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정상사회라고 하면 기본에 충실하고 서로 믿을 수 있는 사회를 말합니다. 하지만 보통의 국민들 입장에서는 부당한 일 겪지 않고, 살 만하다 싶은 사회를 정상사회로 생각합니다.”
박길성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를 서울 안암캠퍼스에서 만났다.
박 교수는 11월 6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개최한 ‘국가혁신 간담회’에 참석했다. 시민사회, 언론, 종교, 학계 등 각계의 대표인사 16명이 참석한 이날 간담회는 정부가 추진 중인 국가혁신에 대해 사회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비정상의 정상화 2차 과제 150개가 소개되어 의견수렴이 이뤄졌다.
“그날 참석자들이 이런저런 의견을 내놓을 때마다 정홍원 총리께서 일일이 정부의 노력이나 본인 생각을 개진해 주셔서 매우 진지한 간담회였습니다.”
‘국가혁신 간담회’에서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요?
“세월호 사고는 우리 사회가 거친 성장의 사회에서 성숙사회로, 위험사회에서 안전사회로, 불신사회에서 신뢰사회로 가게 만드는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는 말부터 꺼냈습니다. 또한 이러한 국가적 대변화는 민간 참여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점, 특히 젊은 세대의 공감이 있어야 지속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기본이 바로 선 나라’를 선포하고 정상화 과제들을 추진해야 할 만큼 우리 사회의 기본이 무너진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제가 한 언론 기고문에 ‘돌진형 압축 근대화’란 표현을 썼는데, 과거 근대화 과정에서 안전보다는 모험을, 개인보다는 집단적 가치를 더 강조하고,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고, 내실보다는 외형에 치중했던 결과라고 봅니다. 그러다 보니 임기응변을 심사숙고보다 더 높은 가치로 평가했고, 단기간에 성과를 내려다보니 편법도 나오게 되고, 기본은 점점 더 흐트러지고, 이런 과정들이 50년가량 누적되어 온 것입니다.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원칙을 지키고 제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보편적인 가치조차도 지금까지 살아온 관성 때문에 뒤안길로 밀려나 있어요.”
오랜 관성이 붙은 비정상을 바로잡기 위해 정부에서 2차 과제 150개 추진 중입니다만.
“우리 사회에서 해결이 필요한 과제들을 포괄하고 있다고 봅니다. 지금의 성과를 논하기보다 앞으로 어떤 성과를 보일지를 고민해 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지금까지 역대 정권에서 공직개혁 등을 추진해 왔는데, 제도적으로 상당부분 진전이 있었음에도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성과가 크지 않았던 것은 정권이 바뀐 뒤에도 이어지는 지속성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떠한 일이 터졌을 때 급조하는 과제들이 아니라 좀 더 긴 안목으로, 그리고 아래로부터의 참여와 더불어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150개 과제들이 우리 사회에 다 필요하지만, 국민이 얼른 인식하기 쉽도록 방점도 두었으면 더 좋겠습니다.”
국가혁신을 위한 정상화 과제들을 좀 더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정부와 민간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부는 정상화를 통한 국가혁신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국가 어젠다라는 것을 결기 있는 모습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1960, 70년대 한국사회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했을 때 국가 지도자가 수출을 가장 중요한 어젠다로 이끌어냈듯이 선진국가를 만들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지도자가 직접 주재하고 관리하며 국가가 총력을 다해 보여주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 사회의 특징인 조급증·건망증을 극복하기 위해 시민교육도 많이 해야 합니다. 제도권 학교뿐 아니라 비정부기구(NGO), 주민자치단체 등도 참여해야 합니다. NGO들도 정책·경제 등의 이슈만 다루는 데에서 나아가 특히 사회적 신망을 받는 시민단체가 나서 시민교육의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자기들의 중요의제로 삼고 활동해야 한다고 봅니다.”
시민교육이 활발한 국가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요?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존경받는 지역이 북유럽입니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 세 나라의 공통점은 단 하나입니다.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가는 환경, 기후, 생태계 복원 등의 문제 해결에 드는 비용을 기꺼이 내겠다고 하는 국민의식입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가 기꺼이 책임지고 투자하고 만들어야 한다는 노력은 학교, 지역공동체의 교육과 토론을 거친 오랜 과정의 결과물입니다. 시민의식은 금방 바뀌는 것이 아니므로 긴 호흡으로 챙겨야합니다.”
국가혁신 작업이 성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가 있다면?
“국민의 공감대·협조를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에게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 국민들은 지도층이나 국가가 솔직하게 부탁하고 설득하고, 그래서 공감을 하게 되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겁니다. 그런 기대를 정부가 놓지 말아야 합니다.”
박 교수는 정상사회로 가기 위한 국가혁신은 “이념의 문제도 아니고 이권의 문제도 아니며 정파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고 강조했다.
“정상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국가혁신은 당장 우리가 처한 오늘의 문제이긴 하지만 미래를 위한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계층·지역·정파 간 갈등의 문제인데,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필요하다면 절충·타협·협의·조정, 이런 노력을 많이 해야 해요. 우리의 미래를 담보하는 가장 큰 시대적 과제, 정권적 과제라고 생각하면서 접근하면 분명히 국민들로부터 반응이 올 것입니다.”
가을빛이 완연한 캠퍼스에는 캠퍼스 투어에 나선 여고생들의 발길이 분주했다. 이들이 살아갈 사회는 흐트러진 기본이 바로 서는 정상사회·신뢰사회이기를 기대해 본다.
글·박경아 기자 2014.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