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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잔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겼나요?

잔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떤 이의 잔에는 넘치는 사랑이, 어떤 이의 잔에는 진한 우정이, 또 어떤 이의 잔에는 쓰디쓴 애환이 담긴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은 잔이 한자리에 모였다. 국립민속박물관 파주는 7월 23일부터 11월 1일까지 열린 수장고 16에서 ‘잔잔, 잔: 당신을 담아온 잔의 이야기’를 전시한다. 가장 원초적인 흙에서 출발해 금속과 유리, 새로운 소재와 기법으로 확장된 잔의 변화를 따라가며 그 안에 담긴 우리의 기억을 되짚는 전시다.
전시장에서는 토기로 정교하게 빚은 오늘날의 머그와 같은 잔, 유려한 빛을 자랑하는 청자 다완, 유기 잔, 옥수그릇, 종이컵, 막걸리 잔 등 민속자료 190여 점을 비롯해 현대 작가 13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천장까지 닿은 수장고 형태의 전시
8월 중순, 전시가 열리는 경기 파주시 국립민속박물관 파주를 찾았다. 입구에 들어서자 거대한 투명 수장고 여섯 곳이 시선을 압도한다.
박물관은 총 15개 수장고에 17만 7000점의 유물과 110만 점 이상의 아카이브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 동시에 전시 기법을 접목한 개방형 수장고로 기능한다. 일반에 공개된 수장고에는 관람객이 직접 들어가 볼 수도 있다.
수장고를 지나 전시관으로 들어서자 길을 따라 수많은 잔의 실루엣이 하얀 벽면에 비쳤다. 평일 오후라 관람객이 많지 않아 전시실은 고요했다.
전시품은 높게 솟은 수장고의 각 칸에 자리하고 있었다. 벽면을 따라 이어지다 중간중간 앞으로 돌출된 수장고의 형태가 공간에 리듬을 더했다. 다소 어둑한 조명은 전시품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잔으로 읽는 시대의 흐름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사연을 품은 잔들이다. 잔을 부딪칠 때마다 잔 굽에서 ‘딸랑’ 방울 소리가 나는 잔, 이제는 훌쩍 자란 아이의 첫 컵, 송별의 아쉬움을 담아 동료들이 만들어준 잔까지 사연도 제각각이다. 잔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됐다. 1부 ‘가장 오랜 바탕의 잔’은 잔의 시원인 흙에서 출발한다. 가야·신라 무덤에서 출토된 손잡이 달린 토기 잔부터 제작 기술이 정교해지면서 등장한 고려 비색 청자 다완, 조선 백자 잔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그중에서도 백자로 제작된 제기용 잔과 무덤에 함께 묻은 잔은 죽은 이에 대한 존경, 사후세계에서도 현세의 삶이 이어지길 바라는 염원을 담았지만 그 형태는 서로 달랐다.
고려 흑자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김시영의 ‘다완과 찻잔’, 은채 기법을 활용한 홍성일의 ‘은상회기법 잔’, 도자 표면에 가죽 질감을 구현한 이다솔의 ‘사선 가죽 텍스처 컵’에서는 흙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새로운 모습으로 변주되는지 엿볼 수 있다.

흙을 넘어 돌로, 유리로, 종이로
2부 ‘시대 너머 확장하는 잔’에서는 돌, 금속, 유리, 플라스틱 등으로 확장된 잔의 재질을 살펴본다. 맑은 물을 담아 신에게 바친 의례용 잔인 옥수그릇은 표면에 새겨진 무늬가 고상하고 아름답다. 잔에 물을 담는 행위 자체에 깃든 정성과 경건함이 형태와 무늬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은행과 백화점 등에서 많이 사용했던 회사 로고가 그려진 봉투 종이컵도 눈길을 끈다. 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찾았던 곳에서 잘 벌어지지 않는 납작한 종이컵에 물을 따라 마셨던 추억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 옆의 컵 모양 종이컵에는 1970년대 커피 자판기의 도입과 믹스커피 개발이 대중적인 음료 소비문화를 이끌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1950~1970년대 유리 식기의 대중화와 함께 유행했던 유리컵을 재해석한 현대 작가들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3D 프린팅 기술과 친환경 바이오플라스틱을 융합한 작품은 잔의 재료가 앞으로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상상하게 한다.

