족(CS), 매장 관리 등 카페 운영을 위한 맞춤교육도 받았다. 가장 중요한 커피 맛도 자신 있었다. 어느새 그는 어엿한 바리스타로 성장해갔다.
성실한 제너린은 다른 이들 눈에도 띄었다. 카페 오아시아 이사장은 창업을 권했다. 이곳은 결혼이주여성, 장애인, 탈북민 등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 보통 바리스타 경력 3년은 돼야 창업 기회가 주어지는데, 경력 1년차인 제너린의 경우는 파격이었다. 하지만 기쁨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창업은 혼자 헤쳐가야 함을 뜻했고 큰 부담이었다. 그때 다시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제너린은 용기를 내기로 했다.
“우리 엄마 커피가 얼마나 맛있는지 알아?”
“안녕하세요.”
또렷한 목소리가 밝게 손님을 반긴다. 인사와 달리 낯선 사장님의 모습에 놀라던 손님들은 이내 기분 좋게 커피를 주문한다. 필리핀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도 한다. 제너린의 공간은 다문화 교류의 장으로 변했다. 개업한 지 8개월이 지난 지금, 단골도 제법 있다. 음료 수요가 많은 여름에는 하루 60~80잔 정도 판매하기도 했다. 직원 없이 혼자 매장을 다 관리하지만 어떤 메뉴든 척척 해낸다. 당연히 경제적 자립도 이뤘다.
카페를 통해 힘을 얻는 건 비단 제너린뿐만이 아니다. 두 아이의 자부심도 느껴졌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더욱 힘이 났다.
“아이들이 ‘우리 엄마 커피가 얼마나 맛있는지 알아?’ ‘우리 엄마 카페 사장님이야’라고 학교에서 자랑하나 봐요. 성공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다른 다문화가정 싱글맘들도 저를 보며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자신은 굉장한 행운을 가졌다고 말하는 제너린. 하지만 그의 행운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닌 듯하다. 아침에는 한국어를 공부하고, 그 외 시간은 온통 가게에 매진하느라 하루가 부족할 지경이다.
“대부분의 결혼이주여성은 꿈이 없어요. 그럼에도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열심히 하다 보면 다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여성가족부는 전국 다문화가정을 27만 8036 가구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에 온 많은 결혼이주여성은 언어, 외로움, 경제적 어려움, 자녀 양육·교육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여성가족부에 의하면 결혼이주여성의 생활환경이 점차 개선되고는 있지만 29.6%가 5년 내 가정의 해체를 경험하며, 우리나라 평균 고용률 60.3% 대비 63.9%의 높은 고용률에도 29%가 단순노무자로 종사해 국내 결혼이주여성이 가정과 사회 안팎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너린 또한 아픔을 딛고 일어섰다. 그 역시 꿈이 없었지만 바리스타가 되고 이전에는 생각도 못한 미래를 그리며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 노력을 알아봐주는 주변의 따뜻한 마음이 모여 점차 꿈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마음속 두려움도 세상을 향한 용기로 바뀌었다. 자신이 받은 사랑을 다른 다문화가정에도 나눠주고 싶다. 나눔을 베풀면 더 큰 즐거움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제너린은 오는 3월에 있을 한국어능력시험(TOPIK) 준비에 매진하고 있다. 한국어능력시험의 2년 유효기간이 만료되어 지난해 국적 심사에서 탈락했기 때문. 한국 국적을 얻으려면 일정한 체류 기간, 경제적 능력, 한국어 인증점수 등이 필요하다. 제너린은 반드시 한국 국적을 취득해 한국 사람으로 아이들과 한국에서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오늘도 밝은 미소를 잃지 않고 커피를 건네는 루나 제너린. 커피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일터 ‘카페 오아시아’에 세 식구의 꿈이 자란다. 다문화가정을 향한 희망의 오아시스는 마르지 않는다.
선수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