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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이 스크린이 되다 K-컬처의 새 언어, 드론쇼

임현 유비파이 대표는 자체 개발한 드론 1만 대 동시 비행에 성공해 기네스 기록을 세웠다. 사진 C영상미디어

BTS, 케데헌 등 드론 라이트쇼 ‘유비파이’ 임현 대표
6월 12일 BTS 월드투어 부산 공연이 열린 날, 광안리 해변 밤하늘 위로 수천 개의 빛이 솟아올랐다. 빛들은 하나의 선이 돼 유영하더니 이내 ‘HELLO ARMY’라는 문구를 완성했다. 빛은 방탄소년단(BTS)의 응원봉 모양으로 변해 태양계를 수놓고, BTS 신곡 ‘SWIM’을 형상화한 뒤에는 거대한 배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곧이어 일곱 명의 BTS 멤버 얼굴이 차례로 떠오르자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BTS 월드투어 아리랑(ARIRANG) 부산 공연을 환영하는 드론 라이트쇼의 풍경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드론은 군사용 장비나 촬영 장비로 인식됐지만 이젠 아니다. 밤하늘을 스크린 삼아 이야기를 만들고 공연과 관광, K-콘텐츠를 연결하는 새로운 미디어로 진화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드론 전문 스타트업 유비파이(UVIFY)가 있다.
2025년 8월 광복 80주년 기념 드론쇼에서는 김구와 유관순 등 독립운동가의 얼굴이 광안리 상공에 떠올랐다. 거대한 태극기가 밤하늘을 가득 채웠고 평화의 상징이 빛으로 펼쳐졌다. 같은 해 11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는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인공들이 살아 움직이듯 하늘을 누볐다. 모두 유비파이의 작품이다.

2025년 8월 광복 80주년 기념 드론쇼에서 김구의 얼굴이 떠오르자 관람객들이 환호하고 있다

1만 대의 드론으로 하늘에 이야기를 쓰다
서울대학교 항공우주공학 박사 출신 임현 대표가 2014년 창업한 유비파이는 드론 기체 제작부터 비행 제어 소프트웨어, 운용 시스템, 관제 플랫폼까지 자체 개발하는 드론 전문 스타트업이다. 유비파이는 2024년
5월 5293대의 드론을 동시에 날려 ‘세계 최다 기체수 드론쇼’ 기네스 기록을 세웠고 2026년 3월 미국 텍사스 맨벨에서는 1만 대 동시 비행에 성공하며 다시 한번 세계기록을 경신했다.
지금까지 지드래곤, 블랙핑크, 스트레이키즈, BTS 등 K-팝 아티스트와 협업하며 신규 앨범과 글로벌 공연 홍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임 대표는 “드론 라이트쇼는 하늘에 모양을 띄울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이라며 “드론 1만 대를 동시에 운용할 수 있는 회사는 전 세계에 네 곳뿐이고, 유비파이를 제외한 세 곳은 모두 중국 기업이다”라고 말했다. 유비파이는 드론쇼 도안을 제작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기업부설창작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비행 기술뿐 아니라 독창적인 쇼 콘텐츠 역량까지 갖췄다는 게 임 대표의 설명이다.
처음부터 드론쇼를 목표로 창업한 것은 아니었다. 초기에는 FPV(First Person View·조종사가 카메라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며 수동으로 조종하는 방식) 드론을 개발했다. 대부분 취미용이나 촬영용으로 사용됐지만 사업적으로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전환점은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이었다. 당시 인텔은 드론 1219대를 띄워 오륜기를 구현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임 대표는 이 장면을 보며 드론쇼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일회성 이벤트인 줄 알았는데 대회 기간 내내 드론쇼가 열리더라고요. 충격을 받았어요. 다만 내용은 조금 아쉬웠어요. 동계올림픽 종목 아이콘 정도를 띄우는 수준이었거든요. 그걸 보면서 더 많은 드론으로 훨씬 감동적인 쇼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드론을 만들어 안 팔리면 우리가 직접 활용하면 된다고 판단했고요.”

