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후반 뉴욕, 공원에 사는 동물들의 겨울나기 식량창고인 떡갈나무를 실수로 불태워 버리고 쫓겨난 다람쥐 ‘설리’, 그리고 생쥐 ‘버디’를 비롯한 동물 친구들이 땅콩가게의 땅콩을 훔치기 위해 펼치는 좌충우돌 탐험 이야기가 전 세계 아이들의 마음을 훔쳤다. 올 1월 한국 극장가에서 개봉한 레드로버의 3D 입체 애니메이션 <넛잡 : 땅콩 도둑들(The Nut Job)> 이야기다.
<넛잡>은 지난 1월 17일 북미지역 4천여 개 극장에서 먼저 개봉했다. 미국 소비자들의 반응은 빨랐다. 미국 개봉 열흘 만에 누적실적이 4천만 달러를 넘어섰다. 이후 <넛잡>은 한국을 비롯한 140여 개 국가에서 차례로 개봉했으며, 현재는 중국과 일본에서 상영을 앞두고 있다. 올 한 해 동안 <넛잡>이 북미지역 부가판권과 전세계 극장가에서 거둬들인 수익은 지난 11월 말 기준 1억3천만 달러에 이른다. 레드로버의 하회진 대표는 <넛잡>이 해외에서 이뤄낸 성과를 통해 한국 애니메이션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인 공로를 인정받아 ‘2014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중 해외진출유공포상 분야에서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투자자금 모금 애태울 때 정부서 도움의 손길
‘2014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시상식이 있기 하루 전인 지난 12월 8일 레드로버 사무실에서 만난 하회진 대표는 “<넛잡>을 제작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던 만큼 국가적으로 큰 상을 받게 돼 의미가 더 크다”는 수상 소감을 밝혔다.
하 대표를 제작총괄로 한 <넛잡> 프로젝트팀이 본격적인 제작을 시작한 때는 2009년 11월이다. 처음부터 목표는 국내 시장이 아닌 전 세계 영화시장의 최정상이라 할 수 있는 할리우드였다. 하지만 이 목표 때문에 투자자금을 모으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투자 제안 시 미국의 3천여 개 영화관에서 가장 먼저 개봉할 것이라는 목표를 제시하면 투자자들은 대부분 믿지 않았다. 그만큼 한국 애니메이션이 미국 시장에서 성공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토종 애니메이션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해 성공한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저희 말이 터무니없어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투자자금 융통에 어려움을 겪던 레드로버에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정부다. <넛잡>은 2010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글로벌 애니메이션 본편 지원작으로 선정돼 6억원의 제작 지원을 받았으며, 정부에서 출자한 투자조합에서 85억원을 투자받았다. 또한 레드로버는 수출입은행과 IBK기업은행에서도 각각 70억원, 10억원의 대출을 받아 <넛잡>을 완성했다. 레드로버가 <넛잡>을 제작하는 데 든 순제작비는 400억원가량이다.
2015년 개봉 <스파크>로 미국·중국시장 공략 채비
하회진 대표가 <넛잡>을 제작하는 데 있어 가장 크게 고민한 건 주인공이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 시장에 진출하려면 단순한 인물캐릭터로는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해외 시장에서 성공한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을 조사했으며, 그중에서도 동물 캐릭터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 그 결과 미국 시장에서 다람쥐를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 중 실패한 사례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게 <넛잡>의 주인공은 다람쥐 설리로 결정됐다. 레드로버의 작가들은 <넛잡>에 출연하는 동물들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동물원을 수없이 찾아 움직임을 분석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또한 레드로버는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캐나다 애니메이션 제작사 툰박스 엔터테인먼트와 공동제작을 진행했다.
지금 레드로버는 2015년 개봉을 앞둔 극장용 애니메이션 영화 <스파크(SPARK)> 작업에 한창이다. <스파크>는 주인공인 원숭이를 비롯한 등장 캐릭터들이 우주에서 벌이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레드로버는 <스파크>를 통해 미국과 중국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할 예정이다. 특히 13억 인구라는 큰 내수시장을 가진 중국 시장에 진출해 자리 잡는 게 레드로버의 2015년 목표다. 이를 위해 중국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하 대표는 지난 11월 실질적으로 타결된 한·중 FTA도 중국 시장 공략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중국은 자국영화 보호를 위해 현재 스크린쿼터제를 시행하면서 연간 외화 20편만 의무수입하고 있지만 탄력적 운용으로 연간 최대 64편까지 수입하고 있다. 실제로 <넛잡>은 일찍부터 중국 극장 개봉을 준비해 왔으나 스크린쿼터제로 말미암아 아직 상영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한·중 FTA의 실질적 타결로 중국에서 투자자금을 받는 등 공동제작을 하면 중국 영화와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앞으로 중국 진출의 기회가 더욱 활발하게 열리게 됐다.
하 대표는 제2의 <넛잡> 제작을 꿈꾸는 이들에게도 한·중 FTA를 잘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중국 시장을 다른 해외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기 위해 중국 투자자금 유치와 공동제작 등을 고려해 보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글·정혜선 기자 2014.12.15