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육아 동행 플래너, 서울동부고용센터 육주완 주무관
기업 사무실에 공무원이 찾아오는 이유에 하나가 더 추가됐다. 육아 지원정책 컨설팅이다. 정부에서 “이렇게 좋은 육아 지원책이 있으니 쓰세요”하며 일일이 기업을 방문한다. 몰라서 정책을 못 썼던 사업주들의 참여가 늘어났고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저출생 극복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7월 2일 ‘일·육아 동행 플래너’ 서비스를 시작했다. 플래너는 일·가정 양립 활성화 지원이 필요한 기업을 직접 찾는다. 그리고 정부의 다양한 지원제도를 맞춤형으로 설계해준다.
현재 13개 고용센터에서 시범사업 중이다. 서울, 인천, 부산, 대구, 대전, 광주, 서울강남, 서울동부, 서울서부, 서울남부, 서울관악, 수원, 성남이다. 내년에는 전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플래너는 기업지원 업무 경험이 많은 직원으로 선발됐다. 효과적인 기업 분석·진단 및 일·육아 지원제도 컨설팅 방법에 대한 교육도 이수한 이들이다. 서울동부고용센터 육주완 주무관도 그중 한 명이다. 육 주무관은 “기업이 신청하면 수동적으로 지원금을 지급하는 게 아니라 공무원이 먼저 나서서 제도를 알려주니 기업들의 반응이 뜨겁다”면서 “근로환경을 개선시키고자 하는 기업이 많다는 건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서비스는 중소기업에 특화했다. 업종별로 다르지만 대략적으로 피보험자 100명 미만이면 중소기업이라고 본다. 육 주무관은 “직원이 단 세 명이라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서 “녹록지 않은 경영 환경 속에서도 근로자 만족도를 높이려는 사업장이 많다는 걸 느끼고 있다”고 했다.

기업 여건에 맞는 최적의 방법 찾아줘
무턱대고 기업을 찾아다니지는 않는다. 행정데이터를 활용한다. 고용보험 및 건강보험 이력 등을 바탕으로 일·육아 지원 제도를 모르거나 적용할 수 있는 기업을 추려낸다. 서울동부 권역 내에서만 약 2000개 기업이 목록에 올랐다. 이후 이들 기업에 우편, 메일, 팩스 등을 통해 서비스 내용을 알린다. 연락을 받은 기업이 QR코드를 통해 서비스를 신청하면 플래너가 방문해 기업 상황을 진단하고 필요한 지원사항을 파악한다.
그런 다음 진단 결과와 기업 수요에 맞는 맞춤형 지원방안을 제시한다. 예컨대 대체인력 채용을 원하는 기업은 ‘인재채움뱅크’와 연계해 채용을 알선하고 지원금 신청을 안내한다. 유연근무 도입을 희망하는 기업은 ‘일터혁신컨설팅’, ‘유연근무 종합 컨설팅’과 연계해 기업 여건에 맞는 최적의 도입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이 같은 지원을 위해 유관기관과 유기적인 협업체계를 구축하고 타 부처, 자치단체 등의 지원 사업도 함께 알려준다.
유연근무 및 일·육아 지원제도를 더 많은 중소기업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적극 홍보하는 역할도 한다. 단순히 알리는 게 아니다. 권역 내 산업단지 및 자치단체 또는 소상공인연합회 등과 연계한 ‘현장 맞춤형 홍보’를 실시한다. 고용부 관계자는 “지역·업종별 우수사례를 발굴해 이웃 기업이 쉽게 유연근무도 하고 육아휴직 등을 사용하는 것을 접함으로써 ‘우리 기업도 할 수 있다’는 인식도 확산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서울동부고용센터에서 약 2000개 기업 중 컨설팅을 완료한 사업장은 11월 기준 204개다. 이 중 컨설팅을 통해 실제로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사업장은 20군데 정도 된다. 육 주무관은 “플래너의 목적은 사업주에게 지원금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기업의 근로조건 개선”이라면서 “지원금을 받으려면 사업주가 근로조건을 개선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경직된 근무환경을 고수하던 사업장이 플래너의 컨설팅을 받고 지원정책을 도입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A사가 대표적 사례다. 임원진의 연령대가 높고 현장 업무가 많은 남성 직원 비율이 높아 조직 환경이 상당히 보수적이었다. 업종 및 조직 분위기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선택근무제가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타 기업의 사례와 함께 선택근무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안내했고 결국 전체 근로자를 대상으로 격주 금요일마다 오전 근무만 하도록 시스템을 바꾸게 됐다. 이 회사에서 컨설팅에 참여한 인사담당자는 제도 도입 후 임신 소식을 알려왔다. 가슴이 뭉클했다.”