잔은 소통의 매개체
3부 ‘‘우리’ 사이의 잔’과 4부 ‘기억으로 채우는 잔’은 일상과 밀접해 보는 재미를 더했다.
3부는 잔이 소통의 매개체라는 점에 주목한다. 전통 혼례에서 쓰인 합환주 잔은 하나의 표주박을 쪼개 만든 것으로 인연을 의미하는 ‘붉은 실’로 이어져 있다. 각 가정의 어머니들이 아끼고 아끼다 손님이 올 때만 꺼냈던 커피잔 세트, 고된 노동 후 땀을 식히며 사발로 나눠 마셨던 막걸리 잔도 만날 수 있다. 각종 주류·음료 회사의 로고가 새겨진 잔 역시 한 시대의 음료문화와 그때의 추억을 재생하고 있었다.
4부에서는 잔에 담긴 지나간 시간을 돌아본다. 스승의 날과 근속 등을 기념해 제작한 잔부터 온 국민이 환호했던 2002년 월드컵 잔까지 다양한 기념의 순간이 펼쳐진다. 특히 회갑을 맞아 제작된 잔과 주전자 세트가 눈길을 끈다. 잔에는 ‘축 회갑 개성인삼전매지청직원일동’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그 시대를 살지는 않았어도 잔 하나에 마음을 담아 건네던 정이 귀하게 느껴진다.
매일 2회 해설 서비스 제공
전시실 중앙에는 자연을 벗 삼았던 선조들의 미감이 투영된 표주박과 호리병 등이 자리하고 있다. 자연을 일상으로 들여온 전통의 아름다움은 현대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신가은의 ‘콩 시리즈 컵’과 정원에 피어난 은방울꽃을 잔 위에 정교한 양각으로 표현한 이혜진의 ‘은방울꽃 잔’ 등은 자연을 잔에 담아낸 작품이다.
박물관이 문을 닫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1시, 오후 2시에 해설 서비스도 제공한다. 별도의 예약 없이 전시관 입구에서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해설 시간은 30분 내외로 진행된다.
‘잔잔, 잔: 당신을 담아온 잔의 이야기’는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개관 이후 여덟 번째 수장형 전시다. 파주관은 박물관이 축적해온 지식과 소장품 정보를 대중에 ‘개방’하고 널리 ‘공유’하며 다채롭게 ‘활용’하겠다는 설립 취지에 따라 ‘수장형 전시’를 적극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고유선 기자
당신을 담아온 잔의 사연을 모집합니다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가 ‘잔잔, 잔: 당신을 담아온 잔의 이야기’ 전시를 관람객과 함께 꾸미기 위해 ‘잔’에 얽힌 사연을 9월 28일까지 모집한다. 선정된 잔은 전시 폐막까지 전시된다.
참여 방법은 소개하고 싶은 잔 사진 1~2장과 사연을 메일(dorok2025@naver.com)로 보내면 된다. 선정자에게는 개별 연락해 잔을 받을 예정이다. 폐막 후 잔은 택배를 통해 개별 반환된다. 선정된 잔의 주인공에게는 소정의 기념품을 제공한다. 문의 (031)580-5806, 5808
잔잔, 잔: 당신을 담아온 잔의 이야기
전시기간: 7월 23일~11월 1일
전시장소: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열린 수장고 16
전시품: 손잡이 토기 잔, 청자 다완, 유기 잔, 옥수그릇, 종이컵 등 민속자료 190여 점 등
운영시간: 화~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입장 마감 오후 5시30분)
휴관일: 매주 월요일, 추석 당일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개관, 공휴일 다음 첫 번째 평일 대체휴관
관람료: 무료
문의: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031)580-5800~1
수장고
수장고는 박물관, 미술관 등이 소장 중인 유물과 작품을 보관하는 일종의 금고다. 보전·보호가 주목적이기에 온도·습도 조절은 물론 내진 설계까지 적용된다. 대개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출입 역시 제한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