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우리 동네서 만든 전기 우리 동네서 쓴다!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가 어디에서 오는지 깊이 생각해본 적 있나요? 지금까지는 대형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가 수많은 송전탑과 전선을 거쳐 도시와 공장, 가정으로 오는 것이 익숙한 모습이었어요. 전기를 만드는 곳과 쓰는 곳이 멀리 떨어져 있는 구조죠.
그런데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가 늘면서 전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어요. 집과 건물 지붕에서 태양광으로 전기를 만들고, 남는 전기는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전기차 배터리를 저장장치처럼 활용하는 것도 가능해요.
이처럼 멀리 떨어진 대규모 발전소에만 의존하지 않고 전기를 사용하는 지역이나 그 주변에서 에너지를 생산해 소비하는 것을 ‘분산에너지’라고 해요. 전기도 ‘지역 생산·지역 소비’를 하는 것이죠.
우리나라 전력체계는 오랫동안 대규모 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어 송전망을 통해 소비지역으로 보내는 방식으로 발전해왔어요. 하지만 탄소중립을 위해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가 빠르게 늘면서 전력 생산과 소비의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해졌습니다.
전기를 쓰는 곳 가까이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면 장거리 송전망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동시에 지역의 재생에너지를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겠죠.
정부가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이른바 ‘분산특구’를 만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예요. 분산특구에서는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지역에서 직접 거래·소비할 수 있도록 규제특례를 적용해 새로운 전력사업을 시험합니다.
지역에서 만든 전기, 직접 사고팔아요
분산특구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전력 직접거래’예요. 기존 전력시장은 발전사업자가 생산한 전력을 전력시장을 거쳐 판매하고 소비자는 한국전력 등을 통해 전기를 공급받는 구조가 중심이었어요. 반면 분산특구에서는 분산에너지사업자가 전력시장을 거치지 않고 지역의 전기사용자에게 직접 전력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이를 활용하면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인근 산업단지나 상업시설 등에 공급하는 새로운 사업모델을 실증할 수 있어요. ESS, VPP(가상발전소), V2G(전기차-전력망 양방향 충·방전), 마이크로그리드 같은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전력 서비스도 시험할 수 있어요.
정부는 2025년 11월 당시 경기 의왕·부산 강서·전남·제주를 첫 분산특구로 지정한 데 이어 같은 해 12월 경북 포항·울산·충남 서산을 추가 지정해 모두 7곳의 분산특구를 선정했습니다.
남는 태양광 전기, 이웃집과 나눠요
분산특구는 이제 본격적인 ‘실증’ 단계로 들어가고 있어요. 정부는 2026년 2월 지방정부와 기업, 한국전력, 전력거래소, 한국에너지공단 등이 참여하는 ‘분산특구 이행 추진단’을 출범했습니다. 6월 23일에는 분산특구에서 분산에너지사업자가 전기사용자에게 직접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관련 고시도 개정·시행됐어요.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을 분산에너지에 결합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9월 제주에서 ‘AI 기반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지원사업’을 본격 추진한다고 밝혔어요. 제주 한림읍 또는 대정읍의 20세대 안팎 주택을 대상으로 태양광과 ESS, 전기차, 히트펌프, AI 가전 등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한 ‘에너지제로 주택단지’를 구축할 계획입니다. 마을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는 전력을 실시간으로 관리해 에너지 이용을 효율화하는 모델이에요.
전기차도 ‘달리는 ESS’가 될 수 있어요.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많을 때 전기차 배터리에 전력을 저장하고, 전력수요가 많을 때 저장된 전기를 다시 전력망으로 보내는 V2G 실증도 추진돼요. 스마트팜에서는 태양광과 ESS, 히트펌프 등을 AI로 관리하고 생산된 전력을 냉난방과 조명 등에 활용하는 실증도 진행할 계획이에요.

2기 특구는 ‘우리 동네 전력망’으로
분산특구 정책도 한 단계 더 진화하고 있어요. 정부는 올해 분산특구 지정·운영 지침을 개정해 ‘커뮤니티 마이크로그리드형’을 새로운 유형으로 추가했습니다. 마이크로그리드는 일정 지역 안에서 전기를 생산·저장·소비하면서 필요할 경우 외부 전력망과 연결해 운영하는 소규모 전력망이에요.
2기 분산특구 공모에서는 이런 ‘커뮤니티 마이크로그리드형’ 모델을 중심으로 지역의 생활권이나 전력망을 하나의 단위로 묶어 재생에너지와 ESS 등을 활용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어요. 지역에서 생산한 전력을 지역에서 최대한 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형 모델을 본격적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취지입니다.
물론 풀어야 할 숙제도 있어요.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을지, ESS 등 설비 구축비용을 어떻게 부담할지, 사업자가 지속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요금체계를 어떻게 마련할지 등을 실제 사업을 통해 검증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분산에너지가 주목받는 이유는 분명해요. 재생에너지 시대에는 ‘전기를 무엇으로 만들 것인가’만큼 ‘어디에서 만들어 어디에서 쓸 것인가’도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전기도 이제 ‘지역 생산·지역 소비’의 시대로 향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송전망을 따라 전국으로 흐르는 기존 전력체계에 지역 단위의 작은 전력망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우리 집 지붕에서 만든 전기를 이웃과 나누고, 전기차에 남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다시 전력망으로 보내는 일상도 머지않아 가능해질 수 있어요.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은 이런 새로운 전력 생활을 먼저 시험해보는 곳입니다.
김경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