드론 라이트쇼를 K-관광 콘텐츠로
그 생각의 결과로 2019년 1월 지금의 드론쇼 최적화 무인기인 ‘IFO’ 시리즈가 세상에 나왔다. 무게는 약 900g. 한 손에 쥘 수 있는 크기다. 드론 내부에는 여러 개의 프로세서가 탑재돼 있으며 이를 하나의 시스템처럼 움직이게 하는 소프트웨어도 유비파이의 자체 기술이다. 수백, 수천 대의 드론이 동시 비행하면서도 정확한 위치와 시간을 맞추고 끊김 없이 움직일 수 있는 기반이다.
드론쇼는 사람이 실시간으로 조종하는 방식이 아니다. 각각의 드론에 비행 경로와 LED 점등 정보가 사전에 입력된다. 1번 드론은 어느 시점에 어디로 이동할지, 2번 드론은 어떤 색의 빛을 낼지 미리 설계돼 있다. 영화가 초당 24프레임으로 움직이듯 수천 대의 드론이 같은 순간 정확한 위치와 색을 구현해야 하나의 영상처럼 보인다. 전선으로 연결된 장비라면 비교적 쉽게 시간을 맞출 수 있지만 드론은 하늘에 흩어진 채 무선으로 움직인다.
음악과 드론의 움직임을 동기화하는 일도 쉽지 않다. 효과음 하나가 울리는 순간 빛의 색이 바뀌고 드론이 정확한 위치에 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 대표는 “음악 파일 형식부터 재생 장치, 방송 시스템과의 연결 상태, 시간 동기화까지 세밀하게 점검해야 한다”며 “시간을 맞추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하늘 위에 어떤 이야기를 그릴지 역시 유비파이의 몫이다. 주제와 장면의 순서, 폰트 선택까지 드론쇼의 전체 연출을 직접 기획한다. 관객이 어떤 순간 가장 큰 환호를 보내는지, 이른바 ‘와우(Wow) 포인트’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도 축적해왔다. 그는 “누가 알려줄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보니 시행착오를 거쳐 모든 것을 배워야 했다”고 말했다.
유비파이가 4년째 주관 사업자로 참여하고 있는 ‘광안리 M 드론 라이트쇼’는 이제 부산을 대표하는 야간 관광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매주 토요일 저녁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열린다.
임 대표가 드론쇼를 관광산업의 미래로 확신한 계기는 2020년 스위스 생모리츠에서였다. 드론쇼 기술 지원을 위해 방문한 현장에서 그는 드론쇼가 지역의 새로운 관광 자원으로 떠오른 모습을 목격했다. 인근 호텔들은 공동으로 드론쇼를 기획했고 공연이 잘 보이는 객실은 ‘드론쇼 시트’로 불리며 일찌감치 예약이 마감됐다.
“현지 관광 관계자가 ‘너희 회사가 만든 드론 덕분’이라며 고맙다고 했어요. ‘아,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싶더라고요. 귀국 직후 한국관광공사의 관광 지원사업을 통해 연구개발비를 받았고 때마침 부산 광안리에서 추진하던 드론쇼 사업에도 도전했어요. 어느 새 수만 명이 찾는 야간 관광 콘텐츠로 성장했죠. 드론쇼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외국인이 정말 많아요. 예전에는 해운대가 부산의 대표 관광지였다면 지금은 광안리해수욕장이 전국 1위 방한 관광지로 꼽힙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로는 광복 80주년 기념 드론쇼를 꼽았다. “김구 선생의 얼굴이 등장하는 순간 광안리 해변에서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어요. 그런 반응은 처음이었습니다.”

드론으로 빚어낸 ‘K-팝 데몬 헌터스’의 사자보이즈. 사진 유비파이

K-콘텐츠 넘어 방산 시장 목표
유비파이의 무대는 국내에 머물지 않는다. 해외에서 드론쇼를 의뢰하는 고객사뿐 아니라 드론 기체를 구매하려는 기업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유비파이는 14개국에 드론 1만 대를 판매, 전체 매출의 60% 이상이 수출에서 발생했다.
임 대표가 꿈꾸는 미래는 ‘하늘 위 콘텐츠 플랫폼’이다. 도시마다 배치된 드론에 콘텐츠 파일만 전송하면 서울이든 뉴욕이든 같은 장면을 구현하는 방식이다. 유튜브 영상이 전 세계 어디서나 재생되듯 하늘 위 콘텐츠도 국경을 넘어 공유될 수 있다. 지난 3월 미국 뉴욕 하늘에 펼쳐진 BTS 컴백 기념 프로젝트는 이런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다.
“수많은 사람이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서 하나의 장면을 공유하는 경험을 아직은 다른 매체가 쉽게 대체할 수 없어요. 새로운 기술이 주는 신선함과 경이로움까지 더해져 드론쇼만의 매력이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드론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그는 드론 대중화의 배경으로 ‘드론을 경험하는 방식의 변화’를 들었다. 드론은 여전히 관리가 까다로운 기계다. 구매 후 각종 규제를 따라야 하고 사고에 따른 책임도 적지 않다. 일반 촬영용 드론은 적지 않은 보험료도 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드론쇼를 통해 기술을 경험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유비파이가 개발한 드론은 엔터테인먼트용, 방위산업용, 연구용 드론으로 나뉜다. 임 대표는 다음 무대로 방위산업을 보고 있다. 유비파이는 2024년 방위사업청의 ‘방산혁신기업 100’에 선정됐다. 현재 국방용 드론 개발과 양산을 추진하고 있다.
“기술이란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에요. FPV 드론도 마찬가지예요. 전에는 전투기나 헬리콥터로 촬영하던 장면을 소형 드론이 대신하고, 동굴처럼 기존 항공기가 갈 수 없는 공간까지 들어갈 수 있죠. 드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찾아가는 게 우리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드론은 누군가에게 축제의 밤을 장식하는 콘텐츠이고, 누군가에게는 여행의 이유가 된다. 유비파이가 밤하늘에 써내려가는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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