기업 맞춤형 설계 능력 요구
육 주무관은 “보수적인 사업주들은 이러한 혜택을 두고 ‘손해를 감수하고 베푼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국가지원금으로 보상이 되며 도입 시 근로자의 만족도가 올라가고 자연히 생산성 또한 높아질 것이라고 여러 차례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필요시 두어 차례 찾기도 한다. A사의 경우 선택근무제 도입 결정 이후 다시 방문해 취업규칙 정비를 손봐줬다. 이 과정에서 노동법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면 노무사를 연결해주기도 한다. 이때도 기업 측의 부담금은 없다.
기업의 규모, 분위기, 니즈에 따른 맞춤형 설계 능력은 플래너에게 꼭 필요한 자질 중 하나다. 웬만한 복지체제가 다 마련된 기업의 경우 빈틈을 찾아 메워주기도 한다.
“B사의 경우 총 근로자 46명 중 80%가 청년층이었다. 결혼적령기 직원이 다수라 휴가 및 휴직에 따른 업무 공백에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근로자 요청 시 재택근무 및 시차 출퇴근을 허용하고 있었지만 규정이 미비한 상태였다. 휴일대체 부상휴가제 등을 포함한 취업규칙 정비와 함께 선택근무 도입을 컨설팅해 결국 13명의 직원이 선택근로제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C사는 3년 전까지는 기업지원금을 받다가 절차가 복잡하고 제도가 계속 바뀌어 한동안 신청하지 않았던 기업이다. 플래너가 고용평등상담지원관, 유연근무 종합컨설팅, 자치단체 등과 연계해 19명의 직원에게 출산육아기 고용안정장려금을 지원할 수 있었다.”
센터당 플래너는 보통 두 명이다. 전담 한 명에 병행 한 명. 전담 플래너는 말 그대로 해당 업무만 전담하며 병행 플래너는 원래 맡던 근무와 함께 이 일을 병행한다. 육 주무관은 병행 플래너로 기존 기업지원팀 업무를 함께 수행 중이다. 2020년 7월부터 서울동부고용센터에서 근무 중인 그는 “플래너 업무 시작 이후 웃을 일이 많아지니 일의 만족도가 올라갔다”고 했다.
물론 늘 웃을 일만 있는 건 아니다. 근로자 복지 향상 목적이 아닌 지원금만 받으려는 사업장도 있다. 육 주무관은 “경험이 쌓이다보니 면담을 조금만 해보면 사업장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면서 “그럴 때는 ‘허위신청은 금물이며 근로자의 복지를 우선에 둬야 한다’는 말을 꼭 해준다”고 했다.
기업의 반응이 폭발적인 데 반해 시범사업 중인 만큼 플래너 인원이 적다는 것도 어려운 점 중 하나다. 육 주무관은 “마음 같아서는 권역 내 사업장을 모두 찾아가 컨설팅해주고 싶지만 수요가 워낙 많다보니 예약제로 할 수밖에 없다”면서 “시범사업 종료 이후 개선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일·가정이 양립하기 위해서는 결국 ‘일’ 쪽에서 배려를 많이 해줘야 한다”면서 “직원들이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사업주분들의 적극적인 이용을 바란다”고 말했다.
박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